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아닌 비판이 필요하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며

by 개똥밭

이십여 년 전, 중국 여행을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치는 참 좋은데 지저분하고 시끄러우며, 기본적인 공중도덕이 너무 아쉽더라고 하셨죠. 그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1990년대까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평가하던 바로 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일 겁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어글리 코리언’이라고 불렀던 사실, 시간 약속에 무감각한 한국인들을 상대로 ‘코리언 타임’이란 말이 통용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과거 한때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제품은 중국 제품처럼 싸구려로 인식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는 과거 미국에서 '종이와 클립으로 만든 차'라는 조롱을 들었습니다.


경제 대국 일본 또한 그러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서구 제품을 베끼기에 급급했던 일본은 '이미테이션 재팬'이라 불렸습니다. 한때 미국을 앞지를 것처럼 보였던 그 일본조차 그런 시절을 겪었습니다.


PC가 대중화되던 90년대, 언젠가부터 용산 전자상가에는 싱가포르제와 대만제 부품들이 등장했습니다. 당시 저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이들 국가 제품에 대해 지금과 다르게 저성능의 싸구려 제품처럼 인식했습니다. 요 몇 년간 중국산 저가 IT 제품들이 받던 평가와 비슷했죠.


그러나 2025년 현재, 싱가포르는 동아시아 최고의 부국이 되었고, 대만의 1인당 GDP는 우리를 추월했으며 TSMC라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예전 같지 않긴 하지만, 여전히 기술 강국으로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할 수 있는 소부장 수출 금지라는 카드를 쥐고 있습니다.


한때 '어글리 코리언'이라 불리던 우리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권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경제력이 성장했고, 문화 강국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국민 개개인의 매너가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요. 민족성이 갑자기 바뀐 걸까요? 사회 환경과 경제 발전 단계, 교육 수준이 변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도 한때 길거리에 침과 껌을 뱉고, 새치기를 했으며, 양보라는 매너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외국 관광지에서는 시끄럽게 떠드는 건 물론 소중한 유적지에 낙서를 해서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했고, 싱가포르와 대만도 변했으며, 일본도 변했습니다. 중국이 지금 바로 그 과도기를 거쳐 가고 있습니다. 이건 민족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회 진화적 현상인 겁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의도적인 적의와 악의에는 분명히 대응해야 합니다. 필자 또한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것, 우리 문화를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독도를 건드리고 과거사를 지우려는 시도에도 반드시 분노해야 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변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비판이어야 합니다. 민족 전체에 대한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판과 혐오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창업자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 문명은 천 년에 걸쳐 만들어지고, 인간은 백년 전부터 만들어진다."


국민성이나 사회적 매너는 교육과 사회 발전을 통해 변화합니다. 중국도,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지금 그 변화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정당한 비판은 개선을 낳지만, 혐오는 차별을 낳을 뿐이고 차별은 증오로 이어집니다. ‘지구촌’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은 지금, 혐오와 차별은 결국 사회 통합의 실패로 귀결될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기억한다면, 지금 다른 나라들이 걷고 있는 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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