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편지
거실에서 터져 나온 동생의 외침에, 곧바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순간, 집 안의 공기가 살짝 멈췄지.
또 시작인 건가. 서로의 마음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낯익은 풍경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아프리카에서 우리 가족이 언제나 웃음으로만 반짝였던 건 아니야.
앞선 편지들을 보면 우리는 늘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이사이엔 부딪히는 날들이 많았어.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너희 둘이 성별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해. 누나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역할 놀이하는 걸 좋아했는데, 둘째는 거실을 뛰어다니며 누나랑 격하게 놀고 싶어 했지.
서로의 결이 조금 달랐던 거야. 어쩌면 그 차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린 너희들은 그 차이로 인해 종종 ‘다툼’으로 번지곤 했어.
엄마 아빠는 그 사이에서 고민했어. 어떻게 하면 너희 둘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자라게 할 수 있을까. 큰 소리로 훈육하는 건 쉽지만, 그건 우리가 바라는 길이 아니었어. 우린 너희가 억지로 조용해진 평화를 얻기보다, 진심으로 미안해할 줄 알고, 서로 이해할 줄 아는 마음을 갖기를 바랐거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아빠 머릿속에 오래전 TV에서 봤던 한 실험이 불쑥 떠올랐지.
투명한 병 두 개, 그리고 그 안에 똑같이 담긴 하얀 밥 한 줌.
한쪽 병에는 매일 “사랑해”, “예쁘다”, “고마워” 같은 예쁜 말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에는 “싫어”, “미워” 같은 미운 말을 던지는 실험.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어.
"우리도 한번 해볼까?"
다음 날, 우리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두 개의 병에 밥을 담으며 말했지.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 실험을 해볼 거야. 이쪽 병에는 매일 예쁜 말을 해주고, 저쪽 병에는 미운 말을 해보는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 병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너희는 그 말에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 매일 똑같은 일상의 아프리카에서 작은 실험 하나가 마치 가족의 축제라도 되는 것 같았어. 그날부터 매일 아침, 너희는 병 앞에 서서 인사를 건넸지. "사랑해!" "고마워!" 한쪽 병에는 정성스럽게 예쁜 말을 건넸고, 다른 병에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미워! 싫어!" 하고 작게 중얼거렸어.
며칠이 지났을까. 미세한 변화가 시작됐어. 예쁜 말을 했던 병에는 하얀 곰팡이가 포슬포슬 피어났지. 마치 눈꽃 같이 보였고, 게다가 뚜껑을 열면 구수한 향까지 올라오는 게 꼭 누룽지 향 같았어.
하지만 나쁜 말을 들은 병은... 정말 달랐어. 밥에 검은곰팡이가 피더니, 뚜껑을 열면 썩은 냄새가 나서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
우리 모두는 두 병을 번갈아 바라보며 놀랐어. 특히 너희가 놀랐지. 그 작은 유리병 안에서 무언가 분명한 진실이 드러난 걸, 어린 마음에도 느낀 것 같았어.
말이란 건 단지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모양을 바꾸는 힘이라는 걸 말이야.
그날 밤, 우리는 병 앞에서 약속했지. 서로에게 예쁜 말을 하자고. 상처 주는 말은 삼키고, 따뜻하게 마음을 품어주는 말만 건네자고.
그 후로?? 너희도 알다시피 물론 또 싸우는 순간이 있었지. 하하;;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게 있었어. 화가 나서 싸우다가도, 문득 멈칫하는 순간들이 생겼거든. 그리고 조금 더 부드러운 말을 찾아 말하려고 애쓰는 너희를 보면서, 엄마 아빠는 알았어. 너희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걸.
그 작은 병 속의 밥은 이미 오래전에 버려졌지만, 그때 우리가 함께 배운 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어.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 내가 내뱉은 한마디가 누군가를 살릴 수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그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그 작은 실험을 통해 마음에 새겼던 거야.
너희가 앞으로 살아가는 날동안, 우리가 함께 했던 이 실험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물론 매일 웃을 수만은 없고, 어떤 날엔 화가 나고, 지치고, 괜히 눈물이 나는 날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부드러운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어. 너희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