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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May 21. 2020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늘 우리가 가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사를 하고, 애정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아실현을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삶이란 욕구가 만들어지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욕구를 채우는 과정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욕구를  100% 완벽하게 채울  없습니다지금 당장은 어떤 요구를 채우더라도  새로운 욕구를 다시 만들어내고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가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할수록 우리의 인지적 유창성이 발달하여 욕구가  다양해집니다.


2) 동일한 자극이 반복되면 우리의 만족감은 점차 줄어듭니다.


바다달팽이인 군소가 기억을 형성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칸델에 따르면, 어떤 한 자극이 신경세포(뇌세포)에 주어지면 그 신경세포는 이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동일한 수준의 자극이 반복될 경우 반응의 수준을 점차 낮춘다고 합니다.


갓난아기에게 동일한 시각적 주의를 반복해서 제공하면 점차 아기들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새로운 자극이 발생하면 다시 반응이 커진다. ( 출처 : 에릭 캔델 기억의 비밀 )


그냥 늘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도록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선 어떤 한 자극이 처음 접할 때는 위협적인 자극인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위협이 아니었을 경우 그 자극을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경과학자들의 실험대상으로 자주 쓰이는 예쁜꼬마선충은 머리 부분이 무언가와 부딪힐 때마다 뒤로 물러나는 운동을 합니다. 이때 처음 부딪힐 때는 크게 뒤로 물러나지만, 충돌이 반복될 때마다 뒤로 물러나는 거리가 줄어들어 종국에는 충돌이 일어나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후각과 촉각에 의존하는 예쁜꼬마선충이 단순히 벽에 부딪힌 것이라면 이 충돌은 위협이 아니라 정보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이처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긍정적인 자극에도 만족도가 점점 떨어지는 생명체가 항상 만족을 느끼는 생명체보다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현재의 성공에 끊임없이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과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어떤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자연스럽게 성공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이 노력하고 더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것을 자연에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에는 같은 종에서도 수많은 개체들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개체는 더 욕심이 많고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를 것이고, 어떤 개체는 욕심이 많지 않고 모험보다는 현재에 안주하길 원할 것입니다. 현재 환경이 모든 개체에게 유리한 환경이라면 양자 모두 번식하기에 충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고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욕심이 많고 모험심이 강한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과정에서 쉽게 만족하고 안주하는 개체들은 점점 비중이 줄어들고, 만족할 줄 모르는 개체의 비중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끝없이 만족할지 못하도록 진화한 생명의 특성이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더 안전하고 편하길 바라고, 더 많은 애정과 존중을 원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더 많은 것을 알기 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늘에 반짝이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를 바랐고, 그것이 우리 지구와 같은 다른 항성과 행성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항성과 행성들은 왜 생겨났고, 그곳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지와 같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답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욕구는 더 많은 생각과 정보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종류의 생각과 정보는 이미 세상에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하면 그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어떤 종류의 것은 아직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당장 안달 낸다고 해서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미적분에 대한 지식을 알길 원한다면 저는 수학책을 보고 미적분을 공부하면 익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코로나19에 대한 치료법을 알고 싶다고 해서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정보나 생각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생각과 정보의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는 앞선 [종교는 왜 만들어졌을까] 글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스스로 생각을 만들어내어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후 세계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을 빌려 오던가 아니면 스스로 사후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개념을 만들어 욕구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생각과 정보가 이처럼 추상적이라거나 상상에 기반한 산물인 것만은 아닙니다. 엄밀한 수학적, 과학적 이론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지식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싶은 유행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팔고 싶은 상품과 서비스에 관련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우리의 욕구가 결국 새로운 생각과 정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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