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금호 Sep 30. 2020

독일 IT 취업: 삶의 여유

7년전에 "벤츠 타는 프로그래머"라는 IT 에세이를 출간했었다. 거칠것 없었던 "천상천아 유아독존"의 30대를 마치고 40대에 들어서기 직전에 썼던 원고이다보니, 지금 다시 보니 거칠기도 하고 꽤나 미흡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무료 e북으로 판매를 해주어서 혹시라도 읽어보기를 희망하는 분들께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여전히 가끔씩 독자분으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답장을 쓰는데, 부족한 책이지만 누군가에 조금이라도 영감을 줄수 있다니 보람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https://ridibooks.com/books/852000840


이 책의 뒷부분에 7년 전의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였었다. 그 희망은 5년후에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실현되었고, 올해에 두번째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경력 많은 개발자와 바쁜 강의 스케쥴을 가진 강사로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지만, 항상 정신없이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경제적인 풍요는 "개인기"로 이루어낸 덕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는 했지만,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던 셈이다. 덕분에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15년, 20년 넘게 기획만 하다가 실제로 만들어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 현실이기도 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다른 무언가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였고, 그래서 가족과 일에만 집중을 하고 그 이외의 다른 나머지는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독일에 와서도, 일에 대한 욕심이나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는 여전하고 새로운 일과 동료들을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우기도 했다. 특히 애자일/스크럼을 제대로 업무에 적용하는 방법이나, 대규모 리팩토링, 유닛/통합 테스트의 생활화를 통한 빌드 및 배포 자동화, 코드 리뷰와 피드백 등 한국 IT 업계 환경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부분들을 제대로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IoT로 쌓아오던 경력을 산업용 3D 프린터라는 새로운 분야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독일에 올때 "영주권 취득"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기에, 연봉 수준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한국에서 올리던 수입에 비할 수는 없지만, 대신 불필요하게 지출되던 비용들이 많이 줄거나 없어졌기에 아직까지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원래부터 메인잡의 급여에만 목을 매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터라, 여러가지 수입을 만들며 여전히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고 있다.


삶의 터전이 바뀌기는 했어도 경제적인 여건은 큰 차이가 없지만, 무엇보다도 크게 달라진 것은 "삶의 여유"이다. 이전에 올린 글에서 한번 언급을 한적이 있는데, 독일에 거주하면서도 다른이들의 독일로의 이민을 추천하지 않는 자들이 단한가지 장점이라고 외치는 "일과 삶의 균형"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여전히 독일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무척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생각보다 아주 큰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딱히 설명하기 힘들다. 사실 집사람과 아이들에게도 이것이 좋은지는 모르겠고, 한국에서보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많다보니 더 부딪힐수도 있고 불편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아지를 데리고 집사람과 산책을 같이 가거나 함께 등록한 피트니스 센터에 운동을 하러 같이 가고, 나의 친구와 동료들과 만날때에도 함께 만남을 가지는 것들이 이제 곧 결혼 20년차가 되는 우리 부부에게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되었지 나쁠 것은 없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이다보니 항상 좋기만 하지 않고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나 기회가 늘어서 서로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한국에서는 항상 "무언가에게 쫒기듯 사는 삶"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아무도 나를 쫒아오지 않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여유로움"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회사 동료 중에는 자신의 대형 3D 프린터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평소 자신의 집에 IoT 시스템을 구축하여 실제로 운영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이번에는 3000유로 이상을 투자해서 자기 스타일대로 "쿨"한 3D 프린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동료의 취미는 천체망원경을 이용하여 별의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데, 별의 움직임을 따라서 자동으로 움직이며 촬영하는 장비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회사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자기가 설계한 파츠를 프린트해서 구현해야 하는데, 여러번의 시행 착오를 통해서 결국엔 제대로된 파츠를 제작하여 구현해서 완성하였다. 나 역시 2년전부터 지금까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인 프로젝트로 시간 날때마다 해오고 있었는데, 그 과정과 내용을 회사 동료에게 최근에 발표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사람들은 이렇게 능동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개인 프로젝트로 해보는 것을 생각보다 높이 산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나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가 크게 달라졌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떠벌리고 다닐 걸 그랬다. ㅎㅎ


"벤츠 타는 프로그래머"에서 밝혔든, 나는 40대에 이루고자 하는 여러가지 꿈을 가지고 있고 그 중에 일부는 이미 이룬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임대 사업자 되기, 부모님과 파리 여행, 독일 영주권 취득,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개발,  딸내미 예원학교 진학, 아들내미 김나지움 진학 등) 물론 실패한 것도 많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도 있어서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꿈을 이루는 것 역시 더이상 쫒기듯 하지는 않게 되었다. (40대에 못이루면 50대, 또는 60대에 이루면 되니까) 그리고 순전히 나의 행복을 위한 더 많은 꿈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늘 머릿속으로 새로운 구상을 하면서 이런 저런 실현 방법에 대해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노예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다음, 얼마 안되는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답게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 권리와 의무가 있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책의 마지막에서 독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도 행복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