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편지 [추석 Special]
아빠는 ‘명절’ 하면, 언제나 할머니 댁 파란 지붕의 시골집이 먼저 떠올라. 그곳에서 사촌들과 뛰놀던 웃음소리, “잘 지냈어?” 하며 건네던 친척들의 인사, 집안을 가득 채우던 떡 냄새, 그리고 풍성한 식탁까지. 그 시절의 명절은 참 따뜻했어.
그래서일까. 가끔은 너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
이곳, 아프리카의 추석은 한국처럼 분주하지 않잖아. 어쩌면 당연하지. 여긴 송편 향기가 나는 거리도 없고,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도 없어. 달력엔 ‘추석’ 대신 숫자 하나가 덩그러니 적혀 있을 뿐이야. 그저 또 하나의 보름달이 뜨는 평범한 날, 어쩌면 그냥 흘려보내면 그만인 하루였지.
하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엄마와 아빠는 그날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명절의 온기만큼은 너희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엄마가 먼저 말했지.
“그래도 추석인데, 떡을 한번 만들어볼까?”
그 말에 아빠는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사실 아빠는 요리에 젬병이라, 뭘 해도 서툴 게 뻔했지만 괜찮았어. 요리 천재 엄마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를 위해서.
당연히 여기선 떡 재료를 구할 수 없었지, 그래서 한국에서 할머니가 진공포장해 준 개떡 반죽을 이용했어. 사실 그 무거운 반죽을 가져올 땐,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 (하지만 개떡반죽으로 만든 송편을 먹는 순간, 반죽을 가져온 게 어찌나 감사하고, 자랑스럽던지.. 하하;;)
그날 우리는 신이 나서 팔을 걷어붙였지만, 처음 만들어보는 떡이 쉬울 리 없었지. 부엌은 엉망진창이 되고, 반죽은 손에 달라붙고, 송편 모양은 잡히지 않았어. 아빠가 빚던 떡은 떡이라기보다 이름 모를 덩어리에 가까웠지. “이게 되는 거 맞나?” 하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살짝 걱정도 되었어.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방앗간에서 떡을 주문해 올 수도 있었고, 가까운 떡집에서 고운 송편을 사 올 수도 있었겠지. 뭐가 좋을까? 꿀떡, 인절미, 시루떡.. 그 이름만 떠올려도 입안에 달콤한 기억이 떠오르는 무수히 많은 떡들.. 그 맛을 너희에게 마음껏 먹여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긴 아프리카. 떡집이 없는 이곳에서 아빠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어. 익숙한 것들이 없는 낯선 명절, 조금은 허전한 마음이 한숨에 섞여 나왔지.
그렇지만 그 한숨은 오래가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 순간, 너희가 반죽을 사방에 묻히며 깔깔 웃고 있었고, 엄마는 “이것도 추억이지 뭐” 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엄마의 송편 빚는 솜씨는 아빠의 걱정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지.) 그 웃음소리가 집 안 가득 퍼져 나가자, 방금 전까지의 한숨은 금세 녹아내렸어. 떡 냄새 대신 웃음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고 있었거든.
그때를 떠올려보니,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사람은 혼자일 땐 그냥 버텨. 시간이 흘러가는 걸 그저 견디며 살아가지. 하지만 함께일 땐 달라. 하루가 의미로 채워지고, 시간이 추억으로 남고, 서로의 온기가 하루를 따뜻하게 덮어줘.
아빠는 그걸 이 먼 땅의 추석에서 다시 느꼈어. 명절을 완성시킨 건 떡도, 음식도, 달빛도 아니었어. 바로 너희의 웃음, 그리고 우리가 함께였다는 그 사실 하나였지. 그래서 아빠는 너희에게 고마워. 너희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떡도 먹어볼 수 있었고, 명절을 명절답게 만들 수 있었어.
언젠가 너희가 이곳을 떠나 너희만의 길을 걷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날이 오면 아빠는 아마 눈물이 찔끔 날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더 슬플지도 모르겠어. 너희가 없는 적적한 식탁, 허전한 명절을 맞이하면서 말이야.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엔 함께 아프리카에서 떡을 빚던 기억이 남아 있을 테니까. 반죽을 흘리며 엉망이 되었던 부엌, 엄마의 웃음소리, 맛있다며 집어먹던 그 송편 한입의 온기가 엄마 아빠에게도, 너희의 마음에도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함께라는 건 꼭 누군가 곁에 있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 그 사람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이 마음속에 머물러, 오늘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것.. 그것도 ‘함께’란 생각이 들어. 완벽한 날보다 서툴렀던 날들이, 거창한 말보다 나란히 앉아 곁을 지켜주던 침묵이 더 오래 남는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사랑은 완벽함으로 남는 게 아니라,
함께함으로 오래 남는 거니까.
그리고 언젠가, 너희가 엄마 아빠와 멀리 떨어져 하늘의 달을 바라볼 때마다 기억해 줘. 이번 추석의 보름달처럼, 너희가 어디에 있든 항상 같은 달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을 거야. 그 달빛 아래에서 우리는 여전히 함께야.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같은 달빛 아래 서로의 마음은 닿을 테니까.
잠깐 정보: 달의 위상은 지구 어디서나 동시에 같기 때문에, 시간대 차이만 있을 뿐 한국과 세네갈에서도(전 세계 공통) 같은 시기에 보름달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