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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Apr 19. 2022

아주 낯설은 하루

태국에 아주 눌러 살 것을...

2018년 1월 30일 맑음.

방콕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지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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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설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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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새벽 늦게까지 잠을 못 자다가 늦게야 잠들었는데(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늦게 잔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점식이가 유난히 일찍 일어나서 덩달아 일찍 잠에서 깨었다. 아이에게 적게 자면 키 안 큰다며 더 자라고 하는 와중에 아침 일곱시부터 울리는 보험사 전화를 거절했고, 몇 분 후에 온 아범 전화는 받지 못(?)했다. 새벽부터 웬 전화들이야 라고 조금 짜증 섞인 생각을 하며, 더 잘 생각이 없고 배가 고프다는 점식이에게 아침을 해주기로 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얼마 못 잔 것 치곤 몸이 개운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의심을 했어야 했지만, 인생이 그렇게 쉽지 않지)


늘 한짝이 잘 없어지는 실내 슬리퍼를 찾아신고, 가운데를 자른 올리브 치아바타와 칼집 낸 비엔나 소세지, 대충 휘두른 에그스크램블을 해서 나는 커피, 점식이에겐 생블루베리와 딸기 요거트를 주고 식탁에 앉았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난 아침이라 평소의 전쟁같은 아침 풍경과는 급이 다르게 아이와 장난을 치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며 아침을 먹다가, 이틀 전에 건전지가 다되어 멈춘 욕실시계에 이어 주방시계도 건전지가 다 된 것을 발견했다. 늘 같은 시기에 떨어지는 화장품들처럼 시계 건전지도 같이 나가다니 별일이네 생각하며 여유롭게 새 건전지를 가져와서 두 개의 시계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점식이를 뽀득뽀득 씻겨 친정엄마가 작년 가을에 사왔을 때는 커서 입히지 못한 새 옷을 입히고 이제는 훌쩍 커서 맞는다며 뿌듯한 마음에 인증샷을 남겼다. 
이 때가 아침 9시 35분. 하지만 점식이와 나, 우리 둘에게만 오전 아홉시 삼십오분이라는 걸 이때까진 알지 못했다.


유치원에 도착해서 지각하지 않은 자의 당당함으로 선생님께 해맑게 인사를 드리고 평소처럼 신발장 앞에 드러눕는 점식이에게 “너 지효한테 안 멋있는 행동 한다고 얘기해 줄거야” 라고 협박하는데 선생님이 “그래 얼른 갈아신고 들어가자. 지효 밥 먹고 있어” 하시길래, 지효가 오늘 일찍와서 아침밥을 유치원에서 챙겨 먹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다시, “지효는 벌써 밸리도 다하고 밥 먹고 있어 점식아” 하시는 거다.
선생님이 왜 이러시나 생각하며, “선생님 이 시간에 지효가 밸리를 다 하고 밥을 먹고 있어요?” 했더니 선생님이 황당한 표정으로 날(점식이엄마를) 보며,
“그럼요 어머님 지금 시간이 몇신데요?!”
?
이상했다. 핸드폰을 꺼냈다. 
내 핸드폰 시계엔 분명 9시 46분이었다.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아홉시 사십육분이요!
?
““어머님!(정신차리세요!)지금 열한시 사십육분이에요!!!””
.
.
.
???????????????????????????????????????????????!
.
.
-
한 집 안에 있는, 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시계가 
동시에 고장나 본 일이 있는가?
나 혼자 다른 시간을 살아 본 적이 있는가?
단 한 순간도 핸드폰 시계가 고장났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기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평범한 한 시민을 진짜 한심한 엄마로 만들었다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여러분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런 황당한 사건에 연류되지 않길 바란다.
한시간 후면,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한다. 
나는 지금 희안하게도 길면서 동시에 짧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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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멈춘우리집 같은 걸로 위치 태그 하고 싶다.
어쩌면 내 핸드폰은 방콕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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