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1988을 그리워하는 이유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

by 개똥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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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언힌지드'의 홍보 카피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파멸의 경고등이 켜졌다.' 필자는 최근 이를 우리 사회에서 목도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차를 몰던 대리기사를 단지 운전이 거칠다는 이유로 차 밖으로 밀어내 죽게 만든 사건. 사지가 썩을 정도로 아내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부사관의 아내 학대 사건. 그리고 '계엄령 놀이'라는 제목으로 전 국민에게 알려진 강원도 양양 7급 공무원의 환경미화원 갑질처럼 온 국민을 공분케 하는 극악무도한 사건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무너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그런데 이뿐이 아닙니다. 화가 났다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출입구를 막는 '주차 빌런'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고, 엊그제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배달 기사에게 '가정교육'을 운운한 건강보험공단의 청년의 무도한 행태도 방송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사건들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분쟁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사건들이 더 두려운 일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양태로,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못하다고 여기는 이에게 자행하는 이런 행태는 분명한 이상 현상입니다. 우리 사회가 극단적 이기주의에 매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988년을 동경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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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우리나라를 넘어 주변 국가, 심지어 서구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 드라마의 흥행 요소를 분석한 기사들을 보면, 우리가 그 시대를 '동경'한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1988년 당시 대한민국 역시 결코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사회 변화로 인해 다양한 사회 병리 현상과 범죄가 발생했던 시기였습니다. 퍽치기, 소매치기 같은 생계형 범죄와 납치, 인신매매 등의 강력 범죄가 만연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때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걸까요?


그것은 그나마 그때가 덜 이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한 동네, 이웃은 마치 가족처럼 서로의 어려움과 슬픔을 챙기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바로 그 점을 잘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그때 치안은 지금보다 더 불안했지만, 당시 범죄는 생계형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이기심이 만든, 타인을 자신의 이득을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는 범죄가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를 더욱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부동산과 코인, 그리고 FOMO


범죄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닙니다. 부동산 폭등에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빚어낸 '코인'까지 등장하며, 이 혼란 속에서 자신만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FOMO(부의 행렬에 나만 도태된다는 박탈감) 현상으로 많은 이들이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부의 양극화는 사람들을 더욱 극단적 이기심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뉴욕 시장 당선이 던진 질문


Gemini_Generated_Image_cr6g1ecr6g1ecr6g.png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새로운 뉴욕 시장 조란 맘다니는 '임대 규제 아파트의 임대료를 동결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많은 정치 평론가이 그의 공약을 비판하면서도, 그가 당선된 이유만큼은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뉴욕이란 곳이 상위 10% 이내의 부유층만 살 수 있다면, 그 지역을 실제로 유지하는 노동자들은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그의 당선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비판하는 트럼프와 같은 정적들조차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고통은 결국 사회적 균열로 이어지고, 그 균열은 사회 전체를 흔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임계점에 이른 세상


이제 우리 세상은 그 임계점에 이른 듯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하다는 지금, 사람들은 가장 불안해하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각종 사회적 병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아닌 우리 다음 세대, 우리 자녀들을 위한 세상의 변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적어도 나 같은 중장년 세대는 "나는 늙었으니", "나는 충분히 잘 살았으니" 하며 이기적으로 살다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1988년의 그 이웃 공동체를 지금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극단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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