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은 타고나지만 인격은 길러진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사람이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지난 글에서는 『신을 찾는 뇌』라는 책을 바탕으로, 왜 현대인들이 거대 사회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진화적 관점에서 다뤘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상에서, 좀 더 작고 가까운 이야기 - ‘자녀 교육’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이제 둘 다 20대 중후반의 성인으로 성장했죠. 돌이켜보면 자녀 교육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계획은 있었지만, 현실의 무게에 밀려 실천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먹고 사는 일’ 앞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품지 못한 날들이 떠올라 후회가 밀려들곤 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실수했을 때, 왜 좀 더 너그럽게 받아주지 못했는지, 왜 실망보다 격려를 먼저 주지 못했는지, 아이들 기질에 따라 이루어져야 했던 교육과 조언이 부족했던 점, 이런 후회가 늘 마음 한쪽을 무겁게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아이가 왈가닥 같고 어수선한가요? 오히려 너무 얌전하고 소심한가요? 다수의 부모는 자녀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 걱정하더군요. 이처럼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성향은, 어떤 환경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과학적 연구로 이는 사실임이 밝혀지고 있죠.
예를 들어, ADHD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과거에는 ‘주의 산만’, ‘충동성’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전혀 다른 해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창의적 사고, 빠른 위기 대응, 멀티태스킹 능력, 에너지 넘치는 추진력,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기업의 리더, 창업가, 예술가 등 복잡하고 유연한 판단이 필요한 분야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ADHD 성향을 지닌 많은 기업가와 리더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그렇다고 하죠. 심지어 일론의 소시오패스적 성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팀에 열정과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 성향이 장점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조율과 전략이 함께 따라야 하고, 이런 성향의 리더를 지지하는 파트너나 조직이 필요하죠. 일명 ‘인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의 이런 기질을 언제부터 읽고, 이해하고, 반응해야 할까요?
아이들의 ‘기질’은 대체로 생후 2~3세 사이에 형성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질은 타고난 생물학적 성향이기에, 외부 환경이 이를 ‘바꾼다’기보다는, 아이가 가진 기질을 부모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조율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이를 인간 심리학자들은 ‘성질’(기질)은 다듬어져서 ‘성품’이 된다. 라고 표현하더군요.
이 시기의 양육자는 단순히 밥을 먹이고 재우는 보호자가 아니라, 아이의 정서적 지도자입니다. 이때의 반응, 표정, 말투, 품 안에서 주는 온기까지(특히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안아주고 품어 주는 행위) -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신경망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의 극단적 사례가 바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체스크가 남긴 비극입니다. 그는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하며 수많은 영아를 국가가 집단으로 양육하게 했습니다. 영아 사망률이 높자, 성인이 병균을 옮겨서 그렇다며 보호자의 접촉 없이 격리된 채 아이들을 자라게 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뇌 발달에 심각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연구에 따르면, 이 당시 아이들의 뇌는 일반 아이들보다 평균 8.6% 작았고, IQ 저하, 정서적 불안, ADHD, 자폐성 경향까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자라났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온기가 ‘결핍된 환경’ 속에 있었고, 그 환경이 평생을 결정지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타고났든, 그것을 어떻게 품고 길러줄 것인가? 라는 이 물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긍정적 성격보다는 부정적 성격에 꽂힙니다. 저 또한 그러했고 주변 이웃들도 그러했죠. “얘는 왜 이렇게 산만하지?”, “왜 이리 실수가 잦지?” “왜 이리 소심하지?”라는 부정적 의구심에 아이를 다그치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했던 건 결국 우리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런 인간의 ‘선천적 성향’조차도 양육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뇌과학자 제임스 펠런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연구 도중 우연히 자신의 뇌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과 유사한 패턴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공감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비활성화되어 있었고, 폭력성과 관련된 MAOA 유전자까지 보유하고 있었죠. 유전적으로나 뇌 기능적으로 ‘잠재적 위험 요소’를 모두 갖춘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가정 환경’이었습니다. 펠런 박사는 어릴 적 부모로부터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고, 공감 능력을 ‘인지적으로’ 학습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상황을 분석하고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척’하는 능력을 발달시켰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운 좋은 사이코패스”라 표현하면서,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간단합니다. 아이의 기질은 어릴 때 이미 상당 부분 결정되지만, 그 기질이 어떤 인격으로 어떤 성품으로 꽃피우느냐는 전적으로 부모와 환경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만함이 창의력으로, 충동성이 추진력으로, 감정적 민감성이 공감 능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단점은 단점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일 뿐입니다. 그 원석을 어떻게 빛나는 보석으로 갈고 닦을지는 우리 어른의 몫입니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참 멀고도 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의 기질을 받아들이고, 작지만 꾸준한 공감과 격려를 건네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녀들은 우리의 영광이기도 하고 우리의 폐허이기도 하다. 자녀가 그중 무엇이 될 것인지는 바로 우리의 교육에 달려 있다.’ - ‘몬드라곤’의 창업자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교육’은 사람(자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영감을 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