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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Feb 16. 2021

이 아이들이 자라서...

아동 학대, 우리가 치르게 될 대가

몇 달 전 이 나라 부모들의 분노를 극한까지 몰아붙였던 일명 '정인이 사건'이라는 잔혹한 유아 학대 사망 사건의 비극이 채 가시지 않은 요즘, 또 다른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사회적 충격이 큰 반인륜적 사건이 터지면 우리 사회는 양은 냄비처럼 확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정치인들은 급조한 관련 법안을 손에 쥐고 군중을 향해 흔들고 일부 언론들은 이 사건에서 '자극, 혐오, 공포'만 뽑아내 전달하며 트래픽 올리기에만 열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SNS에 '**아 미안해'라는 한 줄의 글과 그 글을 장식하는 하트, 눈물 등의 이모티콘 그리고 꽃다발 사진을 올리며 이 짐승 같은 세상에서 적어도 자신만큼은 공감과 연민이 충만한 '괜찮은 사람'이라며 자위한다.


물론 그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비록 가식적일 수도 있고 금방 사라지는 '휘발성' 강한 감정일지언정 그 조차도 분명 필요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모두들 무감각하게 행동한다면 그건 더 비극적일 테니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얕은 이해와 그로 인한 분노의 가벼움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너무도 연약한 어린아이'와 '무자비한 어른'에만 집중한다. 사건의 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도대체 왜?' 그리고 '그날 이후'는 보려 하지 않는다. 




배달 외식업계에 뛰어든지도 올해로 십 년이 되었다. 이 일을 하면 다양한 가정을 방문하게 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지만 사람들 사는 모습들이 대부분 비슷했다. 비록 내가 볼 수 있는 모습은 신발이 놓여 있는 현관과 그곳에 서 있는 그 집의 가족들 모습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집의 분위기, 환경이 어떠한지 유추할 수 있다.

             


엄마나 아빠를 따라 나온 아이 중 외향적인 아이들은 서로 '피자'를 받겠다고 난리다. 그러나 얌전한 아이들은 부모 다리 뒤로 숨는다. 내가 가볍게 들 수 있는 작은 피클 봉지를 쥐여 주면 수줍어하며 삐죽거린다. 이때 대부분 부모는 아저씨에게 '고맙습니다.' 해야지 하며 가르친다. 이미 교육된 아이는 나에게 허리를 숙여 배꼽 인사를 한다. 대부분 가정은 이런 풍경이다. 평화롭고 따뜻하고 안정감이 있다. 




그 집에는 세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유치원생 정도의 남자아이, 그리고 아직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처음 그 집을 방문해서 초인종을 누르니 어린 여자아이가 아파트 현관문을 조금만 열고, 나를 빼꼼히 쳐다봤다. 어떤 인사나 물음도 없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문만 작게 열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뒤에서는 동생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피자다. 피자!!'를 외치면서 소란을 부리고 있었다. 넓적한 피자를 그 작은 문틈으로 구겨 넣을 수도 세워서 넣을 수도 없었다.


"피자가 커서 문을 다 열어줘야 아저씨가 피자를 넣어 줄 수 있는데"


그 여자아이는 여전한 경계의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그 여자아이 뒤에 서 있던 어린 남자아이가 소란스럽게 다가와 빨리 피자를 내놓으라며 피자 가방을 끌었다. 번지레한 아파트에 비해 아이들 모습은 꾀죄죄했고 문 뒤의 현관 모습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흡사 주인이 외출한 사이 홀로 남은 '개'가 방안을 어질러 놓은 듯, 신발장의 모든 신발은 다 꺼내져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거실로 이어지는 바닥에는 장난감, 도화지, 기저귀,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소란에도 부모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거로 봐서는 이 어린아이들끼리만 있는 듯했다.


내가 피자를 가방에서 꺼내 주고 일어서자 남자아이는 갑자기 팬티를 내리더니 맨 엉덩이를 내게 씰룩거리며 - 아마 만화 캐릭터를 흉내 낸 것 같다 – 놀자고 보챈다. 이 당황스러운 장면이 처음은 아닌 듯 여자아이는 단호하고 능숙하게 동생을 제지했다. 그동안 수많은 집을 방문했지만 정말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난 '뜨거우니 조심해~'라는 말로 소란을 부리는 남자아이를 달래서 때어 놓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문을 닫고 뒤돌아 나오는 내 마음은 심란했다.


처음 방문 후, 몇 달 동안 그 집에서 주에 한번 정도는 주문이 이어져 몇 번 더 방문했지만 부모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익숙한 얼굴이라고 여자아이는 덜 긴장된 얼굴로 맞이했고 남자아이는 더 친근감(?)을 표시하며 소란스러웠다. 가끔 기저귀를 차고 어설프게 뒤뚱거리며 걷는 유아도 보였다. 아이들 모습은 여전히 꾀죄죄했고 집안의 모습도 전혀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건강에 큰 문제없어 보이는 모습이 나의 알량한 동정심의 부담을 덜어 주었을 뿐...


사회생활 중 십 대 청소년을 자영업자만큼 많이 만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래서 자영업자들은 이 청소년들이 무척 익숙하다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가정이 어떤 상태인지 심지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아마 그들의 선생님은 물론 부모들보다, 어쩌면 자신의 자식들보다는 ‘알바’들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가끔 그 집 삼 남매가 ‘이대로 십 대가 된다면’이 상상되었다.

              


엄마 노릇을 하던 그 여자아이는 내 가게에서 일했던 그 소녀들처럼 될지도 모른다. 이미 중학생 때부터 흡연과 음주, 가출, 폭력을 저지른 말썽꾼 십 대 소녀, 그게 아니라면 대인 기피증에 걸린 듯 타인과는 말 한마디 섞지 못하고 나에게 ‘사장님’이란 호칭조차 부르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심한 십 대 소녀처럼 될지도 모른다.


천방지축인 그 남자아이는 음주에 오토바이 절도, 그것도 모자라 자기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 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속을 까맣게 까맣게 태웠던 그 소년처럼 될지도 모른다.


기저귀를 차고 있던 막내는... 그저 무사히 자라기만 바랄 뿐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알려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괴물 취급하고 혐오하며 오로지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라 말하는 '불량 청소년'이 그때 학대와 방치 속에서 살아남은 그 가냘픈 어린애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면 바로 그 패륜 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죄 값'을 우리 모두가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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