운동과 글쓰기의 공통점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숙제였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일기는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었다.
‘오늘은 엄마가 칼국수를 해줘서 먹었다. 참 맛있었다.’
‘오늘은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떠들지도 않았는데 떠들었다고 혼났다. 기분이 나쁘다.’
신기하게도 내 딸이 쓴 그림일기도 내용이 비슷했다. 이런 것까지 닮나 싶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초등학생들이 쓰는 일기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패턴이 유사하다. 아직 표현력이 풍부하지 않은데, 숙제여서 억지로 쓰는 일기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대충 일기를 썼는데도, 매일 일기를 쓰는 동안 글쓰기가 점점 편해진 것은 확실하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몰라 아예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적어도 나는 일단 쓰기는 한다. 그런 습관이 2020년 내 인생 최대의 불청객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글을 쓰며 마음의 근육을 키웠던 것 같기도 하다.
매일 30분씩 운동하는 것이 좋을까? 일주일에 하루 날 잡아 일주일치(30분*7=210분)를 한꺼번에 하는 것이 좋을까?
단순히 운동한 시간만 놓고 보면 똑같지만 효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매일 30분씩 운동한 것이 훨씬 건강에 도움이 된다. 평소에는 안 하다 하루에 몰아서 하면 몸에 무리가 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운동이 즐거워지고 편해지고 건강도 좋아지듯이 글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습관처럼 쓰는 것이 좋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 중에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습관처럼 글을 썼던 분들이 많다.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끼, 파올로 코엘류 등이 대표적이다.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는 항상 이른 아침에 글을 썼다고 한다. 그것도 분량을 정해서 그만큼만 썼다. 글이 술술 써지는 날에도 하루에 쓰기로 정한 양이 넘어가면 중단했다. 매일 규칙적으로, 일정 시간 운동하는 것처럼 글을 썼다.
<1Q84>, <노르웨이 숲> 등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도 상당한 체력이 요구된다. 매일 5~6시간씩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인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오후에 10킬로미터를 달리고, 1500미터를 수영하면서 체력을 관리했다.
<연금술사> 저자 파올로 코엘류는 40년 동안 매일 일기를 썼다. 약 200여 권에 달하는 일기에는 코엘류가 겪은 기상천외한 경험들이 적혀 있다. 이 일기를 바탕으로 페르난도 모라즈는 코엘료의 일생을 그린 <더 위저드>를 집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유명한 작가들은 대부분 습관처럼 글을 쓴다. 작가들은 영감이 떠올랐을 때 미친 듯이 일필휘지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글을 쓰든, 안 쓰든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려고 앉아있는 습관이 그들만의 명문장을 만들고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사실 글을 쓰는 일은 힘들다. <킹덤>을 쓴 김은희 작가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글을 쓰기 위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대부분의 시간은 커서 깜빡이는 것을 볼뿐이다’고 말했다. 이후 같은 프로그램에 <시선으로부터>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정세랑 작가가 출연해 깊은 공감을 표현했다.
글쓰기가 직업인 전문작가에게도 글을 잘 쓰기가 어려운데, 일반인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일기를 쓰듯이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적어도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얼마나 좋은 글을 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단 한 줄이라도 괜찮다. 매일 한 줄이라도 써야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어야 글을 쓰면서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
너무 복잡하고 빨리 변하는 시대여서 그럴까?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 글을 쓰기보다는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SNS를 즐겨하지 않지만 직업적으로 필요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뿌리는 같지만 페이스북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글이 주연이고, 사진이 조연이라면 인스타그램은 완전히 사진이 주인공이다. 사진과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인스타그램이다.
물론 사진이 갖는 힘은 엄청나다.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와 감동, 위안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지 중심인 인스타그램보다는 페이스북이 더 친근하다. 페이스북에도 글을 최소화하고 이미지 중심으로 소식을 알리는 페친들이 많지만 이상하게 나는 구구절절, 조근조근 글로 풀어놓은 페친들의 이야기에 눈이 간다. 그 페친들은 한때 나처럼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글 쓰는 게 일이었으니 글이 맛갈스러워 꽤 긴 글도 단숨에 읽힌다. 읽기만 하고 ‘좋아요’를 잘 누르지 않아 글을 올린 페친들은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내가 페이스북에서 긴 글을 주로 골라 읽는 이유는 뭘까? 내가 책을 만드는 편집자라서? 아니면 무언가 설명을 좋아하는 구시대적 꼰대라서?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만 사진만 볼 때보다 글 속에서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이 더 많이 보여 마치 직접 만나서 오랜 시간 정담을 나눈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좋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들 중 표현이 서툰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꼭 말로 해야 알아?”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아는 거 아니냐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자신을 변호하는데, 실제로는 말을 해야 아는 경우가 많다. 말 한마디면 될 것을, 그 한마디를 하지 않아 오해가 생기고, 서로 섭섭해하는 일이 잦다.
이는 글도 마찬가지다. 사진이나 그림에 얼마나 많은 말이 담겨 있는데 보면 알지 꼭 구구절절 글을 써야 아냐고 말할 수도 있다. 글이 없어도 된다. 그 사람이 올린 사진만 봐도 대충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겉핥기다. 그 사람 마음 깊숙한 곳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고,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소용돌이치는지까지는 알기 어렵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자기만족으로 사진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SNS에 자신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올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봐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올릴 이유가 없다. 나는 열심히 SNS를 하지 않아 어쩌다 한번 사진이나 글을 올리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써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특별히 누가 봐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데, 너무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어 더 안 올리게 된다. 나조차도 그런데 매일, 수시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얘기다.
이왕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SNS를 하는 것이라면 사진에 한두 줄만이라도 설명을 달아보면 어떨까? 당연히 쉽지 않다. 사진만 찍어서 올리면 간단한데, 한두 줄이라도 쓰려면 머리에 쥐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써보면 그 짧은 글이 사진의 의미를 더해주고 선명하게 해 준다는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