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편지
"Joori waay bu mu la tax a sànni say sagar."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옷을 보았다고 해서
너의 누더기를 버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세네갈의 이 속담이 어느 날, 아빠의 마음을 똑똑 두드렸어.
보통 우리는 누군가의 화려함을 볼 때,
본능처럼 괜스레 스스로를 보며, 마음이 초라해지곤 해.
하지만 절대 잊지 마.
비교는 끝없는 피로의 굴레일 뿐이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교라는 틀 위에 세워져 버려.
누가 먼저 걷는지, 누가 더 총명한지, 누가 더 사랑스러운 얼굴을 지녔는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비교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아. 누가 더 성공했는지, 누가 더 행복해 보이는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그렇게 우리의 삶은 누가 제시한지도 모르는 잣대에 흔들리며, 마음은 늘 어딘가 모를 초조함으로 가득 차곤 하지. 어쩌면 비교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어.
요즘 시대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 작은 화면 안에서 우리는 수백 명의 삶을 동시에 바라보지. 다른 사람의 웃음은 유난히 환하게 빛나고, 그들의 식탁은 늘 풍성해 보이는데, 내 하루는 그 앞에서 왠지 빛을 잃은 듯 느껴져.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남의 화려함 앞에서 누더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2011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부탄이라는 나라는 불과 8년 뒤,
2019년 조사에서 95위로 추락하며 행복지수가 급락했다고 해.
행복지수가 급락한 이유?
그건 의외로 단순했어.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빈곤을 자각하게 되었고, 동시에 다른 나라와 자국을 비교하기 시작한 거야.
삶은 변하지 않았는데, 비교가 불행을 만들어낸 셈이었지.
아빠도 고백하자면, SNS를 보다가 종종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 '너희들에게 저 것도 못 사주고, 저런 곳도 못 데려가고, 저런 경험도 못 시켜줬네.' 하는 자책이 스멀스멀 올라오거든. 하지만 곧 깨닫는 건, 비교는 부모인 나에게도, 아이인 너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야. 비교는 마음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그저 지치게 만들 뿐이니까.
이제 곧 한국은 4계절 중에 겨울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이곳, 세네갈은 너희도 알다시피 이제 막 건기라 불리는 또 다른 이름의 계절이 시작되려 하고 있어. 습기는 사라지고, 공기는 바짝 마르고, 그 위로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스쳐 가는 시기. 그리고 거기에 더해 모래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돌아오는 거지.
이렇게 한국과 다른 세상에 살다 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모두 다른 계절을 사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계절이 봄일 때, 누군가의 계절은 겨울일 수 있어. 누군가의 계절이 여름일 때, 누군가의 계절은 이제 막 선선한 가을에 접어들 수도 있어.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하늘 아래 수많은 다른 계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희도 살아가다 보면, 편집된 숏츠 속 누군가의 삶이 화려해 보일 수 있고, 그 화려함 앞에서 너희의 일상이 누더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때 기억하면 좋겠어.
봄의 꽃이 눈부시다고 해서, 여름이 초라한 건 아니라는 걸.
가을의 단풍이 화려하다고 해서, 겨울의 고요가 의미 없는 건 아니라는 걸.
계절이 다르다는 건 단지, 우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뜻이야. 이곳 브런치를 봐도 그렇잖아. 어떤 사람은 스무 살의 이야기를 꽃피우고, 어떤 사람은 마흔 살에 맺은 열매 이야기를 해. 어떤 사람은 빠르게 달리며 정보를 쏟아내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걸으며 길가의 풍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모두가 달라. 그렇지만 틀린 게 아니야. 아프리카에 사는 너희는 그 의미를 더 온전히 느낄 거라 생각해. 모두의 속도와 시간이 다 다르지만, 모두의 계절이 옳다는 걸 말야.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옷을 보았다고 해서 너의 누더기를 버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세네갈의 이 속담이 말해주듯, 남의 화려함이 곧 너희 삶의 초라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야.
때론 너희 옷이 보기에 누더기 같아 보일지 몰라도, 너희가 입고 있는 그 옷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뿐인 옷이거든. 오롯이 너희의 땀과 노력으로, 너희의 시간과 선택으로, 너희의 웃음과 눈물로 한 올 한 올 짜여진 옷이야. 그 옷에는 너희가 견뎌낸 추운 겨울의 온기가 스며 있고, 너희가 사랑한 사람들의 체온이 배어 있어.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충분히 아름다운 너만의 옷이야.
그러니 기억하자. 너희가 서 있는 계절이 지금 어느 지점이든,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어도 그 자리는 결코 틀리지 않았어. 누군가는 봄을 지나고, 누군가는 겨울을 건너는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