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정우 Dec 15. 2020

번외 8 : 제1차 중동전쟁(1948) 3편

지난 이야기는 UN에서 팔레스타인 분할 안을 제시한 것으로 끝마쳤고 오늘 다룰 이야기는 그 이후이다.


팔레스타인을 분할해 양측이 평화롭게 지내길 바랬던 UN이지만 UN의 제안은 사뭇 공평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원래 팔레스타인 땅의 6%만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전부터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아랍인은 43%의 땅을 할애 받는다.

Couldn't find the source :(

당연히 유대인들은 UN의 분할 안을 반겼지만 중동 아랍국가들은 유대인과 UN에 대해 크게 분노하였고 분할 안을 전면 거부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소련과 미국이 UN의 분할 안을 지지하고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 분할 안이 가결되면서 이스라엘 건국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어진다.


결국 아랍인들은 영국이 철수하는 틈을 타 1948년 5월 1일부터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러한 아랍권의 군사행동은 1948년 5월 14일 영국군 철수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거세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이 완벽하게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함과 동시에 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 선언을 하자 마자 그들의 군사행동은 바로 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지금의 중동 문제는 제국주의 서구 열강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다른 민족 간의 이중 계약을 서슴없이 행하고 그들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민족과 종교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영토를 나누면서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 자신들의 땅에 그것도 종교적으로 중요한 예루살렘까지 유대인들에게 넘겨주려는 영국을 중동 국가들이 좋게 볼리가 없다. 더불어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하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Golda Meir @Wikipedia

다시 제1차 중동전쟁으로 돌아와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절박함'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전 총리 골다 메이어 역시 '우리는 아랍과의 전쟁에서 언제나 강력한 비밀병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절박함도 중요하지만 전쟁은 절박함만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랍 연합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갓 세워진 나라를 이기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원인은 바로 단단한 결속력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시리아, 요르단은 이스라엘 격파라는 공동의 목표보다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전쟁에 임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떠한 지원 세력이나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던 아랍 국가들과 다르게 이스라엘은 소련과 미국으로부터 암묵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들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The war of Independence @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예상 밖으로 소련도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소련에서 이스라엘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때 소련은 소련 출신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통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전쟁 기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지어진 독일의 군수 공장이 많은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많은 군수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 이집트가 친소 노선을 택하고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가 형성된 이후로는 체코슬로바키아는 이집트의 군사 원조 통로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실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 군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스라엘이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중에 벤구리온의 말을 들어보면 이스라엘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민간인으로 구성되었음에도 전부터 조직되어 있었던 무장 단체(HAGANAH) 등을 바탕으로 아랍 군대를 상대할 수 있었다.


반면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 연합군은 영국군 아래에서 교육받았음에도 요르단을 제외하곤 훈련도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수적으로 이스라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만을 믿고 자만하고 방심했다. 나중에 언급되지만 나세르를 중심으로 쿠데타가 일어날 정도로 군 내부에 부패가 심해 당연히 이뤄져야 할 군수품 보급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번외 7 : 제1차 중동전쟁(1948)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