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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Sep 27. 2022

버섯의 계절이다

버섯을 찾아 몬테 제몰로 가을 숲을 헤메다

아침저녁으로 부쩍 으슬으슬 싸늘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아침 햇살이 드는 시간은 점점 느려진다. 아침 일찍 한 번에 번쩍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일이 쉽게 되지 않는다. 두꺼운 이불로 새단장을 한 폭신한 이불속으로 자꾸만 파고들게 된다.


이른 아침, 베스파(Vespa)를 타고 포도밭이 가득한 언덕을 내려가자면, 멀리 아랫마을이 안개에 폭 잠긴 모습이다.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고성, 교회, 집들은 언덕 아래가 안개에 잠긴 탓에 안개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양새다. 천공의 성 라퓨타가 이렇게 보이겠지. 바닥의 초록 풀들은 아침 서리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반짝반짝 빛난다.


언제나처럼 신선한 오렌지주스 스프레무따(spremuta)를 한 잔 하며 시작하는 아침. "스프레무따 부탁할게요." 하니 주인아주머니는 "아이구, 이제 추운데 카푸치노 마시지. 스프레무따는 차갑잖아." 하신다.


며칠 사이 갑자기 서늘해진 공기 탓에 카페테리아 안보다는 밖에서 커피를 즐기던 사람들은 추위를 싫어하는 노린재처럼 모두 안으로 안으로 모인다.


"내 친구는 말이지, 오 불리(Ovuli) 버섯을 자그마치 25킬로나 땄다지 뭐야? 귀하디 귀한 버섯이니 얇게 편으로 썰어 생으로 먹어야 제맛인데, 먹다 먹다 물려서 익혀도 먹고, 이웃에 다 나눠줬대."

" 어제 포르치니(Porcini) 버섯을 이렇게 많이 땄다구. 사진  ."   

에스프레소 한 잔의 커피 향기를 타고 오늘은 버섯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유난히 무덥고 비도 많이 내리지 않았던 여름이 지나고, 날이 선선해지면서 간간히 보슬비가 땅을 적신다. 크게 벌어진 일교차 덕분에 이슬이며 서리며도 땅을 적시는 데 한몫하리라.


온통 포도밭과 헤이즐넛  투성이인 랑게(Langhe) 로에로(Roero) 지역이지만, 높은 알따 랑가(Alta langa) 지역으로 올라가면 깊은 잡목 숲이 버섯을 비밀스럽게 키워낸다.  통통하고 살이 많은 포르치니 버섯, 붉은빛이 도는 황금빛 버섯 오불리는 물론 하얀 송로버섯(Tartufo bianco)까지.



나뭇잎이 툭툭 떨어져 땅을 감싸고, 땅이 축축해지는 서늘한 가을이 오면 버섯의 향기가 숲을 감싼다.


작정을 하고 버섯 사냥을 나서는 사람들은 좋은 버섯이 나는지 기억하고 있다가 이듬해  자리를  다시 찾아간다. 피에몬테(Pimonte)에서 리구리아(Liguria) 넘어가는 마지막 관문이 되는 작은 마을 몬테 제몰로(Montezemolo) 버섯으로 유명하다. 작은 카페에 커피를   하러 가도 벽에 크게 붙여 놓은 식용 버섯과 독버섯 사진을   있다.


버섯뿐이랴? 이맘때는 야생 밤도 툭툭 바닥에 떨어져 뒹군다. 랑게나 로에로에서 키우는 헤이즐넛이야 주인이 있다지만, 산에서 자라는 야생 도토리, 야생 밤은 주인도 없다. 더구나 한국과는 다르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한국에서는 도토리는 도토리 묵을 만드느라 귀하고,  알밤이야  말할 것도 없이 귀한 열매인데.



"왜 도토리랑 밤을 줍지 않는 거야?" 내 가방은 버섯을 따기도 전에 토실토실 알밤으로 어느새 가득 차서 묵직하다. "도토리야 돼지나 먹이지 사람이 먹는 게 아니잖아. 밤은 맛있긴 하지만, 언제 그걸 까고 있어? 일이야 일. 더구나 피에몬테 사람들에게 밤은 그 옛날 먹을 것 없이 힘들고 가난했던 시기의 상징과도 같은 거라서 사람들이 굳이 주워서까지 먹으려고 하지 않아. 제과점에서 꿀이나 시럽에 졸인 마롱글라세(Maron glacé) 먹는 거나 좋아하지, 요즘 사람들이 밤 주워서 까먹고 그럴 생각을 하나......"


'돌아가신 할머니가 피에몬테에 오셨다면 보따리 보따리 도토리랑 밤을 가득 주우셨을 텐데......' 산에서는 고사리며 산나물, 칼바람 부는 들에서는 봄쑥, 바다에서는 해초며 성게며 고동을 잡아 올리시던 할머니 생각이 난다.


몬테 제몰로 숲도 오늘따라 안개에  싸였다. 비가  뒤라  산은 촉촉하게 젖어있다.



나는 밤이나 주웠지 버섯을 보는 눈이 없다. 아말피 친구네 가서도 친구 젠나로는 귀하디 귀한 검은 포르치니 버섯, 버섯갓이  얼굴보다 커다란 마짜  탐부로(Mazza di Tamburo) 버섯을 잘도 찾아냈다. 어린아이처럼 버섯을 하나 찾을 때마다 친구에게 물어본다. 나는 어쩜 그렇게 못 먹는 버섯만 찾아댈까?



얼마나 많은 버섯이  숲에는 있는 걸까?

하염없이 숲 속을 헤매다 보니 차가운 공기에 볼이 얼얼해진다. 밤 줍는 재미에 재잘거리며 허리를 굽히기를 한참......  깊고 차갑고 고요한 숲이 주는 평화로운 침묵에 나도 말이 없어진다. 잡다한 생각들이 차갑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툭툭 떨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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