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시+영화] 스쿼시와 충돌/매너/의도

운동으로 얻는 삶의 Insight-4 (feat. 하이라이즈 이미지)

by Nashira

[스쿼시+영화] 시리즈

01. 스쿼시와 공간에서의 위치(position)

02. 개인적인 스쿼시경험과 긴장(stress)

03. 스포츠게임과 레벨/게임/차이/성(性)

의 후속편입니다. 순서는 상관 없습니다. :)

스쿼시/라켓볼이 등장하는 세 작품 : <엽기적인 그녀>, <러브 스토리>, 그리고 우디 앨런의 흑백영화 <맨하탄>


<엽기적인 그녀> (2001)

"견우야 미안해!" 타임캡슐을 묻으러 간 곳에서,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간 그녀.


<러브 스토리> (1970)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사랑은 미안하단 말을 할 필요가 없는거야.


<맨하탄> (1979)

"You can have a little faith in people" 사람들에게 믿음을 좀 가져봐요.


※ 이미지에 의한 영화 <하이라이즈>의 약스포 있음!

<하이라이즈> 에서 마치 벽/배경과도 같은 회색빛깔 페인트에 집착하던 주인공, Dr. 로버트 랭



04. 스쿼시와 충돌/매너/의도


스쿼시를 처음 시작할 땐, 지인들로부터 "넌 하지도 않냐"며, "널 함부로 대하는 이들에게까지 굳이 친절할 필요는 없다"는 조언을 한창 듣고있던 차였다. PM/관리자란 명목 하에 함께 일하는 이들의 어려운 하소연을 들어주던 나는 어느덧 각자의 욕망이 난무하는 게임판에서 내 몸을 갈아넣어 일처리를 도맡는 NPC(Non-Player Character)가 되어있었다. 보다못한 어떤 이는 내게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란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심지어 PI/책임조차 네 실속 좀 챙기라며 화를 내곤 하셨다. (이 판을 깔아둔 이 이상주의자 냥반이... ㅡㅡ^) 때문에 오지라퍼/호구?같은 내 성향 싫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교정해보고 싶었다. 외강내유형 인간인지라 얼핏 강하고 단단해보이지만, 은근 상처를 잘입는 유리멘탈인 내 모습에 지쳐가던 중이었다. 처음엔 의도치 않은 공격일 거라 받아들였으나, 어쩌면 다른 의도가 숨겨진 공격이란 깨달음에 내상을 입은 것일지도... 어느 순간 미안하다는 말이 지긋지긋해졌다.

<하이라이즈> 속 설국열차를 닮은 40층짜리 아파트에서 여러층을 오가는 일종의 공유재/편의시설이던 정신과의사 랭. 그는 최고층에 살던 건축가 로열과의 스쿼시 약속 덕에 살아난다.

그렇게 난 갑작스럽게 찾아온 번아웃으로 인한 무기력증, 그리고 공황장애를 닮은 사회공포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쿼시에 빠져들었다. 나를 스쿼시코트로 이끌어준 옆팀 선배는 이곳을 떠나갔지만, 어차피 깊은 터널/동굴에선 나 스스로 빠져나와야할 문제였다.

스쿼시를 칠 땐 이 나뉘지 않는 공간의 특성 덕분인지 잠재되어있던 호승심이 좀더 원활하게 삐져나왔다. 쿨쿨 잠들어있는 내 경쟁심과 공격성을 끄집어내기 매우 좋은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아드레날린도파민에 취하는 무아지경의 순간이 되면, 종종 서로의 위치를 잊고 공/목표만 보다가 충돌사고가 벌어지곤 한다. (feat. <챌린저스>)

분명 테니스 영화인데, 희한하게 스쿼시가 떠오르는 영화 <챌린저스>

한편, 큰 키로 중앙을 딱 차지하는 스쿼시코트의 젊은 청년은 내가 에 물러나 있으면 위치가 안보이다보니 빠르게 못비켜줘서 진로방해를 하거나, 내 라켓에 맞을 뻔 하곤 했다.

