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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Jan 12. 2021

내가 여행에서 잃은 것

잃었는데 얻었습니다.

 여행에 가서 계획과는 너무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되는 날이 있다. 내게는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가기로 한 음식점은 문을 닫았고, 사전조사가 부족한 탓에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구글 지도를 통해 음식점의 정보를 제대로 찾지 않은 내게도 짜증이 낫고, 자신이 맡은 장소의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친구에게도 화가 났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험공부가 됐든, 출퇴근 길이 되었든 짜증이 나는 법이었다.


 서로의 감정의 충돌에 의해, 허기진 배로 인해 자의반 타의 반으로 대화가 적어졌다. 아직 남아있는 계획들을 위해서, 그저 목적지만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즐겁자고 시작한 여행인데 즐겁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때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인데, ‘꼭 평상시처럼 계획대로 행동해야 하는가?’, ‘그냥 이렇게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그런 생각이 들자, 그제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활기 넘치는 사람들, 아름다운 주변 풍경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친구까지 모든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계획은 더 즐거운 여행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내 즐거운 여행을 망친다면 그런 건 없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실패한 여행에서, 멋진 추억이 될 자유로운 여행이 되었다. 그날 우리는 여행 중에 처음으로 계획 없이 다녀봤다. 그저 발길 가는 대로 다녔다. 알아보지 않은 음식점도 들어가 보고, 지도를 보지 않고도 다녀봤다. 지도를 보지 않는 만큼 주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고, 새로운 맛을 만났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니 좋은 경험이었다.


 그날 친구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전에는 못 보던 음식점을 만났다. 항상 최단거리로 전철역을 다니느라 이쪽 방향으로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라고 짐작했다. 덮밥을 주로 파는 집 같았다. 맛있어 보였기에 들어갔다. 돈가스 덮밥 위에 미소(된장)를 뿌려서 주는 메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지만, 계획과는 달랐지만, 이제는 그게 도전을 막을 이유가 되지 못했다.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친구와 먹은 음식은 내가 그 여행에서 먹은 음식들 중에 가장 맛있었고 뜻깊었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들을 만난 오늘이 행복했다. 계획 한 대로 여행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즐거운 여행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즐겁자고 시작한 여행인데 공부가 되었다. 


즐겁자고 시작한 여행인데 공부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멈췄다. 가끔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더 재밌고 유의미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계획보다는 현실에, 그때의 상황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는 내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에 좌절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내가 세운 계획이 무엇을 위한 건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끔 길을 잃어도 괜찮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그리고 지금 내가 이 상황에 충실하다면 계획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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