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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Jun 20. 2020

당신의 고등어

지글지글 굽고 화르륵 끓여낸 할매의 고등어, 엄마의 고등어

고깃배가 들어오자 작은 항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다. 막 잡아온 생선은 부르는 게 값이다. 커다란 생선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갈리넬라, 스코르파노, 스피골라...... 드디어 마지막으로 내 차례다. “오라따 몇 마리 주세요.” “오라따는 없수다.” “예? 저기 보이는 생선들은 뭐예요?” “그건 저기 저 성 베드로 식당에서 예약한 거예요. 원하면 싱싱한 고등어가 좀 있긴 하우다.” 고등어라는 이름이 어부 입에서 나오자 친구들이 어깨를 으쓱 올리며 하하 웃는다. “너희들 왜 웃는 거야? 고등어로 만드는 전통 레시피가 뭐가 있어?” “딱 하나 맞는 게 있지.” “뭔데?” “고양이 밥.” 한국에서도, 이 멀리 아말피 해안 체따라 항구에서도 고등어는 대접을 못 받는다. 


     

나는 고등어가 좋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 밥상에는 고등어가 자주 올랐다. 일곱 식구의 입에 세 끼 밥이 들어가는데, 값싸다고 고등어를 푸대접하다니, 아닐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동생 둘, 그리고 나. 일곱 식구 삼대가 복작복작 한 집에서 같이 살았다. 삼촌이 장가를 가기 전까진 삼촌까지. 그러니 입이 모두 여덟이었다. 

우리 집에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한량인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집의 기둥이었다. 충무동 시장에서 장사하시던 할머니는 항상 싱싱한 생선을 한 보따리 사 오셨다. 파장 떨이 덕분에 우리 식구 입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내 고향 부산에는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 따위는 없다. 무조건 생고등어다. 싱싱한 고등어를 그날 팔지 못 하면, 상인들은 얼음 위에 소금을 조금 쳐서 그다음 날까지만 팔았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이게 뭐 기는, 고등어 아이가.” “근데 고등어가 왜 이래요? 껍질이 너덜너덜해요.” “머라카노, 야갸? 배가 덜 고프나? 밥상머리에서 잔소리하지 말고 퍼뜩 무라.”  

할머니는 성질이 급했다. 한쪽 면이 다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생선 껍질이 바삭해질 터. 그 순간을 못 참고 할머니는 껍질이 채 파삭파삭 단단해지기도 전에 생선을 획 뒤집어 버렸다. 그러면 영락없이 생선 껍질이 바닥에 눌어붙는다. 할머니는 욕을 하며 뒤집개로 프라이팬 바닥을 들들 긁어댔다. 생선은 어김없이 또 눌어붙고, 획! 뒤집으니 또 껍질이 벗겨지고. 

“할머니, 생선이 이제 문둥이가 됐어요.” “뭐라꼬? 이놈의 가씨나가. 묵지 마라. 콱! 이제부터 니가 묵을 고등어는 니가 꾸버 무라.”

귀한 막내 손주도 아니고, ‘쓸 데 없는 계집애’의 반찬 투정은 욕지거리만 불렀다.     



“엄마, 할머니가 생선을 구우면 왜 그래요? 껍질은 너덜너덜하고 속은 바싹 말라서 말린 북어 같고 너무 짜요. 비리기만 하고. 엄마가 구운 고등어는 왜 그렇게 맛있어요?” “엄마가 구운 고등어가 맛있나?” “네,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엄마는 인자한 얼굴로 싱긋 웃었다. “엄마가 다음에 고등어 구울 때 보여줄 테니 단디 잘 보래이.”



엄마는 생선 굽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구운 생선은 언제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바삭한 껍질을 걷어내면 보드랍고 빛나는 속살이 드러났다. 젓가락을 집어넣어 고등어 살결을 뜯어내면 살점 사이사이에서 마치 비눗방울 같은 연둣빛 분홍빛 색들이 생선즙을 타고 일렁거렸다. 소금 간을 하지 않고 구운 커다란 고등어는 젓가락 가득 살점을 크게 발라내 간장에 ‘폭’ 찍어 먹는다. 고소한 고등어 살과 짭쪼름한 간장이 입 안에서 녹는다. 고등어 간장에는 깨소금도 참기름도 필요 없다. 그냥 맨 간장이면 된다.

바삭한 껍질을 걷어내면 뽀얗게 드러나는 고등어 살. 막 구워내 김이 나는 뜨거운 고등어 살은 새콤한 신맛이 나는 차가운 배추김치 줄기, 약한 불 위에 한두 번만 삭삭 지나가게 구운 생김, 윤이 자르르 흐르는 갓 지은 쌀밥이랑 먹는다. 여기서 삼삼하게 끓인 구수한 된장 시래깃국까지 밥상에 올리면 더할 나위가 없다.         



