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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Jul 24. 2022

서울 역세권을 포기하고 경기도에 사니 내 시간이 생겼다


벌써 일요일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 일. 돌아오면 저녁 먹고 산책한다. 수요일, 목요일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금요일 밤엔 <청춘스타>를 본다. 토요일. 늘-어지게 쉬고 싶지만, 집안일만큼은 프리랜서이기에. 사정을 봐주지 않는 일들을 처리한다.


빨래는 예약해놓고 남편과 데이트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을 만난다. 소중한 시간은 화살같이 흘러간다. 어느새 저녁이 다 된다. 아, 빨래! 여름철이라 빨래가 쿰쿰해졌을까 조마조마 해진다. 어디서 만나든, 집 근처가 아니면 멀다. 열심히 운전해 집에 도착한다. 손을 씻자마자 빨래 상태를 먼저 확인한다. 다행이다! 빨래를 팡팡 털어 건조기에 차곡차곡 넣는다. 건조기가 돌아갈 동안 남편이 저녁 준비를 한다. 오늘은 뭐 먹을까. 글쎄, 라면에 파전? 파 써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잠깐 잠든다.



벌써 일요일이다. 눈을 두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벌써 점심이 다 되어간다. 갑자기 알리오 올리오가 먹고 싶어 마늘을 꺼냈다. 남편이 자연스럽게 도마를 꺼내고 마늘을 다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삼겹살도 넣자. 그의 말에 냉동실에 있던 삼겹살을 해동하고 마리네이드하고, 요리한다. 맛술 한 바퀴에 보해소주 두 바퀴. 소금 적당히 후추 많이. 팬에 불을 올리고 조금 기다린다. 삼겹살의 지방 부분을 잘라 팬을 골고루 칠해준다. 그리고 잠시간 내버려 두면 기름이 나온다. 불을 줄이고 삼겹살을 굽는다. 냄새가 나니까 후드를 열고 한다. 기름이 튀니까 종이 포일을 위에 덮는다. 한쪽 면이 구워지면 뒤집고, 마리네이드 했던 소스와 남편이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이듯이 졸인다.


삼겹살이 어느 정도 익으면 불을 약하게 맞추고, 면을 끓인다. 적당한 때에 불을 끄고 면을 삼겹살 팬에 옮겨 담는다. 면은 저마다 선호가 다르다. 이탈리아에서조차 알단테의 기준이 다르다. 우리가 꼬들면 또는 푹 익은 면을 좋아하듯, 그들에게 알단테는 자신이 좋아하는 면 스타일인 것 같다. 어떤 셰프는 심이 씹히는 걸 알단테라고 하고, 다른 셰프는 거의 익은 면을 알단테라고 한다. 살짝 탄탄한 식감의 면을 좋아한다. 남편은 조금 익은 면을 좋아한다. 둘의 중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면 꺼내는 시간을 1-2분 정도 늦게 한다. 겉은 투명하지만 집게로 집었을 때 탄탄한 느낌. 그때 면을 팬에 옮겨 담는다. 자칫하면 면이 탈 수 있기에 면수를 자작하게 부어준다. 삼겹살과 마늘, 그리고 페페론치노가 어우러지게 섞는다. 면수가 졸아들면 불 끄고 플레이팅한다. 오랜만에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식감의 파스타가 완성됐다. 급하게 넘기지 않고 꼭꼭 씹는다. 그냥, 면의 식감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진행 중인 일 때문인지, 남편이 두통을 호소한다. 우선 코로나 자가 테스트 키트를 하고, 음성이 뜬 걸 본 뒤에 타이레놀 두 알을 주었다. 그가 쉬는 사이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린다. 그가 좋아하는 아이스커피. 내리고 나니 색이 와인 같아 와인잔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B가 선물한 뮬렌베키아가 조금 마른 듯 하다. 며칠 전에도 분명 물을 주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화분의 물구멍에서 물이 나올 때까지 흠뻑 주어야 한단다. 쫄쫄쫄, 물구멍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반양지에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놓아야 한단다. 그전엔 해를 직접 받게 했는데, 그래서 말랐나 보다. 역시 처음은 어렵다.


침실을 보니, 남편이 잠든 것 같다. 그의 이마를 한 번 쓰다듬고 나왔다. 커피를 담은 와인잔을 들고 작은방으로 간다. 오랜만에 Alice Pheobe의 Lou Girl on an Island를 들으며 글을 쓴다. 쏜살같이 지나가던 시간이 슬로모션 건 것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다.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와 음악만이 이 공간을 채운다. 홀로 호캉스하는 기분이다.



결혼 전엔 호캉스를 종종 했다. 격무에 시달린 내게 주는 선물로 말이다. 한 달에 한 번쯤은 했던 것 같다. 깨끗하게 정리된 공간, 시원한 온도, 그리고 평온함. 대부분은 적막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 재생하며 글을 쓰곤 했다. 그러곤 지웠다. 이런 순간 따위, 뭐가 대수야. 더 멋지고 대단한 글을 쓰고 싶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렸다. 순간을 꼭꼭 씹어 넘기지 않으면 남는 건 허기짐이다. 결핍된 과거를 찾아 헤맨다. 변화의 궤적을 찾을 수 없어서다. 육신이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면, 기억이라도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도록. 천천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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