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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pr 02. 2022

글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

성취 메모의 비밀

20~30대 잡지에 미쳐 살았던 시절,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아파도 마감 끝나고 아파”

당시에는 잡지의 마감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라도 아파서 제 몫을 하지 못하면 정해진 마감 날짜를 지킬 수 없기에 그 말이 얼마나 몰인정한 말이었는지 생각조차 못했다. 한술 더 떠서 ‘다 정신력이 약해서 아픈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빨리빨리 마감할 것을 독촉했다.

사실 난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독한 불면증을 경험하기 전에는 크게 아파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매일 골골대는 사람들은 정신력과 의지가 약해 자기 몸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매도했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불면증과 씨름하면서 뼈저리게 확인했다. ‘정신력이 약해 아픈 것’이라는 내 말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와 가뜩이나 약해진 내 몸과 마음을 찔러댔다. 어느덧 만신창이가 된 나는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나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아프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쩌다 아픈 것이 아니라 늘 아픈 것은 더더욱 바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운동도 하고, 음식도 조절하고, 영양제나 건강보조식품을 열심히 챙겨 먹다.

그렇게 노력해도 아플 수 있다. 잠깐 아프고 지나가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픔을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길어지면 마음은 당연히 약해진다. 돌아보면 나는 불면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자꾸 약해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잠을 못 자니 컨디션도 안 좋고, 마음까지 우울해지는 것이 당연했음에도 약해지는 나 자신이 싫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철의 여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 드는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내 모습이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플 때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할 수도 있다. 두 달쯤 잠을 못 잔 어느 날 만난 친구는 깜짝 놀라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인상이 험악해졌니?”

친구가 아는 나는 늘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는데, 완전 딴 사람처럼 표정이 바뀌었다고 했다. 마음이 아프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이 변했던 모양이다. 친구도 놀랐겠지만 나도 친구의 말에 놀랐다. 내 모습이 그렇게까지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더 내가 싫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적어도 나만큼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이고 사랑해주었어야 했다. 너무 아파서 얼굴에 아픔이 드러난 것이니 그런 나를 스스로 토닥이며 위로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럼에도 변해버린 내 모습에 내가 놀라 ‘이건 내가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부정했던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병은 더 깊어진다. 사랑하지도 않는 나를 위해 그 힘든 투병을 견뎌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감도 떨어져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게 된다. 따라서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성취 메모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비교적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자신이 성취한 것을 메모하는 것이다. 실제로 알랭 드 보통, 아널드 슈워제네거, 파울로 코엘료를 비롯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성취한 것들을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고 한다. 자신이 잘했던 일을 메모해두었다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메모를 보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성공한 사람들의 성취 메모 습관을 접하고, 나도 내가 성취한 것들을 적어본 적이 있다.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잡지 창간 전문이란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10년 동안 5개의 잡지를 창간했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잡지를 창간하는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잡지를 창간하기까지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

잡지 만들기를 그만두고 단행본을 만들면서 수십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여러 권 만들었다. 물론 나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힘이 더해져 이뤄낸 결과지만 내가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으니 나의 성취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일과 관련된 성취가 아니라도 스스로 대단하다 생각하는 성취도 있다. 원래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하지만 10년 동안 잡지사에 일하면서 술을 마실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술 마시는 게 습관이 되어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곤 했다. 아침에는 숙취로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하다가도 오후가 되어 술이 깨면 또다시 술 생각이 나면서 술 마실 궁리를 했다. 당시 재미 삼아 알코올 중독 자가진단을 해본 적이 있는데, 경증 알코올 중독으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즐기던 술을 하루아침에 끊었다. 건강 서적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됐다. 당뇨병, 고혈압, 암 등 각종 질병을 주제로 수많은 책을 만들었는데, 모든 질병의 공통 요인 중 하나가 담배와 더불어 술이었다.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강했는지, 술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자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금단현상도 없이 자연스럽게 술을 끊었다.

처음 금주 선언을 했을 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네가 정말 끊을 수 있겠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런데 정말 내가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계속 술을 마시지 않자, 오랫동안 나와 함께 술을 마셨던 술친구들은 예전에 술 잘 마시던 나를 그리워하며 돌아오라고 아우성쳤다. 그래도 나는 꿈쩍 하지 않았고, 지금껏 아주 불가피한 자리 외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담배도 그렇지만 술 역시 아주 독하지 않으면 끊기 어렵다. 오죽하면 알코올 중독은 질병으로 구분될까. 그 어려운 술을 단숨에 끊었던 나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불면증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은 붙었다.

성취 메모를 적기 전에 스스로에게 고마운 일을 이야기하며 고마워, 사랑해를 반복해서 적은 적이 있다. 일종의 감사일기 같은 형태였다. 성취 메모와 감사일기는 닮은 구석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취 메모가 자존감을 높이는 데는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렇다 하게 성취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라도 괜찮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다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냈다’라고 적어도 좋다. 물론 평범한 하루를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평범한 하루는 누구나 쉽게 성취할 수 일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 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얻기 어려웠던 것임을 말이다.

감사할 일이 찾아보면 무궁무진하듯 내가 성취한 것도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동안 내가 성취했던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고 적어둔 다음 기분이 처지거나 자신감이 없을 때 보면 조금은 기운이 날 것이다. 메모를 통해 지금 아파서 힘들어하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는 다시 빛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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