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그해 추억을 떠올리면서
2002년 5월 31일에서 6월 30일까지 월드컵 경기가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열렸다.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대한민국은 4위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온 나라가 들썩였다. TV와 인터넷 등 온갖 매체에서 날마다 수시로 월드컵 뉴스가 도배되었다. 한 달 동안 붉은 악마 티셔츠로 인해 붉은색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다.
부모님과 내가 만든 작품이 세계로 퍼져나갔을 때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개막식을 기다렸고 ‘북 드는 소년 모자’와 ‘32개국의 국기를 표현한 모자’를 보는 순간, 그 어느 때보다 기뻤다. 그전에도 다른 일을 하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작품에 필요한 소품을 만들었었다. 내가 만든 소품이 오페라, 뮤지컬로 공연될 때, 나는 다른 관점에서 무대를 바라보았다. 관객들은 작품성과 연출, 배우들의 열연에 몰두할 때, 나는 내가 만든 소품을 유심히 보았다. 배우와 잘 어울리는지, 무대와 동떨어지지는 않는지, 배우가 불편해하지 않는지 등 배우의 격한 움직임에 혹여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관객들은 배우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나는 또 한편으로 부모님과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두 달 전부터 여러 의뢰를 거쳐 월드컵 개막식 ‘북 드는 소년의 모자’가 자문과 회의 끝에 우리에게 맡겨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2년 월드컵 개막식 32개국의 국기를 표현한 모자를 만들 때는 무척 재미있었다. 그 나라의 고유한 색상과 상징성을 담아냈기에 만드는 과정도 그랬지만, 다 만들고 나서는 왠지 뿌듯했다. 당시 모자와 각 나라 이름을 표기한 이미지는 이렇다.
<제작한 순서부터 - 국가 이름은 2002년 당시 아버지가 발음으로 표시_간혹, 국가 이름과 사진 해상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이 열린 날, 나는 서울광장으로 캠코더를 들고나갔다. 당시 캠코더에는 국민의 환호성과 열띤 응원이 담겨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내 뒤로 세계 각국의 응원하는 사람들이 내 허리를 잡고 기차놀이처럼 쭉 줄지어 섰고 그 바람에 나는 앞으로 나가면서 촬영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은 8mm의 테이프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월드컵 경기장 출입증을 자랑스럽게 한쪽에 진열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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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이미지 출처_방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