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전쟁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실은 2차대전 밀덕이셨던 어머니로 인해 초1때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디즈니 애니도 아니고 논픽션의 B-17 폭격기 영화일 정도로 (아마 누군가는아동학대라 볼 수도...?ㅋ) 어린시절부터 많이 접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로맨스물과 무협/서사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폐소공포증으로 극장을 못다니셨어서 아무래도 취향이 편향될 수 밖에 없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전쟁영화를 자주 접하다보면 대부분 그 안에 반전 메세지 또한 함께 들어있기에, 끔찍함을 간접경험하면서 오히려평화주의자를 꿈꾸게 만드는 나름 긍정적인 반작용?이 있는것 같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신부/Father가 되어 외가의 대를 끊어버린 외삼촌 또한 초딩용 전쟁이야기 책을 쓴걸 보면, 전쟁역사에 꽂히는게 모계쪽 전통인건가 싶기도...ㅋ)
<왼쪽 라디에이터가 터졌잖아?!!>
개인적으로 전 이 작품에 현대 기독교의 해방/생태신학이나공생/공존을 중요시하는에코 페미니즘의사상이 녹아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만, 어릴때 과제하며 글로만 접해서 기억이 흐릿한...)
영화속 운전석을 주의깊게 보시면 꽤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요. 워리그에 잠입해 이곳을 혼자서 몰래 탈출하려했던 퓨리오사는 잭의 조수인 블랙썸의 유지를 이어받아 워리그의 끊어진 엔진의 호스(차량의 탯줄)을 정비해주다가 전투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리곤 워리그(Kenworth W900)의 왼쪽라디에이터(냉각/방열) 투구가 터지자, 자신의 모자로 불을 끈다음 다시 제대로 끼워주는 퓨리오사. 그녀는 결국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잭의 왼편 조수석에 앉게 됩니다.
<왼쪽 보조석/오른쪽 운전석에서 아픈 워보이들 이끌고가는 엄마/아빠?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뒤바뀌곤 하는 운전석>
시간이 흐른뒤 디멘투스의 가스타운에 들어갈 때 보면 이제는 그녀가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있습니다. 때문에 디멘투스는 그녀가 대장일거라 착각했었지요. 전우인 이 커플 사이에서 누가 대장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디멘투스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을 땐 운전석을 그녀에게 맡기고 보조석에 탄 잭이 밸런스를 잡아주는 대장역할을 맡은 듯 합니다. 잭이 그녀의 분노 억제기, 즉 엔진의 열을 식혀주는 라디에이터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을 찾아서 잭과 함께 새로운 여정을 떠날때는 왼쪽 운전석(Plymouth Valiant)에, 잭이 죽고난 뒤 디멘투스를 찾아서 나홀로복수의 여정을 떠날땐 다시금 오른쪽 운전석(Cranky Black)에 앉습니다.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장발의 왼쪽 운전석(우)과 과거 죗값을 치르게 하는 삭발의 오른쪽 운전석(좌)>
왠지 왼쪽(left)은 미래의 새로운 곳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진보적인 가치를, 오른쪽(right)은 과거의 올바른 정의를 위해 뒤에서 지켜주려는 보수적 가치를 담고 있는게 아닐까 싶더군요. 참고로 디멘투스가 몰고다니는 3위 일체식전차(BMW R18+Chariot 개조), 3쌍의 바퀴를 단 장갑차스러웠던 식스-풋(Mack DM-800), 마지막에 탔던여인몸의오토바이(BMW R18+rotec R2800 엔진) 모두 보조석이 딱히 없는 정중앙의 운전석입니다. 어쩌면 그에게 센터의 운전석이란? 타노스마냥 나홀로 중심/밸런스 잡는 것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feat. 마블 사가)
<과거 타노스에게 당했던 걸 까먹은 치매(Dementia) 환자 전직 토르>
물푸레나무의 쓰임새
이 작품은 위그드라실 사가라고 불러도 되겠다 싶을 만큼 퓨리오사 안에 대지나 과일과 관련된 다양한 북유럽 신화의 여신들(이둔, 시프, 헬라, 프레이야 등)과 세계수 즉 생명 나무의 이미지가 들어있는 듯 했습니다. 본래 이 위그드라실 나무는 과실수가 아니라 인도-유럽 신화에서 엄청 사랑받는 물푸레 나무입니다. 특히 암나무와 수나무가 각각 따로 있는데요. 열매를 딱히 먹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목재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높아서 창의 손잡이, 몽둥이와 같은 무기나 가구를 만드는데 쓰였기에 전쟁과 관련된 신화들에서 자주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일렉트릭 기타의 바디(body)로도 많이 쓰이고 있구요.
