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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Nov 29. 2021

독일 공교육의 장점 : "프락티쿰"

아이들의 성향과 적성을 알아보고 올바른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래전에 책을 집필할 때, 프로그래머라는 직업도 "적성"이 맞아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글을 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출판사 대표님께서 이 내용을 썩 좋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특정 분야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나 "적성"이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인정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미술"이나 "음악" 뿐만 아니라 "공부"조차도 타고난 재능이 기본적으로 받쳐주고 적성이 맞아야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애초에 그러한 재능과 적성이 없다면 그것을 뛰어넘는 "남다른 노력"을 하거나 아니면 한국식 사교육으로 비슷한 결과를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단기적인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최소 20년에서 40~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직업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미안하지만 그 차이는 해를 거듭할 수록 커질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향이나 선호하는 분야, 재능이 있는 분야나 적성이 맞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꾸준히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어렸을 때 피아노나 바이올린, 컴퓨터, 태권도 등을 가르치는 것도 그런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어릴때 부모님을 졸라서 컴퓨터를 배운 것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공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재능이나 관심사, 적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점수로만 학생을 평가하고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다. 이는 대학 교육까지도 계속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해볼 시간이나 기회가 20대 중반~20대 후반까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운이 좋게도 점수에 따라 결정된 자신의 직업이 적성에 맞는 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뒤늦게서야 자신을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자주 보이는 편이다. 대부분의 경우엔 죽을 때까지 자기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적성이 맞는 분야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키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또는 무엇이 자신에게 정말 맞는 길인지를 찾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딸내미의 경우에는 나와 같은 12살때 본인의 진로를 찾았었고 6~7년을 그 목표를 위해 달려왔었다. 지금은 맹목적으로 주입되었던 한국 입시 스타일을 벗어나서 독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생님들과 새로운 진로를 모색 중이다. 아들내미의 경우에는 보통 아이들이 그러하듯 자라오면서 그동안 수많은 관심사의 변화가 있었고, 최근에는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며 베를린에 있는 게임 회사에 취업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물어왔다. 그래서 현재 재미있게 열심히 하고 있는 취미 활동인 첼로 레슨, 배구 클럽 활동 이외에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배울수 있는 코스를 알아보고 있다. 물론 딸내미나 아들내미 모두 조만간 희망하는 진로가 또 바뀔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좀더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 나갈 수 있다면 이러한 과정들 또한 나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프락티쿰(Praktikum : 인턴, 실습)"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딸내미가 Obershule에 다니던 시기였다. 당시 집 근처의 "액세사리숍"에서 4주간의 프락티쿰을 하기로 결정했었는데 때마침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취소되고 말았었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딸내미가 직접 자신이 프락티쿰을 하고 싶은 곳을 일일이 찾아서 연락을 하고 인터뷰를 보면서, 프락티쿰을 어디서할 것인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락티쿰을 알아보다가 알게된 한인 식당에서 주말 알바를 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확실히 독일 학교의 친구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독립심이 강해서 우리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그러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이번 학년 부터 다니고 있는 학교 선생님이 상담 시간에, 이번 학년에 총 2번의 프락티쿰을 할 예정인데 이 과정은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에 대해서 스스로 살펴보면서 미래에 자신에 맞는 직업을 찾는데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를 했었다. 그리고 최근에 한달간 샬로텐버그 근처에 있는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프락티쿰을 마쳤다. 이번에는 스스로 찾아보다가 괜찮은 곳을 못찾아서 학교 도움을 받아서 결정된 것 같다.


프락티쿰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번 경험을 통해서 딸내미가 많은 것을 보고 느낀 듯 하다. 월급을 받지 않을 뿐, 실제 직원들과 똑같이 출퇴근하며 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배운 것이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같이 프락티쿰을 하는 같은 학교의 다른 친구는 아프다고 일주일 나오지 않거나 수시로 빠지는 등 꽤나 불성실하게 임했지만, 딸내미는 성실하게 4주간의 실습을 잘 마쳤다. 업종이 업종인 만큼 현장 업무도 많았는데, 여러 고객들의 집을 방문해서 몸을 쓰는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피곤할텐데도 싫은 내색 없이 나름 열심히 일한 것 같다. 학교 다닐 때에는 점심을 주로 사먹거나 학교 끝나면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는 편이었는데, 점심을 싸가지고 다니는 직장인들과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하니 독일에 와서 처음 샌드위치를 싸가는 모습에 왠지 뭉클해지기도 했다. 나 역시 회사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웠었는데, 딸내미 역시 싸간 샌드위치를 꺼내 먹으며 그 회사의 직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돈을 주고 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경험이라는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그날 일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대는 딸내미의 모습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4주간의 실습을 마치고 학교에 가져다 내는 실습 평가서를 보니 꽤나 자세하게 다양한 항목에 대해서 꼼꼼히 평가를 한다. 아이들이 평소에 받아오는 학교 성적표가 그렇듯이 형식적으로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실습 활동에 대한 객관적이고 디테일한 평가를 하고 있다. 학교 성적에서도 이러한 프락티쿰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그야말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이라 할수 있다. 프락티쿰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의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꼼꼼하게 프락티쿰의 목표와 규칙, 평가 내용 등에 대해서 잘 정리 해놓았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m.blog.naver.com/fayyum/221800720520


자세히 따지고 보면, 독일 공교육도 완벽하지는 않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애초에 독일 공교육에 그런 완벽함 같은 것은 바라지 않았고 기대에 못미칠 수 있음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교육"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수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겨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획득한 시험 점수 따위나 다니던 학교의 타이틀 따위를 평생 울궈먹으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학창 시절을 오로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처절하게 모든 것을 희생해야했던 댓가를 평생동안 사회에 요구하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아직도 이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고, 이 아이들이 미래에는 어떤 가능성을 가지게 될지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그저 불확실한 미래에 현명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성인이 되기만을 바랄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프락티쿰"은 아주 좋은 교육 방식 중에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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