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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Jan 19. 2022

5화) 새싹채소? 마음이 무거워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6째 주 (3.15~21)



꼬물이 새싹들 깨어나다

와! 심은 지 5일이 지나니 꼬물꼬물 싹이 움트고 있다. 역시 잘 자란다는 잎채소들이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우려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싹을 텄던 깻잎이 만큼의 감동이 없어 미안하긴 하지만, 기쁘다! (역시 엄마에겐 첫째가 가장 인상 깊은 것이로구나.. 모든 자식들이 다 똑같이 소중하단 것은 뻥이었어.)

2일이 지나니 점점 더 선명하게 바깥으로 뿌리를 뻗고 올라오는 새싹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작은 새싹은 처음 보았다. '새싹'하면 그려지는 그 전형적인 표준 모습을 한 귀여운 두 쪽의 잎사귀가 말할 수 없이 작은 크기로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카모마일의 싹이 어느새인가 터서 세상에 나왔다. 


씨앗이 작으니 잎도 작네! 정말 귀엽다.


햇살을 향해. 모든 생명은 발을 뻗는다. 인간 아기도 그렇고, 모든 존재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가 세상에 나오면서 몸을 뒤집어 무거운 머리를 위로 향하고 발을 땅에 디딘다. 식물들도 뿌리를 먼저 위로 뻗은 후, 다시 아래로 박으면서 머리를 위로 일으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참 신기하지. 이 동질성.



새싹채소? 마음이 무거워

오늘은, 이 두 놈 (비타민 채와 무순 - 새싹채소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한번 실행해보기로 했다. 새싹채소로 어릴 때 먹기 위해 본격적으로 재배하지 않고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라는 것이다.

진짜로 뿌리내릴 수 없다. 그냥 땅 속인 것처럼 속여서 계속 뿌리를 길게 뻗도록 만들어 적당히 자라면 먹는 것이다. 그 부분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는데, 우선 싹을 틔워나 보자! 하고 일부만 해보기로 했다. 굉장히 많은 씨앗이 들어있다.

그럼, 이 씨앗들을 새싹으로 먹지 않고, 제대로 계속 자라게 하면 결론적으로 비타민이 되고, 무가 되는 것인가? 같은 식물 맞겠지? 이름만 이렇게 붙인 별개의 식물인가? 아니면 씨앗 공장에서 또 나쁜 이상한 약품 처리 등을 해두었을까? (더 못 자라게 하는 등)


식물 왕초보는 아무것도 몰라서 궁금한 것이 많다.

키친타월보다는 계속 쓸 수 있는 '면 거즈'를 깔아 물을 적시고 설명서에 나온 대로 물에 1-2시간 불려둔 씨앗들을 골고루 뿌려두었다. 그리고 빛을 차단 (한 마디로, 땅 속이라 생각하게 속이는 것) 하고 따뜻한 실온에 두는 것이다.

알루미늄 호일로 덮어두고. 


아~ 그런데, 해두긴 했지만 계속 영 찜찜하다. 마음이 무겁다. 얘네들을 속이는 게 싫다고. 매트릭스에서 전지로 쓰기 위해 모든 감각을 차단시키고 인공적으로 길러 이용하는 재배 인간과 무엇이 달라!

그리고 며칠 후. 큰일 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도 빠르게! 비타민과 무순의 싹들이 무한 발아하고 있는 것이다!! 꼬물꼬물. 큰일 났다. 


아무래도 마음이 5톤 트럭마냥 무겁다. 얘네들을 다시 진짜 땅에 제대로 심어줘야겠다. 속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 어서 더 자라기 전에 밭을 마련하자.



파는 살아있어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늘 까꿍. 하고 또 다른 파의 꽃이 생겨있다. 자세히 보니 다른 파에서도 꽃을 만들 준비를 속속.

살아있다. 파는 살아있다. 


줄기는 계속 자라나고, 줄기를 만들다가, 꽃을 만들다가. 필요에 의해 스스로 부지런히 자신을 계획, 관리하여 성장시키고 있다.


살아있다.

꽃 잔치를 준비 중인 아름다운 파밭.

조금씩 내 음식으로 바뀌느라 한 줄기씩 밖에 남지 않은 파. 그래도 이렇게 흙에 심어서 얼마나 오래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고마워! 파를 잘라먹을 때마다 신비로운 관계의 비밀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는 것.



깻잎이, 무한 성장 중인 식구들

어느덧, 떡잎보다 커진 깻잎의 본잎! 점점 깻잎의 모양이 더 선명해진다. 벌써 향이 나는 느낌이야. 세상에서 내가 젤로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들깨. 들깨와 마늘만 있으면 난 살 수 있을 것 같아.

잎채소들의 새싹들이 점점 더 분명히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아~ 귀여운 카모마일 새싹은 어느덧 둘째까지 생겨났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새싹들. 하루하루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식물들. 항상 똑같은 하루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꼭! 식물을 길러보길 바란다. '변화'라는 것을 느끼고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기여한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럼 또 이번 주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하며. 여기까지.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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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소개 & 참여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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