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금호 May 22. 2019

독일 IT 취업 : 인종 차별에 대하여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인종차별주의자였었다.

독일 취업, 유학이나 이민을 고민 중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 중에 하나는 "인종차별"과 "난민"에 대한 것이다. 혹시 내가 인종차별을 당하지는 않을까? 혹시 내가 사는 지역에 난민이 있지나 않을까? 내가 사는 지역에 아랍계 외국인이 많은데 치안은 문제 없는가? 하는 걱정에서 묻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우리 가족의 경우에 애초에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한 적도 없고, 그것 때문에 독일에 오는 것을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인종차별"을 당했다라고 느낀 적은 지난 1년간 딱 한번 정도였을 뿐이라, 그다지 중요한 주제가 되지 않는다. 회사 퇴근후 독일어 수업을 듣기위해 VHS(시민학교)로 가는 중에, 여학생 둘하고 눈이 마주친 적이 있는데 마침 잘되었다는 식으로 내 뒤에 대고 일본어인지 한국어인지 흉내를 내는 것을 들었지만 뒤늦게 깨달았기에 무시하고 간 적이 있다. 그외에 가끔 마켓 캐셔가 독일인에게는 친절하고 우리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것 같은 것도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아시안마트의 캐셔들도 종종 그러기 때문에 이건 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인간들이 있을 수 있다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웃으며 인사를 나누며,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은 기본이고 사소한 것에도 항상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필자는 내가 누군가에게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우리 팀에 M군(40세)가 입사를 했는데, 영어를 잘하고 마치 영화에서 많이 봤던 텍사스 사람처럼 보이길래 그를 잘 모를 때는 미국인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독일인이었기에 깜짝 놀라서, 친한 이스라엘 동료에게 그것을 이야기 했다가 "Racist"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런 것 또한 인종차별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에, 정말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경험을 통해서 그동안 내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차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도록 주의하게 되었다. 솔직히 우리는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함부러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외모나 다름에 대해서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기에 필자 역시 더이상 무심하게 차별적인 행위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된다. 어느 나라나 외모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한국처럼 외모에 대한 차별을 노골적으로 하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여행 가이드 후기에 "예쁜" 가이드가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고맙다니, 말 다했다.


되돌아보면, 한국에서 살 때 필자는 항상 상대방에 대해 "기선 제압"을 하고 들어 갔다. 아주 친한 일부 가족과 친구를 제외하고는, 일로 만났든 다른 무엇으로 만났든 항상 상대방이 나를 깔보지 못하게 선수를 치곤 했다. 가장 좋은 것은 실력이나 경력, 언변 등 개인의 능력으로 제압을 하는 것이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비싼 물건이나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등의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요소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필자는 "차별"이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깔보이는 순간 바로 치고들어온다는 것을 충분한 시간과 경험을 통해 배웠기에 그것을 어떻게 무력화 시키고 상대방에 함부러 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고 아쉽게도 대부분의 경우 모두 통했다. 반대로 보면 이것은 참으로 슬프고 한심한 현실이기도 하다. 기선 제압에 실패하거나 기선 제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독일이나 미국과 같은 서양 국가에만 있는 유별난 차별이 아니며, 한국에 사는 우리도 "인종차별" 뿐만 아니라 각종 "차별"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갑질"이란 이런 "차별"적인 행동이 고착화 되고 시스템화 되어 발생되는 부수적인 산물이라고 본다.

http://newspeppermint.com/2013/05/20/racial-tolerance-and-ethnicity-maps/


독일에 살면서 필자는 더이상 누군가를 "기선제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베를린에 살면서 굳이 한국인들과 많은 교류를 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쓸데도 없는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나의 소중한 인생을 더이상 낭비하기 싫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나는 외국인 친구와 동료들은 내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내가 몇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내가 집사람에게 선물한 티파니 목걸이가 얼마인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한달에 얼마를 버는지, 우리 아이들 학교 성적이 어떤지, 우리 포메리안 강아지가 얼마인지, 내가 타고 다니는 브롬톤 자전거가 얼마인지를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몰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최선을 다한다. 한국에 살때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가 뭐하시냐고 항상 물어대는데,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던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골프 선수에요", "우리 아빠는 만화가에요"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ㅎㅎㅎ 우리집은 몇동인데 너네 집은 몇동이냐고 묻는 아들내미 친구쯤이야 애교로 봐줄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어른들의 몰상식과 가련한 질투심은 결코 예쁘게 봐줄 수 없다. 물론 여기도 퍼펙트 월드는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퍼펙트 월드 따위는 없다. 그런 건 기대도 하지 말자)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고 여기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벽과 레벨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다행인 것은 한국처럼 굳이 치열하게 살면서 그 벽을 부수고 다음 레벨로 넘어가기 위해 아둥바둥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여유롭다는 것이다.


