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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Oct 17. 2020

16화. 생의 황혼기에 마지막 갈망

소외, 무관심 그리고 태극기 노인

가끔 지하철을 타면 - 특히 1호선 - 심심치 않게 노인의 격앙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언젠가부터 이 풍경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작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보훈병원을 꽤 들락거렸던 것 같다. 참전용사나 유공자들을 위한 병원이다 보니 특성상 병원 방문객의 대부분이 노인이다. 그리고 1호선 지하철처럼 갈 때마다 꼭 한두 번은 뭔가 불만이 가득한 노인의 격앙된 목소리를 듣거나 말싸움을 보게 된다.


어느 날, 병원 접수처 앞에서 노년의 여성분과 직원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언쟁이 길어지자 대기석의 할아버지 한 분이 '인내심'이 다하셨는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셨다.


"당신이 여기 전세 냈어? 빨리 계산을 끝내야 다음 사람도 일을 볼 것 아냐?"


이제 '언쟁'에 참가자는 세 명이 되었다. 그렇게 세 명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또 다른 할아버지 한 분이 이 사태에 끼어드셨다.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동장 출신인데 우리나라 헌법 몇조 몇항에 뭐라고 적혀 있는 줄 알아!!"


라며 뜬금없이 헌법 조문을 외우셨다. 이제 참가자는 네 명이 되었다.



요즘 정말 매 페이지를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노인들이 예전에 누렸던 지식과 지혜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도 문자의 발명에서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점점 설 자리가 좁아졌다…. (중략) 오랜 경험과 노련한 판단의 가치가 훨씬 퇴색되어 버렸음은 물론이다.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노인들에게 의지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구글 검색을 하고,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맞는 말이다. 예전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에서 노인은 존중과 존경을 받는 존재였다. 가정과 마을의 주요 대소사에는 반드시 '노인'의 조언과 결정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지금은 '천덕꾸러기' 취급이다. 


몇 년 전 아버지는 개인 송사에 휘말려 당신이 평생 이룩한 지위와 모든 재산을 잃었다.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옆에서 홀대받으면서도 언제나 '부군'으로 떠받드셨던 어머니까지 돌아가셨다. 사실 아버지와 난 좋은 사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인 '아버지'다. 그러다 보니 당신이 그동안 누렸던 그 모든 '권위와 존중'을 마음의 준비를 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상실한 아버지가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어느 날,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던 중 난 농반진반으로 차라리 '태극기' 같은 비슷한 연배의 모임에 활동 하시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해봤다. 물론 그동안 아버지 성격상 '미친놈' 이란 말을 들으리라 예상했다. - 당신은 그들과는 '격'이 다르다라고 생각하시던 분이다. -  그러나 뜻밖에도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참고로 아버지는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분이고 크든 작든 간에 기업가로서도 나름의 족적을 남긴 분이니 정치색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보수적이다. 그리고 난 아버지와는 성격도 정치색도 정반대다. 그게 후천적 환경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태생적 기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 이런 문장이 있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에게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된 일명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노인들의 '격앙된 목소리'는 어쩌면 '성적인 사랑'보다 더 은밀하고 부끄럽다는 '이 세상이 주는 사랑'을, 그것도 생의 황혼기에서 마지막으로 갈구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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