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이티브스피커 Dec 06. 2021

실수가 실패가 되지 않았던 어느 멋진 하루!

아이와 보낸 어느 멋진 날


아홉 살 아이와 나는 얼마 전까지 '슈퍼밴드2'를 즐겨 봤다. 그래서 방송이 끝난 후 갈라콘서트 티켓 두 장을 예매해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콘서트가 열리는 토요일, 날씨가 정말 좋았다. 공연장이 있는 올림픽공원에 가는 차 안에서 아이와 나는 '슈퍼밴드2'에 나왔던 노래들을 크게 따라하면서 각각의 밴드에 대해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팀은 여자로만 이루어진 거 알지? 그런데 슈퍼밴드 시즌1에서는 남자만 출연 자격이 있었던 거 알아? 말이 되냐? 이번 시즌에도 원래는 남자만 나오는 거였는데 여기저기서 비판을 해서 여자도 겨우 출연 자격을 얻은 거야."


"그래? 말이 안 되지!!"


"이 팀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박다울이 있는 팀이잖아. 너 거문고 치던 사람 알지? 여기 기타리스트도 엄마가 엄청 좋아해. 기타 연주가 정말 특별해. 엄청 실험적이야."


"엄마는 다 좋아하잖아."


"다 좋아하는 건 아닌데.... 어쨌든 좋아하는 게 많은 건 좋은 거잖아."


"맞아."


드디어 올림픽공원에 도착.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주차를 하고 티켓 부스로 뛰어갔다. 티켓을 찾고 큐알코드를 보여줬는데 아이의 pcr 검사 결과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두둥!!!!!! 이게 뭔가? 코로나 상황에서도 아이와 몇 번 공연 관람을 했지만 pcr 검사 결과를 가지고 오라는 곳은 없었다..... 고 항변했지만 주최측에서는 다른 공연은 모르겠고 자신들은 예매 때부터 고지한 사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공연 예매 때 뜬 코로나 관련 팝업창을 꼼꼼하게 읽지 않은 내 잘못이다. 그 대신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해 주겠다고 한다.


나는 정말 너무너무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아이에게 너무너무너무 미안했다. 아이를 꼭 안고 미안하다고 수십 번 말했다. 아이는 너무 아쉽다고 하면서도 엄마를 원망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이 녀석! 허당 엄마의 좌충우돌을 이렇게 수용해 줄 만큼 커 버린 건가 ㅜㅜ


날씨는 좋고 하늘은 높고 올림픽공원은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여기서 선택을 해야 했다. 공연장 앞 벤치에 망연자실 앉아 있을 것인지 날 좋은 오후 시간을 잘 보낼 방법을 찾을 것인지. 


나는 나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았다. 유독 이 공연 예매 조건만 달랐던 걸 내가 챙기기는 힘들었다. 나는 그런 걸 신경 써서 챙길 만큼 꼼꼼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였다. 이런 실수를 안 했으면 좋았겠지만... 과거의 나는 아이와 이 공연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한 일이다. 후회는 과거의 나에게는 무척 부당한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날을 망칠 수는 없다. 나는 이 근처에서 아이와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보았다. 공연장과 멀지 않은 곳에 '소마 미술관'이 있고 거기 전시들에 대한 꽤 좋은 평이 인터넷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아이와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차로 몇 분 안 되는 거리를 네비를 잘못 찍어서 또 한참을 헤맸다 ㅜ.ㅜ)



소마 미술관에 차를 세우고 우선 점심을 먹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먹고 나서 4시쯤 전시 관람을 시작했다. 미술관에서는 '내일전 - Drag and Draw'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미술 문외한인 우리 모자의 눈에도 꽤 흥미로워 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아이는 만져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면서 (직원들에게 몇 번의 주의를 받고 엄마에게 몇 번 혼나면서) 전시 관람을 마쳤다. 전시관을 나와서 보니 놀이터가 있었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어울려 잠깐 놀다가 솜사탕을 들고 있는 다른 아이를 발견하고는 솜사탕을 사 달라고 했다. 나는 5천 원이라는 거금을 써서 기분 좋게 솜사탕을 쏘고 건너편 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와 핫쵸코를 먹으면서 잠깐 몸을 녹였다. 그새 밖은 벌써 깜깜해졌다. 시계를 보니 6시밖에 안 됐다. 새삼 해가 짧아진 것을 느꼈다. 집으로 오며 아이에게 오늘 전시회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지 물었더니 꽤 여러 개를 꼽는다. 그리고 엄마 마음을 알아채기나 한 듯 오늘 전시회도 좋았고 솜사탕도 먹었고 좋은 하루였다고 말해 준다. 나에게도 좋은 하루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내 머리를 몇 번이나 쥐어박았을 텐데... 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과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빠져나왔고 나의 실수가 오늘 하루를 망치게 놔두지 않았다. 그런 나의 선택은 오히려 아이에게 기억에 남는 하루를 선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말처럼


"실패는 없다. 피드백이 있을 뿐!!"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다음에 뭔가 예매할 때는 코로나 방역 조건을 좀 더 꼼꼼하게 챙길 것이다.





심아빈, 2016, 시계방향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을 실제로 시간이 가고 있는 시계 위에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손민아, 알파벳을 바코드 모양으로 형상화한 '손민아체'

작가는 '손민아체'로 '요한계시록 13장'이라는 작품도 만들었다.



류정민, 생각의 생각

스티로폼에 프린트된 종이를 붙여서 돌 모양을 만들었다. 아이가 진짜 돌인지 아닌지 자꾸 만져 보려고 해서 제지하느라 힘들었다. 이렇게 만져 보고 싶게 만들어 놓고 만져 보지 말라니... 아이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전시관에서는 '백남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백남준'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하려고 했으나 작품에서 나오는 "삐이~~~" 소리를 아이가 힘들어해서 잠깐 둘러보고 나왔다.





이전 04화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러 부여박물관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