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은 누군가의 돈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세상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by 개똥밭

우리는 오랫동안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 살기 좋다는 북유럽에서 부정적인 뉴스가 전해지며 우리의 환상이 조금씩 깨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언젠가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복지국가 스웨덴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던데 혹시 이런 뉴스 들어봤어? 만약 들어봤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


아들의 대답은 예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거야 복지를 남발해서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물론 걸으면서 나눈 짧은 대화였기에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때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해보려 합니다.


스웨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는 '스웨덴'을 꽤나 부러워했습니다. 심지어 북한의 김정은조차 종종 '스웨덴식 사회주의'를 북한에도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심상치 않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북유럽의 자랑이던 스웨덴의 재정이 흔들리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뉴스를 언론들이 자극적인 제목과 깊이 없는 짧은 내용으로만 전달했습니다. 그조차 상당수 대중은 제목만 읽고 혀를 찹니다.


"거봐, 복지가 국가를 망가뜨렸잖아."


그렇다면 복지국가 스웨덴에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스웨덴은 2000년대 이후 부자들의 해외 이탈을 막기 위해 부유세와 상속세를 폐지했다. 그 결과 상위 10%의 자산이 급증하며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다. 여유가 생긴 부유층은 남는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것은 부자가 아닌 사람들도 대출을 받아 너도나도 이 투기판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튼튼한 복지 안전망이 오히려 국민들을 무모하게 만든 것이다. "망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확신 아래 과감한 대출과 투자를 감행하며 가계 부채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부자감세가 투기의 원인이 되고 복지가 투기의 촉매제였다는 사실이 말이죠.


프랑스 시위의 진짜 원인


사실 지금 프랑스 국가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하는 극렬 시위도 근본적인 이유는 '부자 감세'였습니다. 부자 감세로 재정이 흔들리자 프랑스 정부는 긴축재정을 시행했고, 재정 감축으로 그동안 국민이 누렸던 각종 복지와 삶의 여유(노동시간 단축 등)가 줄어들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중산층과 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복지가 재정을 흔든 것이 아니라 부자 감세가 재정을 흔들었고, 그로 인해 복지와 여유가 깨지게 되어 사회가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손에 쥐여줬던 걸 빼앗으면 참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혼란의 진짜 원인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욕심', 혹은 '욕망'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


싱가포르는 껌만 뱉어도 태형이 가해지고 수도 중심부에 차를 가져오려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정말 강력한 통제 사회임에도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치열한 부의 경쟁을 막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는 ‘광풍이 아니라 광기’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말합니다. 인류의 눈부신 문명 발전은 인간의 욕망 덕분이고, 경쟁이 효율성을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산업혁명부터 디지털 혁명까지, 인류의 진보는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좋게'를 향한 끝없는 욕망의 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뉴턴의 제3법칙처럼,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습니다. 욕망의 긍정적 힘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 부정적 결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의 극단적인 부의 축적은 다른 누군가의 기회 박탈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이중적 존재입니다. 재산가가 되기를 열망하면서도, 동시에 공평함을 갈구하고 부당한 격차에 저항합니다. 이 모순적 욕망이 충돌할 때, 사회는 요동칩니다. 지금 우리는 그걸 목도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반복해서 경고하는 것


사실 역사는 우리에게 이미 경고했습니다. 조선의 노비들의 살주계를 만들고 왕국 말기에는 임술농민봉기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의 노예들은 스파르타쿠스를 따라 제국에 맞섰고 미국의 흑인 노예들은 남북전쟁이라는 국가적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프랑스에서, 네팔에서, 인도네시아에서 극렬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각국의 시위 이유는 다르게 보이지만 그 씨앗은 모두 같습니다. 누군가의 '욕심'과 그 '욕심'에 대한 누군가의 ‘반발’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저항은 사회 개혁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1988년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리고 1990년대 '지존파'라는 끔찍한 범죄 집단의 계급 증오 범죄, 그리고 최근 빈발하는 '묻지마 칼부림'들. 그 이면에는 상대적 박탈감, 좌절된 성취 욕구, 사회에 대한 분노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빈부의 격차로 범죄가 넘쳐나는 남미에서 부유층은 4미터 높이의 철문과 삼엄한 보안 시스템 속에 스스로를 가둡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곧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중용 - 철학은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


결국, 요즘 우리 귓전을 울리는 지구촌의 부정적 뉴스들은 동양 철학의 오래된 지혜일 깨웁니다. 바로 '중용(中庸)'의 덕입니다.


중용은 어설픈 중립이 아닙니다. 극단을 피하고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적극적 지혜입니다. 자본주의와 욕망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욕망을 인정하되 절제하고, 경쟁을 허용하되 공정함을 보장하며, 성공을 축하하되 실패자를 배제하지 않는 '철학'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철학을 사치재로 취급하는 사회는 그 댓가를 반드시 치루게 됩니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와 주제는 '인간'으로 환원될 수 있다.”

- 세계적 협동조합 '몬드라곤' 창업자 ‘호세 마리아 신부’ 말씀 중



영감을 준 자료

복지천국 스웨덴, 최악의 빈부격차 왜? (법무법인 율촌 최준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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