"고등어 구이가 맛있을라 카믄, 일단 고등어가 싱싱해야 된다이. 눈이 깨끗하고 살이 단단하니. 장만한 고등어는 흐르는 물에 잘 헹구고. 깨끗한 행주에 톡톡 두드려서 물기를 빼그라. 껍질을 바삭하게 잘 구울라 카믄, 밀가루를 살짝 발랐다가 잘 털어내고이. 물기 제거를 잘 안 하면 밀가루가 두껍게 발려서 영 안 좋다. 미리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고등어를 얹으면 ‘치익’ 소리가 나야 되는 기다. 아! 신문지 꼭 준비하고." "신문지는 왜요?" "생선 물기에 기름이 사방으로 튀가 부엌이 엉망이 된다 아이가. 생선은 계속 뒤집으면 안 되는 거 알제? 꾹 참고 기다렸다가, 바닥에 있는 껍질이 바삭바삭해지면 그때 뒤집어라." 

두껍게 접어 뚜껑처럼 프라이팬에 올렸던 신문지를 걷어냈더니 정말로 프라이팬 모양으로 동그랗게 노란 기름이 흠뻑 배어 있었다. 반대편 껍질도 바삭해질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가,  마지막은 아주 약불로 속까지 익힌다. 엄마가 설명해준 대로 했더니 정말 마술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고등어 구이가 되었다. 신문지 잉크 냄새가 살짝 베인 바삭하고 고소한 고등어구이.     

 


갑자기 비가 와서 하늘이 우르르 쾅쾅거리던 하굣길. 내가 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을까? 학교 앞은 색색의 우산으로 가득 찼다. 엄마들이다. 엄마들이 자기 새끼들을 데리러 왔다. 하나 둘 병아리들이 폴짝폴짝 뛰어 색색의 우산 속으로 안겨 나갔다. 나도 엄마를 기다렸다. 아주 오랫동안. 자기 딸을 데리러 왔던 어떤 아줌마가 나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야야, 니는 오데 사노? 내가 우산 씌워줄까?” “아니요, 우리 엄마가 올 거예요.” 나는 발끝만 바라보았다. 

학교가 텅 빌 때까지 엄마는 오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니는 집에 안 가나?”학교 수위 아저씨였다. 아무 대꾸도 없이 찬비 아래로 타박타박 걸어 나갔다. 작은 신발 속으로 차가운 흙탕물이 금방 차올랐다. 걸을 때마다 찰박찰박 소리가 났다. 쫄딱 젖은 생쥐꼴로 집에 도착했다. “엄마, 왜 우산 들고 안 왔어요? 다른 엄마들은 다 왔는데.” “일이 이래 많은데 우째 가노. 잘 도착했네. 어서 씻어라.” ‘아이고, 우리 딸, 미안해. 엄마가 너무 바빴어. 이리 와, 엄마가 꼭 안아줄게. 춥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입이 댓 발은 튀어나오고, 눈은 붉어졌다. 엄마는 무심하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상에는 뚝배기에 뜨거운 고등어 탕이 올라왔다.


     

엄마는 고등어를 굽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여름이면 추어탕 재료에 미꾸라지 대신 가시를 잘 발라낸 고등어를 넣어서 고등어탕을 끓여냈다. 고등어탕은 보통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니다. 엄마가 막 화르륵 끓여낸 고등어 탕을 뚝배기에 담으면, 나는 그 위에 산초가루와 들깨가루를 듬뿍 올려 먹는 걸 좋아했다. 방아 때문이었을까, 산초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끓인 고등어 탕은 비리기는커녕 고소하고 향기로웠다. 

“아이구야, 이 백여시 같은 가시나 좀 보소이. 니는 만다꼬 이래 밥 따로 탕 따로 깨작깨작 묵고 있노? 마 밥을 말아가 후루룩 복시럽게 폭폭 퍼묵을 것이지.” 할머니의 타박이다.

나는 언제나 밥 따로 탕 따로, 밥 한 숟갈, 탕 한 숟갈 번갈아 먹었다. 밥을 말아먹으면 밥알이 국물을 다 빨아들인다. 갓 지은 탱탱한 밥알도 퉁퉁 불어 개밥이 되기 일쑤다. 탕은 탕대로 진하고 고소한 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밍밍해진다.

“엄마, 한 그릇 더 먹어도 돼요?” “그럼, 우리 딸이 먹는데 누가 뭐라고 해.” 누가 뭐라고 한다. “이년아, 그만 무라, 짜구 난다.” 우리 할머니다.  


