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의 무게
강아지를 키우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산책중에 100명이 찰리에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면 2-3명은 혐오의 눈빛을 보낸다. '그럴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어떤이들의 행동은 가슴에 상처로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 주말 산책을 하던 중 찰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때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남자아이가 뛰어오고 있었는데 뒤에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이를 불러세워서 조심하라고 하며 나를보더니 “저렇게 큰 개를 입마개도 안하고 왜 데리고 다니냐”라며 지나갔다. 아주 큰소리로 들으라고 그랬던게 확실하다. 찰리는 9.5킬로그램의 중형견 사이즈지만 웰시코기, 시바견, 큰 비숑정도다. 입마개를 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가만히 있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뭐야?’ 싶었다. 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았다.
또 한번은 얼마전 일이다. 마곡에서 열린 펫페어에 가려고 찰리를 펫카트에 태워 지하철을 이용했다. 당일에 개인사정으로 자동차를 가져갈 수 없어 처음으로 찰리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말아야지 생각해 최선을 다해 조심했다. 찰리도 눈치를 챘는지 아주 조용했다. 처음 타는 지하철이 무서웠을 텐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이동했다.
오전에는 지하철에 사람이 없어 도착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시간에는 사람이 북적였다. 하필 환승까지 해야 하는 루트라 걱정이 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왠 개를 데리고 나왔어’ 라며 큰소리로 말하고, 한심함의 눈빛을 보내는 모녀를 만났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모녀와 중년 여성 3명이 더 탔는데 내가 제일 먼저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2명이 문앞쪽에 있어서 “내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나를 힐끔 보더니 버튼누르는 쪽으로 한발자국 이동했다. 펫카트가 너무 큰 사이즈라 나갈수가 없어서 “내리셨다가 타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아까전에 그 모녀중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어디 어른한테 내리라 마라야” 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딸로 보이는 사람이 “당신이 알아서 잘 나가야지”라고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아무말 안하고 그냥 내렸다.
이동하는데 갑자기 분노와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이 카트에 아이가 타고 있었다면, 그들도 똑같이 행동했을까? 개를 싫어하는건 취향이니 이해하는데 꼭 저렇게 말해야 했을까 등등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길을 다니며 상대방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쉽게 듣지는 않는다. 그러나 펫카트를 끌고 있으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다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리도 힘들었을텐데 내가 속상해하니 귀신같이 눈치를 챘다.
이 사건은 단순히 충격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 모녀는 왜 그런말을 했을까? 배려와 예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나의 말투가 거슬렸던걸까?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화가 나다가도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친구, 회사 동료, 지인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모두들 모녀의 행동에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일부는 나대신 화를 내주기도 했다. (고마웠다) 화를 내준 지인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어떤 말을 했을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 것 같은 말은 하는게 아니야. 칼로 찌르는것만 폭력이 아니다. 언어폭력도 폭력이야."
그 말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칭찬은 모두를 기쁘게 하고 미소짓게 한다. 그러나 불평, 불만, 혐오의 말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결론, 어렵지만 말을 조심하자.
찰리랑 지내다보면 사소한 일상에서 늘 인문학적인 생각과 고민까지 하게 된다. 이 에피소드 뿐만 아니다. 단순히 '산책을 나간다','찰리의 배변을 치운다', '날씨가 좋다'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어느날은 찰리와 내가 높은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큰 키는 아니지만 찰리에 비하면 거인일테다. 내가 보는 시선과 찰리의 시선은 다르다. 찰리는 눈앞에 풀과 나무에서 나는 냄새에 집중하고 있었다. 찰리에겐 눈앞에 있는게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모든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하늘과, 바람, 저멀리 지나가는 사람까지도 찰리에 비하면 우주를 보고 있는것 같았다.
이 시선의 차이는 마치 신과 나의 관계와도 같았다. 나는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만 집중하고 그것이 전부인줄 아는 찰리와 같다. 그러나 신은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해로운지, 어떻게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는지 모든 길을 보고 있고 나를 인도한다. 내가 늘상 눈앞에 닥친 일만 가지고 불평불만 또는 한없이 기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산책을 하면서 온갖 생각들로 바쁘다. 손과 발은 찰리와 함께 움직이지만, 머리는 온갖 생각으로 가득하다. 아직도 가끔 철없는 행동을 하긴 하지만, 확실히 나는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있는것 같다. 이것이 나이 듦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