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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샤 Oct 16. 2021

마지막 인사

오랜 연애가 끝이 났을 때, 슬퍼하는 주변인들에 비해 나는 오히려 덤덤했다. 가끔씩 이젠 안녕이라는 말이 떠오를 때마다 무거운 한숨이 어색한 미소와 씁쓸하게 나왔다. 눈물이 나오기보단 텅 빈 공기만이 고요한 내 마음에 맴돌았다. 슬프다는 감정보다 쓰린 감정이 더 진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내가 참 지독했고 동시에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우리 둘 모두 느끼고 있었지만 쉽사리 누구 하나 꺼내지 못하던 사실, 예전의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결말로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에 대한 원망도 나 자신에 대한 후회도 우리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우리 그저 거기까지였구나 했다.


이른 아침 White Point에는 아무도 없었다. 멀리서 일정하게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와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만이 그 곳을 감싸고 있었다. 내 숨소리가 그 곳의 정적을 깨는 것 같이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나는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내가 지난 시간동안 셀 수 없이 불렀던, 마치 나만의 소중한 무엇인듯한 그의 이름. 그리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을 채 깨닫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먼저 흘러나왔다. 그리고 한 번 쏟아진 눈물은 한참을 파도에 밀려 내려갔다. 


한참 전에 끝이 난 그 관계를 모질게 자르지 못했던 나는 그에게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치려 했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서서히 자연스럽게 잊혀지길 바라면서.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여행을 떠나겠다는 건 이미 식어버린 마음과 그럼에도 끊지 못하는 미안함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을테니깐. 그리고 나 역시 반복되던 그 굴레에서 벗어나오고 싶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내가 막상 그에게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쳤을 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헤어져도 헤어지지 않는 것이라 믿었던 우리 사이가 이제는 정말 끝이 났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별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이란 참 바보같다. 좋은 사람이라고,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이라고 머리가 정확하게 계산한 것을 마음은 그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하나둘 회상하며 나는 바람 결에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나의 20대는 덕분에 참 반짝거렸고, 행복했다고. 내가 누렸던 행복만큼 꼭 누군가로부터 다시 사랑 받기를 바란다고. 이제 우리 정말 안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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