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에서 자주 입던 반팔 티셔츠를 발굴했다. 내가 한때 열광했던 밴드의 북미 투어 기념 티셔츠였다. 그 밴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했던 E의 추천으로 알게 됐다. 우리는 야자가 끝난 뒤, 아파트 벤치에 앉아 그 밴드의 노래를 듣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연기처럼 잊혀진 친구. 이 티셔츠를 보니, 마치 냉장고 속 유통기한이 2년이나 지난 스리라차 소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이미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무리들 사이로 우리는 뻘쭘하게 서 있었다. 나보다 조금 더 외향적이었던 E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난 서현중 나왔는데, 넌?”
“나 양영중!”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단골 분식집, 오락실이 겹쳤다. 다른 친구들이 보기에는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는 단지 생활 반경이 겹친 것만으로 친구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프리즌 브레이크>와 <슈퍼 내추럴>, 밴드 음악에 미쳐있었다.
우리는 2년 연속으로 같은 반이 되었다. 해가 넘어가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E의 관심은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 드라마로, 나의 관심은 밴드 음악에서 아이돌로 넘어갔다. 땅이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E와 나는 아직도 친했지만, 각자 어울리는 무리가 달라졌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무리. 학창시절의 나는 심리적인 이사를 자주 다녔다. 적응할 만하면 멀어지고, 또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섰다. 가끔은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수심이 깊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E와는 반이 갈라졌다. 우리는 섬처럼 멀어졌다. 학기 초에는 종종 서로의 반을 찾아갔지만, 2학기가 되고서는 발길이 뚝 끊어졌다. 복도에서 어쩌다 마주치면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게 다였다. 이전까지 나는 친구를 엄청나게 친하거나 친하지 않거나로 나누었다. E와의 관계는 생각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영원히 친할 것 같던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며, 그것이 끝나더라도 우리의 사이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학원을 다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많은 친구들이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가곤 했다. 마음에 지층이 쌓이고, 분지와 계곡이 생겼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옆에 있던 땅을 새삼스레 발견하기도 했다. 때로는 멀어졌던 섬과 다시 가까워지기도 했다.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비옥한 흙이 남았고, 그 위로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어 맞이하는 첫 여름. 나는 뉴욕 여행을 가기로 했고, 마침 우리가 좋아했던 밴드의 투어가 있었다. 망설임 없이 표를 샀다. 혼자 공연장 입장 줄에 서서 오랜만에 E를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이 밴드의 노래를 듣고는 하는데, E도 그럴지.
관계는 소멸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남는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것.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침대 밑에서 발굴한 이 티셔츠를 보니 다시 옛날이 생각났다. 충동적으로 콘서트 표를 예매하고, 혼자 공연장 줄에 서 있던 그날을. E와 아파트 벤치에 앉아 그 밴드의 노래를 듣던 그날들을.
다시 만난다면 묻고 싶다. 내게 남은 티셔츠처럼, 네 기억 속에도 내가 남아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