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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14. 2024

피렌체 최고의 빠니노

All’Antico Vinaio 알 안티꼬 비나이오

인지도, 신속도, 신선도, 가성비와 더불어 제겐 맛도 좋았던 피렌체 최고의 빠니노를 소개합니다.




“나만 이 길을 갈 수 있어. 너흰 안 돼.” Via dei Neri 비아 데이 네리……. 말하자면 ‘흑인들의 길’로 접어들자 혼혈이라 피부색이 밀크 초콜릿 정도인 디디에가 농담을 던집니다.


“뭐라는 거야? 넌 흑인이라기엔 너무 피부색이 밝다구!”

“오바마가 대선에 당선되었을 때 난 미국에 있었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흑인이 날 보며 웃으며 뭐랬게?

We won! 날 흑인으로 인정해 준 거지. 그러니 난 이 길을 걸을 자격이 있어!.” 한참 농담을 주고받으며 걷던 중, 한 가게 앞의 긴 줄을 발견했습니다.


Via dei Neri 비아 데이 네리.유독 한 가게 앞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사진: 이지윤


“어? 여기 맛있나 보다. 호텔에서 멀지도 않으니 나중에 들르자.”


이리저리 볼 것 많은 피렌체. 해 지고 난 저녁이야 느긋하게 앉아서 와인 한 잔을 기울일 여유가 있지만, 금토일 반짝 여행인데 앉아서 점심 먹을 시간이 있나요? 더위도 지난 걷기 딱 좋은 성수기라 눈물을 머금고 배나 비싸게 지불한 호텔, 조식이라도 든든하게 먹자 했으니 점심시간이 훅 하고 지나서야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피렌체까지 와서 빠니노?” 했지만, 이미 점심 영업이 끝난 곳은 많고, 저녁 식사 시간까지 몇 시간 남지도 않았으니 친구 말처럼 간단히 허기만 가리는 게 낫겠습니다.


“어디 간단하게 먹을 곳이 있나 찾아보자.”


사람들이 붐비는 Piazza della Signoria 삐아짜 델라 시뇨리아를 조금만 벗어나자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빠니노를 베어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빠니노 가게 맞은편 약국 앞, 콘돔 자판기 앞에 자리를 잡고 빠니노를 베어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사진: 이지윤


그럼 우리도 진짜 빠니노? ‘miglior panino a Firenze (피렌체 최고의 빠니노)’ 를 검색창에 넣자 바로 뜨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어? 비아 데이 네리? 혹시 아까 거기 아닐까?” 그러게요, 구글 지도를 따라가니 농담을 하며 지나간 그 빠니노 가게가 맞습니다. 똑같은 이름의 규모가 작은 빠니노 가게가 네 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는데도, 그 줄이 어마어마합니다. 빠니노 가게 앞에 한 덩치 하는 보안 요원까지 있으니 말 다 했지요.


“줄이 길어 보여도 회전율이 좋아 보이는데? 뭘 고를지 생각하다 보면 차례가 금방 올 거야.” 역시 긍정적인 디디에가 줄을 보고 표정이 바뀐 제게 용기를 줍니다. 재빠른 다니엘라는 벌써 메뉴 사진을 찍어왔군요.


All’antico vianio 알 안티코 비나이오 입구 벽면에 붙은 메뉴. 좋은 재료로 즉석에서 속을 채운 빠니노 하나 당 9~12유로 정도 합니다.  사진: 이지윤


“난 피스타치오 좋아하니까, 피스타치오 듬뿍이랑 모르따델라!”

“난 그냥 클래식하게 모르따델라랑 부라따!”

“난 Inferno 인페르노!”

전 왜 매콤한 게 땡겼을까요? 얇게 자른  돼지 통구이 뽀르께따에 매운 살시챠 인두야가 들어간 이름도 무시무시한

Inferno 인페르노(지옥)!


정말 딱 메뉴를 정하고 나니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인지도나 신속도는 최고가 맞군요. 왜 빠른가 했더니 빠니노 만드는 데 손 빠른 젊은이들이 여섯이나 붙어 있습니다. 손님이 원하는 빠니노를 주문하면 한 명은 빵을 자르자마자 속 재료를 채우고, 다른 한 명은 슬라이서로 즉석에서 주문이 들어온 만큼만 재빨리 모르따델라며, 프로슈토며, 뽀르께따 등을 얇게 잘라 수북하게 올려 주더군요. 2인 1조로 세 군데서 주문을 한꺼번에 받아 즉석에서 자른 햄으로 빠니노를 만들어주니 신선도 최고, 인증입니다.


매장 전체를 채우는 경쾌한 음악처럼 숙련된 젊은 직원들이 재빨리 빠니노를 즉석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사진: 이지윤


‘어? 나도 모르따델라에 부라따 시킬 걸 그랬나?’ 수북이 올린 얇게 자른 부드러운 모르따델라 햄 위에 부라따 하나를 통째로 올린 후 바로 반으로 찢어 빵으로 닫는데 보기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


커다란 빠니노를 들고 홀 끝의 계산대로 갑니다. 작은 여자 핸드백 크기의 빠니노가 비싸야 10유로, 12유로? 가성비도 끝판왕이군요.


겉바속촉 빵에 푸짐하게 가득 채워진 신선하고 질 좋은 속재료. 빵도 그냥 빵이 아니라 피렌체에서 schiacciata 스끼아챠따 라고 불리는 올리브 오일과 소금이 들어간 focaccia 포카챠, 맛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소금을 넣지 않는 피렌체 전통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간이 딱 맞는 겉은 파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얇은 포카챠 스키아챠따가 정말 반가웠습니다. 화장실을 가며 슬쩍 봤더니 제과 제빵계의 벤츠 Rational 레이셔널 오븐이 큰 사이즈로 두 개나 떡 하니 있더군요. 위층에서 스끼아챠따를 산처럼 쌓은 쟁반이 쉴 새 없이 내려오는 걸 보니 빵도 직접 만들어 쓰는 빠니노 가게의 성공 비결을 엿본 듯 했습니다.


얇은 포카챠 스키아챠따는 빠니노를 만드느라 금방 동이 나는 통에 위층에서 끊임없이 수급됩니다. 사진: 이지윤


그냥 아무 곳이나 가면 작은 젤라또 하나에 6유로를 내라는 피렌체 중심가. 우피치 미술관에서 <비너스의 탄생> 보느라 식사 시간도 놓쳤는데, 간단하고 재빠르지만 맛도 있는 한 끼가 생각날 때. Via dei Neri 비아 데리 네리에서  빠니노 하나 어떨까요?


빠니노 가게 벽면에 장식된 방문자 사진. 오른편 하단, 유명 셰프 조 바티스아니의 얼굴도 보이는군요. 사진: 이지윤


All’Antico Vinaio 알 안티코 비나이오

Via dei Neri 65r, Firenze, 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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