사고방지 측면에서 상대방이 맞을 것 같으면 라켓을 거둬들여도 이기기 때문에 바로 을 풀어야하지만, 게임 스피드가 빠르면 아있는에 살짝 찍히거나 부딪히는 상황이 종종 나온다. 심지어 난 내 라켓에 내 왼무릎이나 왼손등, 오른종아리가 찍혀서 멍든 적이 있을 정도로 정신없이 몰아치는 빠른 템포를 좋아한다. 이 안나오면 내 몸을 깎아서라도 치려하는 편이다. 한번은 라켓상대 몸에 걸리던 느낌에 미안해했으나 그 친구 꽤 아플텐데도 안맞은 척을;; (나도 참 자제력을 길러야할텐데...)

회전반경 안에 들어가면 라켓에 맞고, 상대방과 앞벽 사이에 서있으면 공에 맞을 수 있다.

대신 그 친구는 이 안나옴에도 불구하고 일단 날렸다가 종종 중앙에 서있던 엄한 으로 맞추곤 했다. (내가 공의 진로를 막았더라도 어차피 공이 앞벽으로 갈만한 이 아니었다면 이건 네가 진 거라고 강사님께 한소리 들은...ㅋ) 둘다 상당히 과격하게? 치는 편이라 강사님이 잘들 논다며? 종종 강습 대신 게임의 심판을 봐주곤 하셨다.

스쿼시는 상대를 벽/코너로 몰아넣는 게임이기도 하다. 종종 벽을 짚고 반동을 이용해 중앙으로 튕겨나오기도... 만약 상대가 진로를 막았을 경우 라켓을 든 상태로 멈추면 이긴다.

어마무시한 파열음에 비해 맞아도 의외로 안아프지만, 라켓소리없이 가 나가는 대단히 위험한 도구이기에 스쿼시를 칠 땐 매너가 특히 중요하다. 공을 치지 않아도 점수가 나는 스쿼시의 특이한 룰은 바로 한 공간 안에 있어 경로가 겹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아섰으니 페널티!(stroke) vs 이 판 무효!(let)는 바로 공격자의 의도(intention)를 기준으로 나뉜다. 공을 칠 의도/기회가 있었는데도 상대가 다칠거란 예상으로 참았느냐, 아니면 자리잡을 의도나 을 칠 의도를 미처 못가졌느냐의 차이다.

의도가 충분했으나 매너를 보였을 경우 스트로크(길이 막혔으니 안쳤어도 +1점!), 애매~하게 방해받았거나 회피했으면 (이번 판은 잊고 리셋!), 아예 기회포기했거나 어차피 못받을 공이었다면 NO렛(-1점!)으로 구분된다. 때문에 충돌이 났을 때는 의도상황 판단하는 심판/저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오래전 내가 좋아했던 라이벌 관계 : 라미 아슈어(이집트) vs 그레고리 고띠에(프랑스)

난 살짝 걸리적거리는 정도는 (배운대로) 그냥 을 밀거나 돌아가서라도 쳐보는 편이라, 안쳤을 경우엔 반응이 얼타 공/기회 쫓는걸 미리 포기했다며 대부분 양심적으로 이실직고 한다. 아니면 상대가 먼저 자신이 길막했다고 시인을 해준다. 대게는 대충 (무효!)으로 퉁~ 친다. 한편 자기가 늦어놓고는 상대방 방해만 없었으면 받을 수 있었다고 어필/쇼 하는 고렙을 종종 보기도 했다. 아아... 그 정도로 이기고 싶어해야만 레벨이 오르는 것인가...ㅋㅋㅋㅋ

