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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

일곱 번째 편지

by 나귀

어? 어?!! 어!!!!!!!!!


















20140927_075755.jpg 아하하..;;





[엄마의 시점]

그날은 유난히 더운 오후였어. 엄마는 집안일을 마치고 잠시 방 안에 누워 있었고, 거실에선 평소처럼 너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 까르르, 깔깔, 키키킥.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활기찬 소리들이 멀어지듯 잦아들더니, 이내 기묘할 정도로 고요해졌어.



“왜 이렇게 조용하지… 뭔가 이상한데…”



아마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그 섬뜩한 정적, 뭐.. 그런 게 있거든. 아이들이 조용해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그 육아의 법칙 말이야. 엄마도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설마 무슨 큰일이야 있겠어’ 하며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지.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침묵이 오래 이어졌어. 5분, 10분... 시계 초침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아서, 결국 엄마는 불길한 예감을 안고 거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지.




바닥에는 둘째의 잘린 머리카락이 가을 낙엽처럼 흩날려 있었어.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너희는 키득거리다가, 엄마에게 들키자 곧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 꼭 범죄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힌 도둑들 같았다고 할까. 그리곤 이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어. 깔깔깔!!


첫째의 작은 손에는 가위가 들려 있었고, 둘째의 머리카락은 이미 가운데가 덜컥 잘려 나가, 마치 작은 폭탄이 휩쓸고 간 것처럼 휑하게 변해 있었어. 아마 너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이미 잘린 머리카락을 되돌릴 마법은 없었지.








[아빠의 시점]

나중에 아빠가 집에 돌아왔을 때, 둘째의 머리 위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아빠도 깜짝 놀랐어.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 고민하다가 (사실 선택지가 없긴 했어) 결국, 둘째는 삭발에 가까운 박박 머리를 해야만 했지.


그 작은 머리통을 손에 잡히는 대로 바리깡으로 깎아주던 순간, 아빠 마음속에는 별의별 걱정이 밀려왔어. 혹시 사람들이 둘째를 보고 피식 웃지는 않을까, 학교에서 친구들이 놀리지는 않을까, 사진 속에 남은 이 머리 모양이 나중에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지는 않을까... 사실 다 부질없는 걱정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크게 느껴졌는지 몰라.




그런데 그 순간, 둘째가 불쑥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아빠, 나 이렇게 머리카락 없어도 사랑해요?”




순간 아빠는 웃음이 터져 나왔어. 너무도 순수하게 묻는 그 눈빛이 사랑스러워서 말이야. 그래서 아빠는 박박 머리가 된 둘째의 동그란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지.



“그럼, 머리카락이 있든 없든, 너는 언제나 사랑스러워. 멋있어! (엄지 척!)”



머리 모양이 어떻든, 옷차림이 어떻든, 사실 그건 아무 상관이 없어. 네가 거기서 숨 쉬고 웃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빠의 세상은 완전해지는 거니까.








지금도 가끔 그날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깔깔 웃잖아.

"엄마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하고 엄마가 말을 꺼내면,

"아빠도 깜짝 놀랐어!" 하고 아빠가 받아치고,

그러면 첫째가 "그때 우리 왜 그랬지?" 하고 웃음과 미안함으로 둘째를 쳐다보지.

그럼 둘째는 “에이그~ 그때 나 참 고생 많았다.” 하면서 우리 모두 빵 터지게 웃곤 하잖아.


지금도 아빠는 그때 사진을 보거나 영상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만의 웃음 코드에 빠져들곤 해. 누구도 절대 알 수 없는, 그 순간의 온도, 우리만 느낄 수 있는 추억 말이야.


그런데 가만 보면, 그런 추억들이 가족을 더 가깝게 만드는 것 같아.


"너 기억나? 그때 그 일?"

"며칠 동안 단수돼서, 나귀가 실어온 물로 생활했던 때 기억나?"

"정전돼서 옥상을 2시간 넘게 걸어야 했던 때가 생각나?"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잖아.


생각해 보면 그게 가정이라는 공간의 힘인 것 같아.


실수도, 서툰 선택도, 엉망진창이 된 순간들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웃음으로 바뀌는 곳.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황당해도 괜찮은 곳. 어설픈 가위질로 머리카락이 바닥에 소복이 쌓여도, 그 서투름마저 언젠가는 사랑스러운 추억으로 남는 곳.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힘이라 생각해.








"아빠, 나 이렇게 머리카락 없어도 사랑해요?"


그때 둘째가 던졌던 그 말이, 사실은 우리 삶의 깊은 질문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아.

조금 다르게 풀어보면 이렇지.


‘이 모습 그대로 괜찮을까? 실수투성이여도,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는 모든 게 엉망진창이어도.. 그래도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일까?’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런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아빠도 가끔 그런 물음을 되뇌이곤 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 어리석은 선택으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올 때. 너희에게 충분히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때, 고생을 함께 나누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차오를 때. 그럴 때면 아빠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지.


‘이런 내가, 과연 괜찮은 아빠일까? 괜찮은 사람일까?’


그런데 둘째가 던진 그 작은 질문 속에서 아빠는 뜻밖의 답을 발견했어. 사실 세상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더라고. 가족 안에서만큼은 언제나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세상은 너희에게 다른 목소리를 들려줄지도 몰라. 조금 더 잘해야 한다고, 더 완벽해져야 한다고,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고. 그 목소리들은 때로 너무 크고 날카로워서, 너희 마음을 흔들고 상처 낼지도 몰라. 실패가 곧 너희 자신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을 테고, 모든 게 너무 벅차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분명 찾아올 거야.


그럴 때 이 편지를 보며 떠올려 줘.


세상 모든 것이 흔들려도,
우리 가족의 사랑만큼은 변치 않는 반석이 되어줄 거라는 걸.

넘어져도 괜찮고, 길을 잃어도 괜찮아. 가족은 언제나 너희를 기다려주는 항구 같은 곳이니까.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북이 쌓였던 그날처럼,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 당황스럽고, 서툴고, 때로는 눈물 나는 일들도 있겠지. 하지만 기억해 줘. 그런 순간에도 결국 우리는 또 함께 웃게 될 거라는 걸. 그게 바로 가족이니까.




세상이 너희를 밀어내더라도,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희를 품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 완벽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상처 입은 마음 그대로도 괜찮아. 그런 너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언젠가 너희도 부모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를 완벽하게 빚어내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순간들을 함께 견디고 품어내는 일이라는 걸.


그러니 이걸 반드시 기억해 줘.




네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
너희는 언제나 우리의 웃음이고 빛이며,
아빠와 엄마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야.




너희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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