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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Feb 09. 2021

1954년, 초음속 전투기 시대(2)

소련의 첫 초음속 전투기 MiG-19

1953년, 미국의 초음속 전투기 F-100은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1년 뒤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이 한국전쟁에서 소련 MiG-15에게 빼앗긴 공군력의 우위를 다시 되찾아왔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항공기 수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의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진다.


왜냐하면, 소련에서도 1951년부터 MiG-17을 기반으로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련이 당시 운용하고 있었던 MiG-17은 MiG-15의 단점을 잘 보완한 우수한 기체였다. 그러나 냉전 초기에는 무기의 개발 속도가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지금까지 살펴본 기체만 봐도 그렇듯이 1940년대 말에 개발된 항공기는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구닥다리로 전락해버렸다.


이는 전투기 한 대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본과 기술력이 낮았던 점도 있었지만, 냉전 속에서 미국과 소련이 하루가 다르게 더 빠른 전투기를 개발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편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전투기를 보유하는 것은 체제 경쟁에서의 암묵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소련과 미국은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Comparison from MiG-15 to MiG-19

다만, 미국보다 엔진 기술력이 부족했던 소련은 하나의 엔진만으로는 초음속 돌파가 어려워 MiG-17에 두 개의 Mikulin AM-5 엔진을 장착하기로 한다. 그리고 주익은 기존 MiG-17보다 더 뒤로 젖혀진 58도의 후퇴각을 주었으며, 미국보다 조금 늦은 1954년에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다.


여기서 MiG-19의 설계를 보면 그 당시 속도가 항공기 개발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엔진은 더 강력한 것으로 교체하고, 후퇴각을 더 주는 등 별다른 외형의 변화를 주지 않은 채 모든 설계가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개발 시간을 단축해 주면서 동시에 완성도 높은 기체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MiG-19 @Warthunerforum  /  @ariwar.ru

이후 시험 비행에서 보여준 MiG-19의 시험 기체인 SM-9는 초음속이 가능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소련 공군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며 1954년 1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이제 막 첫 비행에 성공했으며 양산까지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았음에도 도입에 서둘렀던 이유에는 미국의 F-100과 냉전이라는 환경이 큰 몫을 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소련은 하루라도 빨리 MiG-19를 도입함으로써 대외적으로 2세대 전투기이자 미국의 F-100에 견줄만한 초음속 전투기를 보유했음을 선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F-100과 마찬가지로 속도 하나만 보고 양산에 들어가다 보니 여러 사건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항공기 엔진에서 나오는 열을 잘 차폐하지 않아 연료 탱크에 불이 붙어 기체가 폭발하는 사고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F-100과 비슷하게 과도하게 젖혀진 후퇴익은 기체를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며 초음속에서 기체의 조종성이 떨어지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MiG-19는 오래 운용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MiG-21과 같이 더 나은 전투기들이 등장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래도 이는 곧바로 최신예 전투기 MiG-21을 도입할 수 있었던 소련에 한해서이고, 중국이나 베트남, 이집트에서 MiG-19는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기체가 불안정하고 엔진의 수명도 짧았지만 구조가 단순해 정비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음속에만 집중했음에도 저고도에서 선회 능력이 뛰어나 베트남전에서 종종 교전 수칙에 얽매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미군의 F-4를 격추하기도 했다. 이처럼 MiG-19는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F-100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MiG-19 with missile @Cavok

특히 중국은 1958년부터 소련으로부터 면허생산권을 받아 소련을 넘어 MiG-19를 J-6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해 오랜 기간 운용했다. 그러나 이는 MiG-19가 중국 공군을 만족시킬만한 우수한 기체여서가 아니었다.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MiG-19 면허생산권을 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959년 중·소 국경분쟁과 공산주의에 대한 해석 차이로 소련과의 합작 사업을 전면 취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2년 인도와의 국경분쟁 때 소련이 인도 편에 서자 둘 사이는 적대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이후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MiG-21과 같은 차기 전투기 도입이 어려워졌고, 공산주의 노선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미국으로부터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결국, 1960년대에 와서도 MiG-19를 Nanchang Q-5라는 지상공격기로 운용하며 2000년대까지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MiG-19를 Shenyang F-6라는 이름으로 북베트남과 북한과 같은 잘 알려진 공산국가뿐만 아니라 수단,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대륙에까지 MiG-19를 수출하며 소련보다 MiG-19 더 많이 양산하고 운용한 나라가 되었다. (물론, 중국도 소련과의 관계 단절 이후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에 들어갔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룰 예정이다.)


Nanchang Q-5 @Pinterest

그럼에도, MiG-19는 오랫동안 운용할 정도로 우수한 기체는 아녔다. 초음속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요소들을 등한시했으며, 속도에만 집중했다는 말은 더 빠른 기체가 나오면 아무런 장점이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MiG-17을 기반으로 설계된 기체였기에 MiG-17보다 조금 나은 기체였을 뿐 획기적인 성능 향상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부터 BVR(Beyond Visual Range) 교전의 시작을 알리는 공대공 미사일의 등장으로 기수에 레이더를 달기 어려운 MiG-19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령 MiG-19가 우수한 기체라 해도 하루가 다르게 더 강력한 엔진과 더 뛰어난 항공역학적 설계가 적용된 기체가 나오는 냉전이었기 때문에 MiG-19는 1960년이 되자 모두 퇴역하고 만다. 그리고 MiG-19가 그랬던 것처럼 1959년부터 MiG-21이 MiG-19를 대체하게 된다.

F-100 Super sabre @Britanica  /  F-101 Voodoo @Wikipedia

이후, 1958년 금문도 사건에서 공대공 미사일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가 등장하면서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공중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공대공 미사일을 계기로 항공기에 더욱 많은 항전 장비가 실리면서 대부분의 전투기의 기수에 레이돔이 꼭 들어가게 된다.




참고자료 및 출처


배경사진 출처 : Hush-Kit


Wikipedia, Mikoyan-Gurevich MiG-19

Wikipedia, Shenyang J-6

Wikipedia, Nanchang Q-5

네이버 무기의 세계 MIG-19 파머 소련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네이버 무기백과사전, MiG-19 전투기 / 동구권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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