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울을 처음 마주했다.
처음에는 우울은 내게 상냥한 손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다음 마주친 우울은 내 팔을 힘껏 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며 명랑하게 인사했다.
그 다음다음 우울은 내게 팔짱을 끼며 잔혹한 인사를 물어왔다.
내가 그 수많은 인사들로부터 등을 돌려 한 걸음 물러나면 우울은 내게 두 걸음을 성큼 다가온다.
내가 그로부터 세 걸음 물러나면, 그는 다섯 걸음을 더 가까이에 다가와 앞장을 서곤 한다.
내가 그를 피해 걷다가 지쳐 주저앉으면, 우울은 그 옆에 따라 앉았다.
그와의 동행이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또 다른 이름의 우울이 다가왔다.
그 두 번째 불청객은 내게 직접적으로 인사를 건네진 않았지만, 내가 두 걸음을 걸으면 내 한 걸음 뒤에서 나를 좇아왔다.
그 불청객의 이름은 죽음이라고 했다.
나는 내 팔짱을 끼고 나를 안갯속으로 이끄는 우울과, 딱 한 걸음 뒤에서 내 어깨를 잡을까 말까 희롱하는 죽음을 피해 오늘을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