엄마는 음식을 참 잘했고, 할머니는 욕을 참 잘했다. 할머니는 앉아서 진득하게 하는 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대신 휘휘 밖을 돌아다니시는 걸 좋아하셨다. “너희 할머니가 욕을 그래 했어도 너희 생각을 했다이. 여름만 되면 너희 먹일라꼬 바께쓰를 들고 시골장까지 미꾸라지를 사러 갔다 아이가. 고성 장이었제?” 



스물넷에 처음 시집왔을 땐 소금을 뿌리면 팔딱거리는 미꾸라지들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던 엄마는 어느새 추어탕 도사가 됐다. “추어탕은 여름도 맛있지만 초가을이 더  맛있데이. 가을에 벼가 누렇게 익어서 벼를 벨라카믄 논물을 뺀다 아이가. 논둑을 헐어서 물을 뺄 때 거기에 통발을 대는 기라. 그라믄 미꾸라지가 통통하게 살이 올라가 팔딱팔딱 뛴다.” 

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갈 땐, 추어탕엔 시래기 대신 호박잎이다. 호박 덩굴 끝 연한 줄기에 달린 보드라운 잎이며 영글 때를 놓친 어린 애호박도 함께 넣는다. “호박잎을 세게 치대고 주물러서 씻으면 호박잎에서 거품이 난다. 그걸 쫑쫑 썰어서 넣으면 시래기보다 맛있지. 별미다 별미.”      



오늘처럼 덥다가 찬비가 후두둑 내리는 초여름에는 별미 추어탕보다 엄마의 구수한 고등어탕이 생각난다. 밥상머리에서도 욕을 해대던 욕쟁이 할머니도, 이가 부실해 부드러운 담치 죽을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도, 조미 김은 너희나 먹으라며 언제나 방금 바삭하게 구워낸 생김만 찾던 아빠도 이젠 없다. 여동생은 김해에, 나는 이탈리아에. 남동생과 엄마만 부산에 남았다.     



“우리 식구 한 끼 먹게 고등어탕 끓이려면 큰 고등어 한 마리에, 얼갈이배추가 한 단, 대파 굵은 것 두 뿌리, 숙주나물 두 주먹 정도, 방아도 그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끓여도 먹을 사람이 없으니 안 하게 되네.”      

아...... ‘우리 식구 한 끼.’ 엄마가 전화로 무심코 뱉은 그 한 마디에 눈이 시려온다. 고등어 한 마리면 여덟 식구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던, 비 오던 여름날, 엄마의 고등어 탕. 



“엄마, 그 왜 미꾸라지 대신 넣고 끓이던 고등어탕, 어떻게 끓인다구요?”     



 "와? 고등어 탕이 먹고 싶나? 아이코...... 그기 머라꼬. 한국 오면 내가 바로 끓여줄 건데."




"고등어는 크고 싱싱한 게 맛이 있데이. 눈이 빛나고 살이 탱탱하고. 눈이 꺼졌으면 상한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고등어는 크고 싱싱한 놈으로이! 배를 가르고 잘 장만해가,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이다가 핏물 빼서 장만한 고등어를 넣어. 고등어가 익으면 살코기만 잘 발라서 잘게 찢어 놔라. 얼갈이배추는 소금물에 데쳤다가 찬물에 헹궈서 물기를 야무지게 짜야된디. 알맞게 쫑쫑 썰어두고. 데쳐서 썰어둔 얼갈이배추에 된장이랑 밀가루를 쪼매 넣고 조물조물 주물르고. 나중에 국 끓일 때 물 대신 쌀뜨물로 할 거면 밀가루는 넣지 말고. 냄비에 쌀뜨물, 된장에 주물러 놓은 데쳐 짠 시래기, 뼈 발라낸 고등어 살코기, 숙주나물, 삶은 고사리, 대파를 넣어래이. 양념으로는 곱게 다진 생마늘, 산초 가루, 고춧가루, 된장을 넣고. 국이 맛깔나고 보기 좋게 하려면 그 양념을 미리 넣지 말고, 국이 다 끓고 난 후에 국그릇에 담고, 각자 식성에 맞게 넣으라고 하면 된다. 방아는 향이 살아야 하니까 꼭 마지막에 넣도록 하고. 참, 고등어는 삶기 전에 껍질을 벗기거나 삶은 후에 꼭 껍질을 벗겨야 국물이 깨끗하다."



"이래 전화로 말해가 니가 그기서 끓이 묵겠나?"



엄마가 신나서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 보따리를 따라가면 이미 한국이다. 



비린 고등어 한 마리도 바삭하고도 부드러운 구이로, 구수한 탕으로 정성스레 굽고 끓여 내던 우리 엄마. 전화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그 옛날 복작대던 여덟 식구를 위해 신나게 고등어 탕을 끓이고 있다. 나의 마음이 어느새 엄마의 밥상 앞에 달려가 앉는다.  뜨끈뜨끈 고등어탕이 눈 앞에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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