(묘하게 후반부 의수를 착용한 퓨리오사의 몸이 꼭 일렉기타/악기 같단 생각을... )
영화의 막판에 몸의 반쪽/잭을 잃고 분노의 씨앗을 삼키며 암흑의 천사가 된 퓨리오사는 전편에서처럼 기억과 언어 기능을 담당한다고 알려진전두엽이 있는 이마와눈 부위에 까맣게 숯을 바르더군요.(feat. 파묘의 화림인 줄?) 자신의 몸을 쪼개고 죽임으로써 다양한 가치들을 생산해내는 물푸레나무를 영어로는 재/파멸/멸망을 의미하는 Ash라고 부릅니다. 한편, 이 나무의 껍질을 맑은 물에 넣으면 물이 파~랗게 변색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물푸레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청피목(靑皮木)이라 불렀습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껍질에서 우러나온 이 파란 물을 눈에 바르면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을 낫게 하고, 눈을 밝게하는눈물분비 과다증의 약으로 널리 알려져있지요.
또한, 서양에서는 주로 여성의 자궁질환과 관련하여 월경문제와 산후조리(단, 임신중에는 유산을 유발), 뱀독 완화, 기관지염 등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감독님은 정형외과 의사 출신으로 최근 <3000년의 기다림>을 만드시면서 동서양의 신화를 한바탕 섭렵하신 듯 하더군요. 때문에 위그드라실 즉 물푸레나무가 재(Ash)를 의미하면서 목재(body)로서의 가치 뿐 아니라 의학적으론 안구/자궁질환/호흡기/해독약으로 쓰인다는 효능을 왠지 아셨을 듯한...
간호/회복(nurse)의 십자가
물푸레나무는 워낙 오랜세월 동안 크게 잘 자라기 때문에 동서양 모두에서 당산나무처럼 신성하게 여겨졌습니다. 보호수(nurse tree)라 불리는 이런 큰 나무들은 우리가 보호해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크고 빠르게 자라는 이 나무가 느리게 자라는 다른 작고 연약한 동식물들을 생태적으로 돌봐주고 지켜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퓨리오사가 병약한 하얀 워보이들을(본의 아니게?) 지켜주게되는 강인한 사령관'암흑의 천사'가 된 것처럼요. 영어로 보호수에는 간호(nurse)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거든요.
그녀가 아직 엄마를 구해낼 힘이 없던 어린시절, 다시 돌아와서 결국 디멘투스의 새장 안에 갇혀 보호를 받았을 때 철창의 천장 형태를 보시면 하얀 십자가 모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만능 캐릭터의 전사로 자라난 그녀에게 이제는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가라며 녹색 신호탄을 쏘아올린 잭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던철창 밖의 퓨리오사. 이 때 철창문의 모습은 마치 검은 십자가 모양처럼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그녀가 다시 돌아온 뒤자신의 엄마처럼 저격총을 쏘며 잭을 구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19C 크림전쟁에서 '백의의 천사(White Angel)'라 불렸던 간호사이자 야전병원장이었던 +나이팅게일+이 떠올랐습니다.
(하아... 잭...... 자기 엄마 못지않게 그를 살리고 싶어서 되돌아온 것일텐데...)
