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9

찰리와 짧은 가을을 보냈다.

by 찰리누나



햇빛은 뜨겁고 바람은 선선한 딱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었다. 그런데 늘 그렇듯 이 좋은 계절은 너무 짧게 지나갔다.
일을 잠깐 쉬게 되면서 찰리와 나는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되었고 낮 시간대에 산책을 시키지 못해 늘 미안했던 마음을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다. (물론 그동안 낮 산책은 아빠와 엄마가 많이 도와주셨다.)

이제는 해 뜨기 전 새벽 산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침 산책도 찰리가 지쳐 쉬고 싶을 만큼 충분히 할 수 있다. 출근하지 않는 나를 신기해하는 찰리는 원 없이 산책을 즐겼다.


안양천은 오전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가 가장 걷기 좋다. 해가 뜨면서 밤새 맺혀 있던 이슬로 촉촉하던 잔디가 뽀송하게 마르고 동네 강아지들이 보호자와 함께 하나둘 나타난다. 이 시간에 찰리의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잠시, 역시나 오산이었다.

찰리는 호기심이 많아 먼저 다른 강아지에게 다가가지만 냄새만 맡고는 금세 관심을 잃는다.

산책 시간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반려견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친구들이 생겼다. 코니, 나쵸, 히로, 시보리. 이틀에 한 번꼴로 보게 되었고 찰리는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리지는 않아도 그 공간에서 나름의 시간을 보냈다. 다른 아이들은 서로를 쫓고 달리며 놀지만 찰리는 늘 간식을 주는 다른 보호자에게만 간다.
다른 강아지가 찰리에게 다가오면 “왈!” 하고 짖으며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반응한다.

‘찰리야, 너는 왜 안 노는 거니…’


간식만 주면 누구라도 따라갈 것 같은 찰리가 가끔은 부끄럽기도 했다. 집에서 밥도 충분히 먹고 간식도 챙겨주는데 왜 밖에만 나오면 그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찰리가 다른 보호자를 너무 귀찮게해서(간식 달라고) 그 시선을 돌리려고 공을 꺼내 들었다. 원래 여러 강아지가 있는 곳에서는 공놀이를 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 나는 결국 공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공이 날아가는 순간 찰리와 다른 강아지들이 재빨리 달려갔다. 찰리가 공을 물고 돌아오자 다른 강아지가 그 공을 빼앗으려 달려들었고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급히 떼어놓는 동안 다친 아이는 없었지만 모두가 놀랐다.
내가 던진 공 때문에 강아지들이 다칠 뻔했다. 다른 보호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지만 그때는 멘털이 무너져 제대로 사과도 못 했다. 찰리가 물릴 뻔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더욱 정신을 못 차렸다.

자리를 벗어나 찰리와 단둘이 다시 걸었다. 날씨는 너무 좋은데 마음은 복잡했다. 24시간 함께 있어도 뭐하나. 제대로 교육도 못 시키고 다른 강아지까지 다칠 뻔하게 만들다니.
반려견 놀이터에 데려가는 것이 어쩌면 보호자의 욕심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찰리는 놀고 싶지 않은데 내가 괜히 그곳으로 이끌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또 저지른 내 모습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교훈을 얻었으니 다시 실수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지만 그날의 장면은 일주일 넘게 나를 괴롭혔다.


쉬는 동안 찰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은 계속 생겼다.

어느 날 산책 후 여유롭게 쉬고 있는데 찰리가 뒷발 패드 근처를 계속 핥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상처가 있었고 딱지가 크게 생겨 있었다.

‘이건 또 언제 생긴 거야…’

넥카라를 씌우고 연고를 발라주며 병원에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또 병원으로 향했다. (초보 견주 특징: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에 간다.)

접수를 하며 “언제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물고 있는 것 같고 혹시나 해서 왔다”고 간호사에게 설명했다. 그런데 진료시간이 한참 지나도 찰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수의사가 나를 불렀고 심장이 터질 듯했다.
수의사는 상처를 확인하려면 털을 밀어야 했다고 말하면서 가능한 원인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유리나 날카로운 곳에 긁혔을 가능성.
둘째, 벌레에 물렸을 가능성.
셋째, 암일 가능성. 암일 경우 조직 검사를 위해 상처를 제거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물론 “베인 상처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수의사는 황급히 마무리했만 내 기분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소독약과 연고를 처방받고 찰리는 발에 빨간 붕대를 감고 나왔다. 하네스와 같은 색의 붕대였다. 찰리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도 찰리는 개의치 않은 듯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다시 신나게 냄새를 맡으며 산책을 했다.

일주일 동안 소독과 연고를 꾸준히 바르고 지냈다. 마침 일본 여행 일정이 잡혀 있던 터라 더 마음이 쓰였지만 아빠가 성심껏 찰리를 돌봐주셨다.

‘24시간 함께 있으면 더 잘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다행히 찰리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찰리의 몸 상태를 훨씬 더 꼼꼼하게 살피게 되었다. 산책 후에는 작은 부스러기 하나까지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해프닝들이 이어졌던 가을이었다. 계절은 충분히 즐겼지만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그래도 찰리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참 좋은가 보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면 발밑에 누워 낮잠을 자고 청소기를 돌릴 때는 창문과 커튼 사이에 들어가 원하는 만큼 햇빛을 즐긴다. 출근할 때는 몰랐던 찰리의 낮 루틴도 알게 되었다. 실외배변만 하는 아이가 쉬야를 오래 참지 않는 것도 정말 다행이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 지금처럼 케어해주지 못할 텐데 벌써 미안하다. 입양 전에 간과했던 부분이다. '아침·저녁 산책만 잘 시켜주면 되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찰리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내보니 찰리가 가장 좋아하는 건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 옆에서 자야 편안하고, 내 옆에서 걸어야 행복한 아이. 그런 찰리에게 나는 다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찰리야, 누나가 너 먹여 살리려면 일은 꼭 해야 해… 미안하지만, 이해해줄 수 있지?

사랑해 우리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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