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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Feb 09. 2021

이사, 희로애락의 기억들...

작아진 만큼 가까워지다.

난 참 많이 이사를 한 것 같다. 어느 날 초본을 떼 보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스무 번이 넘게 이사를 한 기록이 보인다. 

어린 시절 나에게 이사는 '설렘'이었다. 여행이 어려웠던 그 시절 이사하는 날이 '여행'가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었던 관계로 우리의 이사는 최소 '도' 단위 지역을 넘어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큰 군용 트럭 운전석 옆에 태워진 나는 시나브로 땅거미가 지는 도로 옆 논과 밭, 산 능선을 바라본다. 고은 주황색 하늘...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하늘은 청록색으로 바뀌고 산은 점점 검은색으로 물든다. 완전히 해가 떨어지고 세상에 짙은 어둠이 내려오면 도로변 산기슭에 보이는 어느 작은 집 창가의 불빛은 상상을 자극한다.  저기에 누가 살고 있을까? 하얀 쪽진 머리의 할머니가 지나가는 과객을 기다리며 바느질을 하고 있을까? 과객이 들면 배불리 먹이고 골아떨어지면 잡아먹으려고? ^^; (어릴 적 할머니가 날 무릎에 누여 놓고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다.)


십 대 사춘기 시절 이사는 나에게 '공포'였다. 그 시절 이사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쫓겨 다니는 이사였다. 넓은 마당에 환하고 밝았던 집은 점점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밥 냄새, 바둑이의 환대 소리, 마당의 꽃내음은 사라지고 그 모든 긍정의 냄새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 연탄가스 냄새, 하수구의 악취와 같은 부정적 냄새로 바뀌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 후 이사는 우리에게 '희망'이었다. 전세 기간이 끝나면 이사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한평이라도 늘려 이사를 갔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결혼 초년 부부들의 로망인 평수 늘리기를 우리도 실천했다. 그 시절은 '명품 아파트, 신도시'의 개념은 없었기에 단지 안에서 한평, 두 평 소박하게 평수만 늘려 갔다. 아무리 늘려도 이십 평이 되지 않는 작은 아파트였지만 즐거웠다. 좋은 이웃들과 아이들, 이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여름철에는 하늘을 덮는 아름들이 나무들... 비록 낡고 작은 저층의 주공 아파트였지만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나와 내 아내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결혼 후 십 년 만에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 이제 벽에 못을 박아도 되고 원하는 액자를 걸어도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내 인생에 이사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때 이사의 기억은 '안도' 그리고 '성취'였다. 이제 남은 건 여기서 우리 가족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오 년 뒤 내가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고 말이다.  


이제 나에게 이사는 '고난'이다. 중년의 나이에 안착해야 하지만 돈을 벌고자 기회의 땅이라 생각하고 건너온 '신도시'는 나에게 축복이 아닌 고난의 땅이 되었다. 이 나라에서 '부동산'은 그 단어가 가진 원뜻보다는 '욕망'이란 의미가 어울릴 듯하다. 욕망의 광풍에 우리 가족은 속절없이 쫓겨다녔다 이 신도시에서 10년 동안 3번의 이사... 이제는 고단하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내 집도 아닌 전셋집이었음에도 그전보다 작은 집으로 오니 서글펐다. 전세가는 역대 최고가를 지불했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이번 이사 때는 몇 번의 이사로 상할 때로 상한 가구를 모두 버리고 왔다. 침대, 소파, 장롱은 물론 식탁도 없었다. 난 의도치 않게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다. ^^;;


이사 다음 날 저녁, 짐 정리로 피로해진 몸을 간신히 방바닥에 붙이고 - 앉을 의자가 없었다 - 저녁 식사를 위해  우리 가족은 낡은 밥상을 꺼내 둥글게 모여 앉아 식사를 했다. 이때 내 딸아이가 "왠지 '우리 집'에 온 느낌이야.."라고 했다. 이 말에 아들도 "응 나도 그런 느낌이야 뭔가 진짜 집 같은..."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거실에 펼쳐 놓은 매트 위에 모여 귤을 까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 그 시절처럼... 어느 순간 나와 아내의 서글픈 감정과 피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작아진 공간에서 좀 더 가까워진 가족의 사이, 그때 깨달았다. 집의 크기와 가구보다 더 소중한 건 '가족의 온기'라는 것... 그리고 '행복'은 항상 주변에 존재함에도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의 둔감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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