라미의 얄미운 기타짤과 고띠에의 흥칫뿡! 밀침 : 둘은 거의 영혼의 단짝 같았다. :)
라미 아슈어의 관중/심판을 향한 잔망스러운 끝인사

여튼 스쿼시는 정신없이 휘몰아치다보면 자신의 페르소나 속에 감춰진 본능이 저도 모르게 표출되거나, 혹은 를 가지고 바깥에 드러나게 하는 꽤 매력적인 운동이다. :) 종종 고렙에겐 구력에서 밀리거나, 엇비슷하면 이/성별/체격 차이로 파워/스피드가 딸리곤 한다. 나는 차라리 중앙/앞무대를 내어주고는 상대의 등 뒤로 물러나 마치 그림자처럼 똑같이 모방하며 방어만 하다가 여우처럼 발칙하게? 갑작스런 방향전환을 노리는 편이다. 다만, 나보다 저렙동성과 칠 때는 대체로 내 체격/체력우위인지라 (T존)을 딱 차지하고는 공 쏴주는 기계/기둥이 되어 상대가 재미있게 즐기기 좋은 템포로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 결국 나에게 잡히도록 나름 늑대처럼 젠틀하게? 노는 편이다.

그러나... 체격이 나보다 작면서 실력이 엇비슷한/윗 레벨의 동성과 칠 때는 게임을 잘 즐기지 못하고 매너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실력 발휘를 포기한다는 나의 숨겨진 이면을 발견하기도...

<하이라이즈> 초반에 펜트하우스 파티에서 쫓겨나 거울이 가득한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랭
<하이라이즈> 에서 Dr.랭은 자신의 차량이 주차된 위치를 망각한다. 자신의 컴플렉스/거짓말 때문에 39(40-1)층에 살던 후배의사가 차량 위로 추락한 뒤 1번 회색에 집착한다.

내가 자꾸 중앙을 차지하지 않고 시야를 확보하고자 뒤로 물러나 방어적으로 게임하는 회피 성향을 보이자, 예전의 한 강사님은 게임할 때마다 몸빵을 세게 걸면서 스쿼시는 결국 자리 싸움이란 것을 가르쳤다. 앞으로 치고 나오려할 때마다 미리 자리선점하지 못했다면 돌아서 가라며 우뚝 서있거나, 분명 피해서 칠 수 있음에도 본인이 중앙에서 라켓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을땐 손으로 밀쳐서라도 날 튕겨내 버렸다. 오히려 라켓에 맞는게 더 위험하기 때문에 밀쳐내는 게 진짜 배려인 것이다. 그렇게 난 중앙의 T존을 차지해야한다는 것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프로 경기일수록 중앙의 T존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신경전이 은근 자주 발생한다.
<하이라이즈> 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고를 하던 하층의 다큐멘터리 감독 와일더는 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아파트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몸으로 직접 40층 건물을 등반해 올라간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세게 밀친다고? 그것도 체급 차가 는 여성회원을? 싶어서 좀 놀랬으나... 결국 라켓/도구가 아닌 몸빵은 상흔을 남기지 않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충돌이기 때문에 자신이 도구/기술을 휘두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힘겨루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퍽~! 밀쳐서 발끈~!하게 만들어 주시는 강사님을 제외하곤, 겉으로는 매너가 좋은 다른 이들과 칠 땐 그게 잘 안되긴 하더라는...ㅋ)

<하이라이즈> 에서 거울로 만든 만화경을 보던 샬롯의 아들 토비 "그걸로 뭐가 보이니?" "미래요." 아이는 라디오로 마거릿 대처의 연설을 들으며 비눗방울 거품을 내뿜는다.

To be Continued...


00. 스쿼시의 특성

01. 스쿼시와 공간에서의 위치(position)

02. 개인적인 스쿼시 경험과 긴장(stress)

03. 스포츠 게임과 레벨/계급/차이/성(性)

04. 스쿼시와 충돌/매너/의도

05. 스쿼시와 템포/시간/효율

06. 기회를 쫓는 근성과 회복탄력성

07. 자아의 미러링과 인간관계의 경계/선

08. 노마드처럼 결국 재이동/탈피하는 장소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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