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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티브스피커 Oct 02. 2023

'긴긴밤'들을 지나 너와 내가 가족이 됐다.

판소리 <긴긴밤>, 창작동화 <긴긴밤>



"그래서 코뿔소하고 펭귄이 가족이야?" 공연을 보고 나온 밤 덕수궁 돌담을 끼고 걸으며 아이가 물었다. 나는 "그럼~~ 코뿔소와 펭귄이 가족이지."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종도 다르고 어떤 연관도 없는 두 동물의 오랜 동행과 교감을 보고 나온 터라 내 대답에 의구심은 들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으로 재차 묻는 대신 한동안 아이답지 않은 침묵을 택했다. 아이의 의문이 짐작이 되는 터라 아이가 질문을 완성하기 전에 내가 먼저 대답해 줬다. "가족은 원래 처음에는 완전한 남남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거잖아. 엄마랑 아빠도 원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겠지? 그러니까 완전한 타인을 받아들이겠다는 용감한 시도가 가족의 시작인 거야. 그게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엄마랑 아빠처럼. 그래도 그런 무모한 시도가 없었다면 너도 없었고 너와 내가 가족이 될 수도 없었겠지." 아이는 그 정도면 대답이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이야기의 전제가 되는 주인공들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고 나자 그제야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긴긴밤'들을 지나 아이와 나도 가족이 됐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낯선 세상과 만나고 내가 내 아이의 부모가 되어 가는 행복하고 고단한 밤들이 지났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부모로부터 분리되는 충격과 좌절의 시간을 겪는 아이를 안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긴긴밤을 지샜다. 그 시간들 안에는 코뿔소의 잘려 뭉툭해진 뿔과 아기 펭귄의 머리가 맞닿아 있는 '긴긴밤' 책의 표지 그림처럼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잡고 그 온기에 기대 힘을 얻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또한 한없이 작고 부족한 나를 의지해서 걸음마를 하고 걷고 뛰고 있는 아이의 시간이 들어 있다. 그렇게 너와 나는 가족이 됐다.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평일에는 엄마와 주말에는 아빠와 지내면서 아이는 이제 엄마와 아빠는 서로 가족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부딪치고 깨지면서 잠시나마 서로를 뚫고 들어갔던 시간이 있었기에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언젠가는 이해하겠지.



이 공연 관람은 순전히 새로운 공연 형식에 대한 내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공연을 보는 것이 취미라 심심할 때마다 티켓 예매 앱을 켜놓고 소일 삼아 구경한다. 그러다가 뭔가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 눈에 띄면 호기심에 머릿속 전등이 켜진다. 이 공연도 그런 공연 중 하나다. 전통적인 판소리 형식과 달리 고수 역할을 하는 연주자 두 명과 창자 겸 연기자 두 명... 이렇게 네 명이 꾸미는 판소리라고 하니 궁금해서 마음속이 간질간질했다. 게다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포함돼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공연에 아이를 데려가면 아이는 캄캄한 조명과 적당한 백색소음에 금세 잠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아까운 공연비를 몇 번 버린 후에는 아이가 확실하게 좋아할 만한 공연에만 데리고 간다. 그러다가 이 공연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판소리와 (아이가 좋아할 만한) 동화의 만남!! 그렇지만 이번에도 아이가 자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정동국립극장_세실'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덕수궁 돌담길이 아닌 반대쪽 돌담을 끼고 안쪽으로 들어가 본 것도 처음이었다. 저녁 시간에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아이와 나는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공연장 안에는 앉아서 기다릴 만한 의자도 몇 개 없어서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우리는 인적 없는 길을 더 걸어 들어가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카페에 들어가서 잠깐 차를 마시고 나왔다. 다음에 이 극장에 갈 때는 시간을 딱 맞게 도착해야 한다는 팁을 하나 입력하고 공연장에 입장했다.


무대에는 두 명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종일관 무대를 떠나지 않는 네 명이 있다. 양 사이드에 고수가 두 명(한 명은 북, 한 명은 드럼), 무대 중앙에는 창자 겸 연기자가 두 명(한 명의 소리꾼 겸 연기자, 한 명의 연기자). 두 명의 연기자는 대사와 노래로 극의 스토리를 끌고 가고 배경 스크린과 조명이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소리꾼의 판소리 가창이 관객들의 감정을 극대화시켰고 양쪽 고수가 연주하는 음악은 공연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었다. 무대는 미니멀했지만 이야기와 감성과 음악은 아주 풍성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동물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어떤 분장이나 복장도 없이 인간이 펭귄과 코뿔소를 연기했지만 무대에는 분명 귀여운 아기 펭귄과 듬직한 코뿔소가 있었다. 두 동물의 특징을 잘 살린 몸짓은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펭귄의 귀여운 걸음걸이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 공연은 고수가 전체 음악을 창작하고 소리꾼이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며 연극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판소리라고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판소리가 극의 하나의 요소로서만 작용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이 시대의 판소리다. '이자람'의 판소리에는 일찌감치 고수 대신 밴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판소리가 언제까지 판소리일 필요는 없다. 창작자들이 자신이 가진 요소들을 자유자재로 실험하고 장르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이 극을 만든 창작자는 새로운 판소리 작업을 하는 '입과손스튜디오'이며 이 공연을 가능하게 한 지원자는 '국립정동극장_세실'의 '창작ing' 프로젝트다. 세실극장을 인수한 국립정동극장은 지난해부터 '동시대성을 갖춘 재공연 작품'을 선정해서 지원하고 공연 기회를 주고 있다. 이렇게 실험적이고 작은 규모지만 큰 감동을 주는 공연을 찾아낸 나를 칭찬한다. ㅎㅎ


원작인 '긴긴밤'이 2020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어른들이 더 소장하고 싶어 하는 책이라는 건 공연을 보고 나서 알게 됐다. 공연을 보고 나니 원작이 궁금해졌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자기 전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줬다. 하루에 몇 챕터씩. 아이는 매번 조금만 더 읽어 달라고 졸랐고 몇몇 부분에서는 슬퍼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펭귄이 죽고 바로 아기 펭귄이 알을 깨고 나온 장면에서는 "조금만 더 버텼으면 아기 펭귄을 볼 수 있었을 텐데...ㅠㅠ"하고, 코뿔소와 헤어져 아기 펭귄이 혼자 바다를 찾아 떠날 때는 "왜 둘이 헤어져야 해? ㅠㅠ" 하면서 울었다. 어느 때는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 아이도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긴긴밤을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 시간은 부모도 같이 있어줄 수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밤들을 같이 새워 주는 누군가를 만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기적을 만들어 가기를 기원한다. 너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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