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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Jan 17. 2022

2화) 깨어난 들깨 새싹과 무당벌레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3째 주 (2.22~28)


수경재배 교육을 열심히 듣고 식물 개념을 배우는 자


식물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한 '무지' 레벨의 초보자는 수경재배 기초교육 3번째 수업에 들어서며 그나마 아주 조금씩 개념을 깨우치고 있다.


식물은 가장 발달한 생존능력을 갖춘 생물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자가 복제 시스템.


아직 나의 들깨는 싹이 나오지 않고 있다. '빛'과 '온도' 둘을 다 충족해야 하는데, 왠지 아직 LED등 요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온도'만 선택하여 실내에 두고 있으니 빛이 부족한 탓일 게다.



들깨가 깨어나다!!!

그런데 오늘 보니 3 들깨 중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살짝 틈이 벌어진 것 같이 보인다. 뭔가 나올 준비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원래는 따뜻한 봄날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 맞는 것이니까. 지금은 인위적인 재촉일 뿐이지. 우선은 그냥 이대로 두면서 천천히 기다려봐야지. 룰루.

우어어. 드디어 그 갈라진 미세한 틈이 벌어지더니 싹이 나올 준비를 한다! 감동~ 2.15 심었으니까 12일 만에! 그 미세한 틈 사이로 녹색의 잎이 보인다!!!!!


드디어 내가 처음 심은 씨앗에서 영광스러운 첫 싹이 나올 준비를 하는 것이다.

또 2일 후! 이제 늠름한 모습으로 뿌리를 내리려 하면서 거꾸로 설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하루 지나서. 햇빛도 무척이나 좋고 기분 좋게 따뜻해서 듬뿍 그 에너지를 받도록 두었더니 7시간 만에 또 성큼 자랐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째 들깨도 중 하나도 아주 미세한 틈이 갈라지며 나올 채비를 하는 듯하다.


생각해 보니, 밥 먹을 때 들깨를 항상 넣어 먹고 있는데, 이걸 그냥 심었으면 될걸 싶다. 한살림 꺼라 더 건강하지 않을까 싶은데. 씨앗을 모르고 따로 사버렸네. 씨로 된 것이나 뿌리가 바로 나올 수 있는 식물들은 앞으로 한살림에서 사 먹을 때 그대로 활용해서 심으면 되겠다 싶다.

또 하루 지나서! 첫째 들깨의 떡잎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중. 


그 작은 씨앗에 무엇이 들었길래,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일까? 


하긴 지금 내 몸을 보아라. 보이지 않는 무에서 이 손가락, 손톱, 머리카락, 눈, 모든 세포가 있는 복잡한 생명체로 만들어져 존재하고 있다. 놀랍고 신비로운 우주를 이 작은 들깨 한 알이 모두 담고 있다.


생명의 태동은 언제나 신기해. 

다 갖추고 정지되어 있다가 비밀 열쇠 조건이 모두 맞아지면, 스스륵 깨어난다.


잘 자라라!



식물 왕초보 기초과정 탈출!


과연 탈출!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겨우 4번 수업을 듣고 그래도 수료증을 발급받았다. 뭐가 되었든 이렇게 금색 테두리 종이에 '상장/이수증/수료증/자격증'을 받으면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거야. 


식물의 개념, 순환 시스템에 대해 경미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어서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수경재배를 열심히 알려주신 박영기 대표님께는 죄송하지만, 우선, 씨앗을 수경재배 씨앗 발아 용인 '암면배지'에 심긴 했지만 아무래도 난 흙에서 먼저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생물의 힘은 단순한 1+1=2로 이루어진 물질계의 합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최대한 가장 오리지널리티, 그것을 추구하고 싶다.


수경재배는 땅 대신 인공배지를, 그리고 퇴비 대신 '사료'와 같은 영양액을 물에 타서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배지(지지대) + 물에 탄 영양소(흡수 있수 있는 이온화 형태로 만듦) + LED(빛) + 온도(각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이 식물 성장의 필요한 요소이다.


물론 빛이 안 들거나, 마땅한 땅이 없거나, 온도가 받혀주지 않을 때 -> 꼭 식물을 키워야 한다면 이 발전된 인공재배방식 (흙 농사를 포함하여 모든 '농사' 자체라는 것 자체가 인공이지만, 수경재배는 거기서 더 개발된 인공재배 방식) 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잘 자랄 것이다. 과학적으로나 수학적인 계산으로는, 치밀하게 떨어지고 완벽히 이상적인 낙원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땅'의 힘과 에너지를 믿는다. 보이지 않는 '기운', 그리고 그 요소들의 조화를. 그리고 이상적인 온실일수록 (살아남는데 걸림돌이 없을수록) 매끈하고 영양가 낮은 연약한 에너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똑같듯이.


