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못해도 사랑해~
이번에 꽤 유익한 영상을 하나 시청했습니다. 책 '신을 찾는 뇌'를 소개하면서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석과 토론이 오고 간 영상이었죠. 이 영상 덕분에 제가 오랫동안 가져온 의문 하나가 풀렸고, 의식 속 한구석에 막혀 있던 답답함이 시원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평생 품어온 의문은 이거였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정말 익숙한 말이죠. 그런데 왜 사회적 동물일까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한 가닥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의 DNA에는 생존을 위한 행동양식이 각인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DNA 복제와 존속이 가능한 형태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죠. 즉, 내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겁니다.
그럼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와는 무슨 관계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인간은 너무 연약한 동물이라 홀로 생존할 수 없기에 공동체를 구성했고, 그 공동체 유지의 필수 요소인 '이타심'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공동체에서 보이는 이타심은 순수하게 착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는 겁니다. 그럴듯하죠? 뭐, 세계적 석학의 말이니까 당연하겠지만요. ^^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사회화된 생물인데, 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히키코모리라는 존재들이 나타나고,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고 배척하고 심지어 혐오까지 하면서, 오죽하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이 나와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을까요?
이 오랜 의문점을 이번 '신을 찾는 뇌'가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줬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구성하게 진화되었지만, 그 한계가 150명 정도라는 거죠. 이유는 생존 환경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는 진화의 대부분 기간을 수렵채집으로 살았는데, 이 수렵채집을 위한 공동체 구성원의 한계가 150명 정도였다는 겁니다. 이 이상이 되면 먹을거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고 하죠. 물론 촌락이 부족화되고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은 인원이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지만, 그조차 천여 명 수준이 한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계를 돌파하게 만든 게 바로 농업이었습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간은 한정된 공간에서 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종교와 사상이 나타나면서 지금과 같은 거대한 도시와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우리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신'을 찾게 되었다는 거죠.
문제는 이렇게 큰 사회의 등장이 겨우 1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거죠. 인류의 진화는 600만 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부작용이 나타난 겁니다. 우리 DNA는 이처럼 큰 집단 속에서 살면서 남의 눈치를 봐야 하고 통제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니 어떨까요? 공동체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전 그제서야 제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야말로 무릎을 탁 쳤죠. 그렇구나! 나나 내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이 사회에서 받는 그 모든 부정적 감정이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진화적으로 작은 공동체에 최적화된 뇌를 가지고, 수백만 명이 살아가는 거대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소형차 엔진으로 대형 트럭을 끌고 가는 것처럼요. 지치고 버거운 게 당연한 거였습니다.
어제 예고편을 통해 알게 된 영화 하나가 꽤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제목은 '내 말 좀 들어 줘'. 예고편을 보니 나이 든 흑인 여성 주인공이 상당히 고집스럽고 외골수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주변에 살갑기보다는 공격적이고 고집스러워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나오더군요.
그런데 예고편 중간에 나오는 자막이 정말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거운 당신에게'
아... 정말 가슴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저 또한 그 영화의 주인공 정도는 아니지만 평생 느껴온 감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자막은 더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해는 못해도 사랑해~'
바로 저였고, 내 부모였고, 내 친구들이었고, 현재 내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느꼈던, 그런데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던 바로 그 감정이었습니다.
'신을 찾는 뇌'가 전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야 하지만, 함께 사는 게 본능적으로 버거운 존재들입니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때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 숙명이니까요.
이제 저는 제 스트레스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날카로움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600만 년의 진화와 1만 년의 문명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조금은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가려 애쓰는 존재들이니까요.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면 '덜 속상하게 됩니다.' 제 연제 제목처럼 말이죠...
영감을 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