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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Nov 24. 2022

로마에 가면 꽃 튀김을 먹자

10년 만의 로마, 유대교 게토에서

10년 만에 로마를 다시 찾았습니다. 꼭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면 아마도 굳이 가지 않았을 도시입니다.

“아니, 당신이 뭔데 로마를? 굳이 갈 이유가 없다면 가지 않는다구요?” 네, 아마 공감이 되지 않으실 거예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외지인들은 부산하면 해운대 백사장과 부산 국제 영화제, 자갈치 시장을 먼저 떠오르시겠지요. 하지만 제겐 바닷가란 겨울에야 가는 곳이었지요. 한여름엔 바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외지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여간 복잡하고 어수선한 게 아니니까요.

부산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한여름의 해운대, 부산 국제 영화제, 자갈치 시장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붐비는 곳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그럴까요? 저는 붐비는 곳은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2017년부터 줄곧 이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거겠지요.


그런데 왜 로마를 굳이 10년 만에 다시 찾았냐고요? 한 지인의 레스토랑 25주년 기념 파티 때문이었어요. 자동차로는 7시간 가까운 거리, 빠른 기차로도 4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라 당일 여행은 무리였어요. ‘음.... 그래, 꼭 하룻밤만 자고 돌아오자.’하고 마음먹었습니다.

토리노에서 출발하는 첫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어둠을 가르며 차를 몰았죠. 로마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거든요.


아! 로마는...... 로마는...... 어딜 가도 줄, 줄, 줄 그리고 또 줄...... 아름다운 유적지 덕분이겠죠? 여전히 아주 붐비고, 정신이 없었어요.

10년 전에도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 스페인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느 명소엘 가도 장관이었지만, 트레비 분수 근처 골목을 지날 땐 걷는다기 보다 인파에 휩쓸리는 형국이라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트레비 분수 앞을 꽉 채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 동전 하나를 던져 넣으며 소원을 빌고 사진 한 장이라도 찍으려면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과의 과열된 새치기 경쟁을 참아야 해요

걷고 또 걷고...... 로마, 밀라노, 토리노에 가면 웬만하면 대중교통 이용을 안 하려고 하다 보니, 긴 기차여행 이후 또다시 인파 속에 휩쓸리니 빨리 지치더군요.


10년 전엔 가지 않았던 유대인 게토(Ghetto)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어가자 싶었어요. 아쉽게도 지인에게 추천받은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고, 피곤했던 저는 그저 어디든 좋으니 앉아서 맛있는 한 접시를 먹고 싶었지요.

그때 눈앞에 들어온 야외 테이블들. 타이밍이 절묘하게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어요. 마치  무대에 조명이 켜지듯 그 소박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은 마치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았지요. 그런데 손님이라고는 한 테이블뿐. ‘흠...... 듣보잡 식당에서 이렇게 내 점심을 망치는 건가?’ 싶었지만 더 걷기엔 무리였죠. 작고 작은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뭘 먹지? 제 경우는 어딜 가든 그 지역 전통 음식을 맛볼 때 가장 만족감이 컸어요. 날도 쌀쌀해지니 카르쵸피 요리가 제격이지요. 로마에 왔으니 카르쵸피 알라 로마나(Carciofi alla romana)와 게토에 왔으니 카르쵸피 알라 쥬디아(Carciofi alla giudia), 그리고 평소에 좋아하는 바칼라 튀김을 시켰습니다.

다음날 점심에도 다른 레스토랑에서 시켰던 똑같은 메뉴. 예뻤지만 맛은 2%부족한. 역시 맛도 가격도 만족도도 게토(Ghetto)!!!

음료는요? 햇살이 짠하고 비치니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맥쮸!!! 그것도 그 식당에서 만든다는 유대인 맥주를 시켰어요.

유대인 게토에서 만들어진 맥주 이름도 절묘하네요. 저 멀리 벽에 파란 별, 유대인 게토의 상징, 이스라엘 국기가 보이네요.

결론은요? 할렐루야!!! 알고 보니 직원들이 작고 파란 유대인 모자를 쓰고 일하는  식당은  유명한 곳이더군요. 쌀쌀해진 날씨 탓에 실내에는 지하까지 손님이  찼더군요. 제가 앉자마자 야외 테이블도 금방 만원이 되었어요.


민트 혹은 파슬리, 마늘, 페페론치노, 소금, 후추를 넣은 올리브 오일 물에 익힌 카르쵸피 알라 로마나도, 바삭한 바칼라 튀김도 좋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죠.

카르쵸피 꽃 하나를 줄기까지 함께 통으로 튀겨낸 바삭한 유대식 카르쵸피 튀김, 카르쵸피 알라 쥬디아(carciofi alla giudia)는 걸작이었어요. 꽃 하나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였지만 어찌나 바삭하고 구수한지 맥주와 찰떡궁합이라 하나로는 부족했죠. 여기요~~~ 카르쵸피 튀김 하나 더 추가요~~~! 옆 테이블에 앉으신 나이가 지긋한 부부도 저를 보고 웃으시더니 저처럼 추가 주문을 하시더군요.


아, 저녁에 있었던 지인의 창립 기념 파티는요? 하하하, 아주 풍성하고 재미있었어요. 즉석에서 바로 까주는 생굴에 샴페인, 끊임 없이 나오는 해산물 요리, 레스토랑 주인의 고향 사르데냐식 새끼돼지 구이까지. 그 많은 요리가 그저 안티파스토였다니...... 조금 있으니 해산물 리조또와 뇨끼가 나오기 시작했죠.

즉석에서 연신 생굴을 까대던 레스토랑 원조 직원들

25년 동안 사랑받은 레스토랑이니 초대 손님들 덕분에 레스토랑 앞 좁은 도로엔 차가 2중도 아니고 3중으로 주차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죠. DJ도 초대되어서 이탈리아의 지나간 댄스 히트송을 끊임없이 틀어대고 조작조작 걷는 몇몇 아기들도 흥을 못 이기고 춤판을 차지했어요.

에헤라~ 아가들도 덩실덩실~

너무 피곤했던 전 파티의 끝을 못 보았어요. 12시가 지나자 너무 피곤해지더군요. 지인이 “자! 이제 봉골레를 넣은 스파게티를 거나하게 먹어볼까?” 하고 웃으며 말했지만 저는 기념 케이크를 자르기도 전에 체력이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죠.


다음날 소식을 들어보니 그 봉골레 파스타는 물론 기념 케이크도 손님 어느 누구도 맛보지 못했다고 해요. 뜨거운 물에 들어간 스파게티가 채 익기도 전에 3중 주차와  음악소리 때문에 경찰이 들이닥쳐 엄청난 벌금 파티가 벌어졌다나요?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니 친구들이 물었어요. “로마 여행 어땠어?” “응, 좋았어. 그런데 10년 안엔 갈 일이 없을 것 같아.”

10년 안에는 다시 찾지 않을 로마지만 10년 후에도 유대인 게토에서 Carciofi alla giudia, 카르쵸피 튀김은 꼭 먹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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