수경재배보다는 토양재배(유기, 자연적 농사)가, 그리고 재배보다는 억척스럽고 살벌한 생존 싸움터인 야생에서 자라는 식물들이야말로 - 즉, 방해꾼들이 많을수록 - 더 단단하고 살아남으려는 억센 의지, 에너지와 기운이 똘똘 뭉쳐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채집으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우선 그것은 아직 나에게 있어선 히말라야 정상 같은 이야기이고 차근차근 '식물' 자체에 대한 관찰, 그 생명 순환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그래야 숲에서 발견하던, 키우던 할 수 있을 테니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무쪼록 그래서, 결론적으로 수경재배를 열심히 알려주신 우리 선생님을 배신하고 ㅎㅎㅎ 이것을 응용하여 싹만 여기서 틔운 후, 흙에 옮겨 심어서 올해는 '관찰'해보는 해로 삼기로 했다.



드디어 귀여운 첫 새싹이와 무당벌레 친구

하아. 이토록 이쁜 것이로구나. 첫 새싹이 세상을 향해 얼굴을 보였다! 이 조그만 들깨가 태어난 것이 이토록 기쁘고 예쁜데, 자식들이 태어나면 기분이 도대체 어느 정도 기쁨이란 말일까!

새싹이 태어난 걸 축하하러 온 것인지, 난데없이 어디서 예쁜 무당벌레가 들어왔다. 도대체 어디서 들어온 건지.. 신기한 일이야.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다가, 우선 우리 집의 유일한 자연인 파밭에 놓아주어보았다. 왕초보 자연인은 무당벌레가 뭘 먹는지 몰라, 급한 대로 내가 먹던 청경채 이파리도 넣어줘 보고. 하하. 밥이라 치기엔 너무 크지만. 미안하다. 아는 게 없어서.



둘째가 깨어나다!

으앙. 이런 쪼매니들!!! 둘째가 깨어났다.

식물 무지를 탈출하기 위해, 그리고 저 애기들이 빨리 커버리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해서 공부를 해본다. 무엇이든 역시 궁금할 때 공부해야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식물을 키워봐야지, 키워봐야지..' 생각만 하고 넘긴 게 4-5년은 된 것 같은데, 정말 이번 봄엔 실천할 수 있을 확신이 생겼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같은 땅에서 같은 식물만 키우면 땅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병충해가 생긴다고 한다. 거기서 자연 원리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원래 한 땅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크게 되어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고이면 썩듯이, 한 가지가 계속 같은 자리 하면 그에 맞는 생태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여러 순환을 막는 것인가? 추측을 해본다. 잘은 모르겠지만.

오매! 다음 날이 되었는데, 무당벌레가 파밭에서 아직 놀고 있다. 다행히 좋은 환경인가? 싶어 안심했었는데, 이날 저녁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인생무상을 크게 느꼈다. 방금까지 이렇게 귀엽게 놀고 있던 (잠시나마 내 가족이었던) 무당벌레가 홀연히 죽음으로 변하다니. 다시 그 땅속에 묻힌다. 분해되면 파가 그 영양분을 흡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파를 내가 먹을 것이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만 있을 뿐이다.


어쨌건 이 모습으로 잠시나마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무당벌레는 사라졌다. 


잘 가. 

짧지만 반가웠어..

드디어 무언가를 키울 첫 번째 '밭'이 되어줄 공주 베란다 창틀 공간을 싹~ 정리했다. 이제 나의 '식물 관찰 연구소'가 탄생이다.

뭔가 주워 배운 것 있어서, 화분 아래 그릇을 받혀서 물을 아래에서 흡수하게 하는 방법을 적용해보았다. 물을 위에서 주는 것보다, 아래에서 흙이 자연스레 흡수하여 뿌리로 전달시키는 것인데, 식물이 질식할 위험을 좀 더 줄여줄 수 있다고 하니 (위에서 물을 주면 점점 흙이 눌리고 수분 조절이 쉽지 않으니까), 한번 해 보았다. 


식물 뿌리의 공기 + 습도 조절은 '곤충들의 자연스러운 역할'이 빠진 상태에선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후에, 결론적으로는 습기가 많이 차는 듯해서 썩을까 싶어, 결국엔 아래 받힌 물은 빼주고 원래대로 가끔 위에서 물을 주는 방식으로 바꾸긴 했다) 남은 흙과 씨앗들은 햇볕을 가려줘야 한다고 또 주워 들어서, 은박지로 우선 싸 보았다. 


왕초보자는 이래저래 잘 모르지만 한번 해본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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