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론토크라시? 청년들은 왜 길거리로 나갔는가?

능력주의 신화가 만들어낸 세대 간 갈등과 분노

by 개똥밭

최근 유튜브 채널 '김지윤의 지식 Play'에서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위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현재 영국, 프랑스, 네팔, 인도네시아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젊은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영상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최근 전 세계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반면,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투표 대신 시위, 청원, 보이콧 같은 비제도적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죠.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신뢰도가 중장년층에 비해 청년층은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주요 원인은 경제적 불안정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부터 Z세대까지 가장 큰 불안감은 재정적 불안이었고, 특히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세대 간 부의 격차가 큰 좌절감을 주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이러한 경제적 불안정의 근본 원인을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로 봅니다. 사회 권력이 장년층 이상에 집중된 상황을 말하는 이 용어는, 정치인들이 재선을 위해 인구도 많고 투표율도 높은 장년층과 노년층의 표심을 공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합니다. 그 결과 연금이나 부동산 정책은 적극 추진되지만 청년을 위한 주거·교육 정책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영상 내용의 상당 부분에 공감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덧 오십 대 중반의 중년으로서 제 인생을 반추해 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제 개발이란 단어가 등장했던 1970년대와 80년대, 하루의 고단함을 포장마차에서 가장 싼 소주와 안주로 달래야 했던 그 시대 영상 속 기자가 포장마차 주인에게 '요즘 장사가 어떠한가?'라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요즘 같은 경기에 우리 같은 포장마차 매출이야 뭐 좋을 게 있나요?"


1997년에 개봉한 작품 '넘버3'에는 누군가의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이라는 말에 상대방이 이렇게 응수합니다.


"불경기? 언제 우리나라 경기가 좋은 적이 있었어?"


2002년 대선에 출마한 권영길 의원의 유세 중 발언은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 발언은 나라 경제는 성장한다는데 서민들 살림은 여전히 팍팍하지 않으냐는 질문이었고 호소였습니다.


그리고 2025년 현재, 우리 인류는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긴 평화와 가장 큰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제 개인 의견이 아니라 이 지구촌의 전문가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말입니다.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조차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우리 지구촌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불행해 보입니다. 특히 우리 청년들이 말이죠. 도대체 왜 그럴까요? '제론토크라시' 그것이 전부일까요?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불안'을 통해 현대인들의 심리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삶은 불가피하게 고난일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믿음은 수백 년 동안 인류의 중요한 자산이었으며, 울화로 치닫는 마음을 막아주는 보루였다. 그러나 이 믿음은 근대적 세계관이 배양한 '기대' 때문에 잔인하게 훼손되었다.
19세기 초부터 서양의 서점들은 자수성가한 영웅들의 자서전이나, 아직 자수성가하지 못한 사람들을 겨냥한 조언집, 인격을 일괄적으로 개조할 수 있고 금세 엄청난 부와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훈담으로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또 의도와는 달리 그들을 슬프게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기대'를 세대를 걸쳐 끝없이 세뇌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 그 당사자의 '실패'는 그의 도덕성 문제로까지 확장된 겁니다.


마이클 샌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능력주의 폭정)'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인간이 노력과 섭리에 따른 성패를 하나로 엮는 일은 능력주의로의 발전에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했다. 이는 운과 언약의 윤리를 때려 부수고, 세속적인 성공과 도덕적인 자격을 결합시켰다.


이를 쉽게 말하면, 세속적 성공(자본, 지위 등)은 그 당사자의 도덕적 성취를 반영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세속적 실패를 넘어 도덕적 실패자로 낙인찍힌다는 거죠. 왜? 실패는 게으름과 무능력에서 비롯되고, 이는 그 자체로 부도덕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를 '능력주의의 오만'이라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가난하거나 지위가 없는 이들은 경제적 궁핍뿐 아니라 도덕적 결함까지 지적받으며 사회적, 심리적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죠.




SNS로 전 세계 또래의 삶을 실시간으로 손바닥 안에서 들여다보는 시대를 사는 요즘 청년들, 태어나보니 상대적으로 부족한 집안 상황도 언짢은데 어른들로부터 도전보다는 현실 안주를 선택한다며 유약하다 타박까지 받는 청년들 마음에는 아마 울분이 차곡차곡 쌓일 겁니다.

수백 년 전, 태어나 보니 '노예, 노비, 천민'이었던 사람들, 살면서 '권리'니 '인권'이니란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들조차 자신에게 쏟아지는 멸시와 차별, 모욕에 결국 분연히 일어서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물며 지금 우리 청년들은 어떠할까요? 동등, 평등, 공정을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치며 '노력하면 된다'라는 기대를 심어주고서는, 그렇지 못한 현실을 그들이 마주하게 했을 때, 그들 또한 마침내 저항의 깃발을 들지 않겠습니까?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는 신조어가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원로 정치'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정치 체제의 장점은 풍부한 경험과 안정적 판단을 바탕으로 신중한 국가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반면 단점은 세대교체가 지연되고 보수적 가치관이 강화되면서 사회의 역동성과 혁신이 약화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물이 고여 있으면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결국 썩게 된다는 것이죠.


결국 제론토크라시는 권력층의 부패, 부자 감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축소라는 결과를 낳았고, 이것이 전 세계 Z세대의 분노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핵심에는 '타인과 비교'라는 채찍과 노력하면 된다'는 약속의 배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영감을 준 자료

요즘은 세대갈등으로 나라도 뒤집어진다? | 제론토크라시, 민주주의, 세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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