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진통제, 보상금이 공감을 잠식하는 방식
최근 유튜브로 소개된 한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통증 완화제를 과도하게 복용하면 자신의 통증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도 약 30% 가량 떨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약물이 신체적·심리적 통증을 차단하면서,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뇌의 기제까지 함께 약화된다는 분석입니다.
이 연구를 접하고 문득 우리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태원 참사. 이런 국가적 재난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깊은 애도와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나와는 동떨어진 사회적 '이슈'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거나, 빠른 마무리를 바라는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과거 세월호 같은 참사 당시 희생자 가족들의 절규를 보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보상금'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금액으로 환산한다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계산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공감 능력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후로 의식적으로 공감력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여기서 앞서 언급한 진통제 연구가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진통제가 통증을 차단하며 공감 능력까지 무디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일종의 '집단적 진통제'가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진통제의 이름은 바로 '보상금'입니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이전에도 크고 작은 참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미디어는 피해자들의 아픔과 진상 규명보다 '보상금'을 주요 화두로 다뤘습니다. 얼마를 받았는지, 적정한 금액인지, 정부 예산은 충분한지. 이런 보도들이 반복되면서 사람들 머릿속에는 하나의 공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국가적 참사 = 보상금.
문제는 이 공식이 우리의 감정적 반응까지 단순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진통제가 물리적 고통을 빠르게 해소하듯, 보상금은 사회적 고통을 빠르게 '처리'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애도의 과정,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어려운 과제들을 건너뛰고, 금전적 보상으로 빠르고 간편하게 마무리하려는 정서가 형성된 것입니다.
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아는 사실이지만, 진통제는 말 그대로 통증을 차단하거나 약화하는 약이지 근본 치료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통제를 사용하면 통증의 원인이 사라졌다는 착각을 합니다.
참사에 등장하는 보상금에 대한 일부의 시각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통제가 근본적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상금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근본적 치유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그만하면 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진통제를 과도하게 복용하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듯, '보상금'이라는 사회적 진통제에 익숙해진 우리는 점차 피해자들의 진짜 고통에 둔감해지는 듯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 그리고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됩니다.
진통제는 당연히 필요한 약입니다. 쉽고 빠르며 적절히 사용하면 유용합니다. 그러나 서두의 연구처럼 진통제 남용이 통증을 넘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까지 둔감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우면서도 실감할 만한 결과입니다.
근골격계에 이런저런 통증이 자주 찾아오기 시작하는 중년의 나이로 최근에 느낀 분명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아프면 확실히 남의 고통도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거 보면 고통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오늘 이 글은 진통제가 공감력에 미치는 연구 결과로 떠오른 단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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