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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살아 돌아올 확률은 몇 퍼센트 에요?

열다섯 번째 편지

by 나귀

2021년 아빠가 코로나로 응급차에 실려 간 그날 밤,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고 집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어. 아빠가 떠나는 걸 지켜보던 둘째가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물었지.


“엄마, 아빠가.. 살아 돌아올 확률은 몇 퍼센트예요?”


둘째를 달래기 위해 “걱정하지 말자”라고 말하자,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던 둘째의 뒷모습이 엄마에게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대.








그땐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은 시절이었어. 백신도 없고, 전 세계가 두려움 속에서 몸을 웅크리던 때니까.. 그런 때에 이곳 아프리카 열악한 병원에서 아빠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영양제와 소화제뿐이었어. 게다가 그것들 마저 병원엔 없으니 직접 사 오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아, 정말 여기에서 끝나는 건가.’ 그 생각이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는지 몰라. 그래서 그때, 너희에게 남길 마지막 말을 적어두려고 했지. (물론 스마트폰을 들 힘도 없어서 실패했지만 말야. 하하.;)


다행히 아직 아빠가 하늘나라로 갈 때가 아니었나 봐. 사흘쯤 지나면서 열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고, 8kg이나 빠질 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결국 열흘이 지나면서 고비를 넘겼어. 그 짧고도 긴 열흘 동안, 병실 창문 너머의 하늘이 유난히 아쉽더라. 같은 하늘 아래, 다른 공간에서 너희가 숨 쉬고 있다는 것, 밥을 먹고 있다는 것, 아빠가 없는 빈 식탁에 너희들이 앉아 있다는 것. 우리가 함께 즐기던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그립던지..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던 날.

현관문을 열자마자 퇴원한 아빠를 위해 몰래 준비했다던 노래를 떼창처럼 시작했는데,, 몇 마디 지나기도 전에 울음이 먼저 터져버렸어. 말들이 울컥울컥 끊기고, 가사가 눈물에 잠겨 흐려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빠도 결국 너희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고 말았어. 한참을 그렇게..


너희의 따뜻한 체온이 품속으로 스며들고, 작은 손들이 아빠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귓 가에 닿을 때, 그 모든 순간이 꿈속 장면처럼 믿기지 않았어. 다시 너희를 안아볼 수 있다는 것, 다시 숨결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이 평범한 순간이 그렇게 고맙고 소중할 줄이야.







그날 이후로, 아빠는 생각했어.




나는 평범한 일상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나.




둘째의 질문에 빗대어 너희에게 질문해 볼게.


"너희가 이렇듯 평범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예전에 아빠가 우연히 어떤 사람이 ‘한 인간이 존재하게 될 확률’을 과학적으로 계산해 놓은 글을 봤어.


우리 우주가 생명이 가능한 모습으로 시작될 확률부터 해서, 그 우주 안에서 인간 종이 태어날 행성이 형성될 확률, 그리고 수없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바로 '너희'가 지금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엄마 아빠의 자녀로 태어날 확률. 그 모든 수치를 계산해 나온 결과가 ‘10의 935억 5340만 260승 분의 3’이라고 하더라구.


이게 어느 정도 놀라운 확률인지 감이 와? 음.. 로또 맞을 확률 알지? 저 수치는 로또를 수. 백. 억. 번 연속으로 맞히는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낮은 확률이야. 한마디로 불가능에 가까운 숫자라는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계산해 보면, 아침에 눈을 뜨는 일,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이 터지는 그 순간들. 그리고 아빠가 살아 돌아와서 너희의 노래를 듣고, 너희를 안을 수 있는 이 모든 순간! 이 모든 게 ‘극도로 희박한 확률이 만들어낸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너희가 학교에서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들, 아침에 일어나며 건네는 졸린 인사, 별 뜻 없이 튀어나오는 너희의 유머들.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하게 이루어질 확률이 몇 퍼센트 일까? ㅎㅎ

맞아.

당. 연. 한. 건. 하. 나. 도. 없. 어.

그래서 아빠는 오늘 주어진 이 평범한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그러니 너희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우리가 함께 있는 이 순간은 수도 없이 작은 기적들이 쌓여 만들어진 행복이라는 걸.


기적은 멀리 있지 않고, 늘 우리 곁에 있어.

단지 우리가 그것을 평범이라 부르고 있을 뿐이야.




오늘도 기적 같은 너희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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