베를린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는 독일인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에 대한 경험이 적은 독일인들이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동의한다.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 처럼, (마치 우리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그러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쉽게 바뀌기가 힘들다. 그런면에서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도시에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도시라면 아랍계 거주 비율이 높고 난민이 있을 확률이 높은데, 여기에서 우리가 무작정 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우범 지역일 것이라고 기피를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잘모르는 외국인이 나를 멋대로 판단하고 기피를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인종차별"을 한다고 말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 자신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기피한다면 우리 또한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독일어 수업에서 만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보면 어느 나라든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봤던 다양한 군상들을 여기서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특정 인종이나 국가의 사람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만 사는 한국의 어떤 동네에서는 문을 잠그지 않아도 도둑이나 강도 걱정 없이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필자는 터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스판다우"에 살고 있다. 터키 슈퍼마켓이며 수많은 터키 음식점 등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여기저기서 터키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아랍계가 많이 사는 동네이다. 그런데도 집사람과 산책을 하다보면 1층에 사는 어느 누구도 방범창을 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같으면 1층에 방범창을 안하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철장으로 막아놓고 커튼을 일년 내내 쳐놓지만, 여기는 오히려 1층에 발코니까지 있는 집이 인기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외부인이 쉽게 출입이 가능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사는 듯하다. 집 앞이 바로 앞이 강가라서 여름철에는 밤늦게까지 떠들고 노래를 듣는 아랍계 젊은이들이 있지만 누구도 그것을 제지하지 않고, 집값 떨어진다고 호들갑 떨지 않는다. 또한, 필자는 몇몇 터키인 친구들이 있고 그중 젋은 터키인 부부는 친한 이웃 사촌이기도 하다. 남편인 사교성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엔지니어 타입으로 블루카드 비자로 IT 회사에서 근무 중이고, 아내는 반대로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독일 대학 진학을 위해 열심히 독일어를 배우고 있다. 두사람 모두 영어를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며, 다른 터키 친구들에 비하면 훨씬 개방적인 스타일이다. 이 친구들은 우리가 VHS(시민학교)에 가지 않았으면 못만났을 아주 훌륭한 친구들인데, "난민"을 만날까봐 두려워서 VHS에서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스판다우가 너무 마음에 든다.


회사 동료 중에는 이란에서 망명한 M군도 있는데, 이 친구는 회사 내에서 가장 친한 동료 중에 한명이다. 그의 독일인 여자친구를 초대해서 같이 비엣남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도 있는데, 이 둘은 탱고 모임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는 사진 촬영이 취미 이고, 늘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스스로 만들어 보기를 좋아하는 전기 기술자이다. 예전에 가족과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종종 볼수도 있는데, 이동 제한이 있다보니 다음달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남부 독일 지역으로 휴가를 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나보다 인성이 좋은 사람이고 옆에 있으면 항상 이것 저것 보고 배우게 된다. 필자 또한 직접 만나서 함께 부대끼면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난민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선입견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업데이트 : 최근이 이란 동료가 난민 신분을 벗고 일반 거주권을 얻기위해 신청을 했는데, 몇시간 동안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다고 한다. 몇주후 결과가 나왔는데, 안타깝게도 거부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란 동료는 독일 국내에서만 거주와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접한 다른 나라로의 여행이 불가능하다. 현재 4년째 독일에 거주하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신분을 얻는 것은 어렵고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이 살고 있는 기분이란다. 이번 결과에 무척 실망을 해서인지 차라리 독일 대신 캐나다로 갈까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난민이 되면 나라에서 돈도 주고 정착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마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착각에서 부디 벗어나길 바란다.


한국에서 한창 "난민"에 관한 이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독일에 오고자 하는 사람들 조차 "난민"이 없는 지역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각자의 입장이나 생각이 있을 것이기에 충분히 존중하며 여기에서 굳이 다루지 않겠다. 선택의 각자의 몫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천지차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비뚤어진 관점에서 그릇된 상식으로 잘못바라보고 차별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노력을 하기 싫다면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앞서 이야기 한대로 그들을 "기선제압" 해버리면 된다. 나는 독일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는 엔지니어이고, 너희 보다 높은 급여를 받으며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명품 가방을 들고 비싼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흔해빠진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여러분을 함부러 대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고, 서로의 다름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독일 IT 취업 : 자동차 구입편 -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