<화염에 휩싸인 검붉은 적십자스러운 장면>
참고로 nurse란 단어는 본래 '젖'을 먹인다는 뜻의 라틴어가 발전해 '유모'가 되었고, 그게 나중에 돌봄,간병과 같이 사람을 건강한 상태로 돌이켜주는, 즉 '회복'을 시켜주는 간호사란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자라게하는 양묘장을 'nursery'라고도 하는데요. 이 단어는 보육원/유치원을 뜻하기도 합니다.
뿌리혹 박테리아의 재생
한편, 씨앗을 입/헤어 안에 품고 있는 여성스러운 열매 못지않게 전 엔딩 장면에서의 남성의 뿌리 부분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참고로 나무들 중에선 종종 워보이의 몸에 난 종양같은 뿌리혹박테리아(세균)를 다룰 줄 아는 종도 있습니다. 마치 디멘투스의시체 위에서나무가 크게 잘 자라게 된 것처럼요.팔(+★)이 잘린 퓨리오사는 시타델의 땅굴 속에서 왠 노파(히스토리 우먼?)가 시신/다친 곳에 뿌리혹(세균)마냥 구더기들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걸 확인하는데요. 비록 나이팅게일은 파스퇴르의 미생물설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대였으나, 퓨리오사는 그 다음 시대의 간호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놔~왜갑자기 죽은 아이 인형달고 다니며 유치하게 굴던치매환자 디멘투스가 꼭 전편에서 종양(tumor) 달고다니던 워보이 눅스처럼 짠하게 느껴지는건지...)
<눅스의 목에 난 종양 '래리'와 '배리', 그리고 뒤에서 미래의 회복 가능성을 지지해준 빨간머리 소녀 케이퍼블>
생명의 호흡
퓨리오사(Furiosa)라는 이름은 어쩌면 분노(Fury)라는 단어에 생명의 호흡(Osa)이 합쳐진 이름이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녀는 이번 편에서 거의 죽은 듯이 입 다물고 지내는 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참고로 오사는 수면 무호흡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마 전편 <분노의 도로>를 보셨던 분들은 그녀가 저격총이 달린 잘린 왼팔을맥스(Max)의 오른쪽 어깨에기대어의지한 채적을 사냥하면서 "Don'tBreathe"(숨쉬지 마!)라 말했던 장면을 떠올리실 수 있을텐데요. 여러모로 페미니즘의 시각을 드러내면서도 함께 호흡하고 같이 참아가면서 살아가자고 말하고픈 감독님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전편에서 퓨리오사는 폐에 공기가 들이차면서 숨을 못쉬게 됩니다. 그러자 맥스가 튜브로 기흉을 뚫어준 뒤 자신의 피로 수혈해주지요. 전편에선 피주머니(맥스)가 튜브로 연결되는 이미지가 계속 등장했다면, 이번편에서는 마치 탯줄처럼 엔진과 연결된 호스를 끊어버리는 이미지가 계속 강조되는 듯 했습니다.
<"숨쉬지 마(Don't Breathe)~!">
한편 전 이 영화를 보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하마스전쟁과 우크라이나전쟁이 자꾸만 연상되더군요. 전쟁이란? 되갚아주려는 복수심을 못참아서 생기는 끊임없는 惡순환의 사슬고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꽤 오랜기간 말을 참아왔던 퓨리오사가 惡의 화신과도 같은 문어발 낙하산의옥토보스에게 엄마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사슬공(Bommy knocker)"을 외친 뒤, 그 여파로 인해 녹색식물이 가득한 식량칸에 있던 난쟁이 워보이가 죽은 게 참으로 안타깝더라는...
<"사슬공(Bommy knocker)~!!!">
▶다음에는 성장기/사춘기성(性)과말(word)에 관한동화책<잭과 콩나무>와 추억의 동요인<과수원길>의 이야기를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잭 ▶ 콩나무 ▶비료식물(뿌리혹 박테리아)의 연상작용 때문인지 전 자꾸만아까시나무/아카시아꽃이 떠오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