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는 바보야

아홉 번째 편지

by 나귀

사실 아빠가 유머 감각이 특별히 뛰어난 건 아니잖아.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희만 곁에 있으면 아빠는 달라지는 거 같아. 이상한 의성어를 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도 하고, 괜히 혀 짧은 소리도 내곤 했잖아. 그러다 너희가 한 번이라도 빵 터져 웃어주면, 그 순간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상을 받은 듯 마음이 벅차올랐어.








기억나? 한국에서 경험한 엘리베이터 사건 말이야 ㅋㅋ


아빠가 너희를 웃기겠다고 괜히 얼굴을 찌푸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맞은편에 서 있던 낯선 사람이 “어유! 깜짝이야!”하면서 놀랐던 순간 말이야. 그때 아빠는 괜히 뻘쭘해하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너희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이 넘어가라 웃었잖아. 지금도 너희는 그때 일을 이야기하면서, 엄청 재미있어하지?


그런데 사실,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크게 상관없어. 그때 잠깐 바보가 되었던 순간은, 너희의 웃음 덕분에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 되었거든.




이미 한 번 가봤던 놀이동산도, 너희와 함께라면 늘 처음 온 것처럼 놀게 돼. 그 전의 기억은 모두 덮어 두고, 마치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우와, 저게 뭐야!” 하고 소리치는 아빠를 봐. 사실 아빠는 어떤 놀이기구가 재미있고, 또 어떤 건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무서운 지도 알아. 그런데도 너희가 그 순간 활짝 웃을 수 있다면, 아빠는 언제든 그 익숙한 장면을 지워내고, 다시 처음처럼 놀랄 수 있어.


맛도 마찬가지야. 이미 한 번 맛봤던 음식이어도, 너희와 함께 먹는 순간만큼은 새로운 맛이 돼. “어? 이거 맛있네!” 하고 일부러 크게 감탄하며, 젓가락을 들고 과장되게 표정을 지으면, 너희는 그 모습에 또 웃음을 터뜨리잖아. 그러면 아빠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진짜로 더 음식이 맛있어지는 걸 느껴.


아빠가 돼 보니 이제야 알겠어. 너희가 행복할 수 있다면, 아빠의 자존심도, 체면도, 어떤 마음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걸.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걸, 그게 진짜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기억나? 첫째가 축구공을 눈에 맞고 돌아온 날. 아빠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눈이 부어오르고, 네가 아파하는 걸 보면서, 아빠 심장은 땅속으로 꺼져 내려가는 것 같았지. 아빠는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눈물이 핑 돌 만큼 마음이 아팠어.


열악한 아프리카의 병원, 이곳에서 과연 너를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을까, 그 걱정이 아빠를 꽉 움켜쥐고 있었지. 하지만 그 순간, 아빠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어. 두려움을 삼키고, 네 앞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아빠는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이렇게 말했지.




“네가 만약 눈을 못 보게 된다면, 아빠 눈을 빼줄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너의 고통이라면 무엇이든 대신 짊어지고 싶다는 마음이었어. 그 순간 아빠는 부모라는 게 결국 이런 거구나, 내 몸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게 내어줄 수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러 다행히도 네 눈은 잘 회복되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빠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 너희를 향한 사랑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그 사건이 아빠에게 가르쳐 주었거든.


사랑이란 결국 그런 거 같아.


뭔가를 더 가지는 게 아니라, 기꺼이 내어주는 일.
조금씩 덜어내면서도 오히려 더 채워지는 이상한 마음.


아빠는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 너희가 웃는다면, 세상의 모든 걸 잃어도 괜찮다고,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다고, 아빠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








언젠가 너희가 더 커서, 아빠의 이런 모습들이 조금은 창피하게 느껴질 날이 올지도 몰라. “아빠, 그만해요, 사람들이 보잖아요” 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릴지도 몰라. 그래도 이것만은 알아주면 좋겠어. 그 모습이 비록 서툴지만, 너희를 향한 아빠의 진심 어린 사랑 표현이었다는 걸.




아빠는 바보야,

오직 너희를 위한.




너희를 언제나 웃게 하고픈 아빠가.


ChatGPT Image 2025년 10월 6일 오후 08_02_41.png


keyword
이전 09화아프리카의 보름달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