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글 Jan 08. 2021

서점에서의 기억

시작에 관해서

 서점에서였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쓰고 싶은 책의 제목을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이름이 긴 일본 만화책을 꺼내 들면서, 이런 책들과 비슷한 내용이냐고 물었다. 물론 웃으면서 장난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내게 던진 말은 마음속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작은 파문은 점점 커져 내 마음을 덮치는 파도가 되었다.


 그 친구의 말에 기분이 나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 내가 사로잡히게 된 것은, 내 마음속에 신선한 자극의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과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언제나 도전의 연속이었다. 첫걸음마를 떼며 한 중력에 대한 도전,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도전, 선입견에 대한 도전, 크고 작은 도전들을 쌓아 올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마주한 것은 결말을 알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바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노인이 기다림 끝에 물고기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나는 어쩌면 그 친구의 농담을, 부정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통해 자극받기를 원했고, 망설이며 스스로 의심하는 자신을 이겨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날 서점에서 내 친구 말고도 한 명 더, 내가 쓰고자 하는 책 제목을 들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어쩌면 그날 서점에서 책 제목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상대는 친구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워하며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는 나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음식에 깨는 도대체 왜 뿌리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