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껏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
내 기억의 범위 안에서 내가 가장 글을 쓰고 싶었던 때는 인생의 어느 순간 사방 창문도 없는 벽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였다. 의사소통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고 절망적이었다. 속에서 끓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데 그걸 분출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너무나 글이 마려웠다. 그러나 안전하게 쏟아낼 공간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마음의 괄약근에 힘을 주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살아야 했다. 그때 나는 글이 그렇게 절실했는데도 왜 글을 쓰지 못했을까?
'글쓰기'라는 화두를 앞에 두고 내가 지금껏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 봤다.
고백하자면 나는 여전히 남들이 읽는다는 게 전제된 공간에 개인적인 글을 쓴다는 게 영 어색하거니와 그런 글들은 도대체 어떤 포지션을 잡고 써야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남들이 읽을 걸 전제로 쓰는 글은 공론 형성에 보탬이 될 때만 의미 있는 거라고 생각해 온 낡은 사람이다. sns가 시작됐을 때 나는 사람들이 왜 일기를 공개적으로 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무한대로 관계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이 상황을 혼돈과 위험으로 인식하고 오히려 더 방어적인 태도로 시대를 거스르고 있었다. 나는 왜 이처럼 모든 게 연결돼 있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벗은 몸으로 유영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내 취약함을 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그러다가 또다시 길 위에 선 지금 나는 이 질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내 인생에서 아직 메우지 못한 퍼즐 조각들에 대해서, 내 아이에 대해서, 내 일에 대해서, 내 좌절에 대해서, 내 희망에 대해서 쏟아내지 않고는 이 길에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제 마음의 괄약근에 줬던 힘을 조심스럽게 거둬들이려고 한다. 여전히 내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바닷속에 깊숙이 몸을 담그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편으로 낯선 경험을 앞두고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몸을 감싼다. 소통을 갈망하면서도 나를 보여주지 않았던 모순되고 어정쩡한 태도를 버리고 사람들과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다들 솔직하라고 하는데 나도 내 감정이 뭔지 몰라서 솔직할 수 없어요." 얼마 전 봤던 '굿 닥터'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다. 먼저 내 마음속과 내 주변을 깊이 들여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