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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Jan 22. 2022

9화) 필요한 것을 얻는 방법과 센스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8째 주 (3.29~4.4)



쑥쑥 자라고 있는 쪼매니들

손톱 깎을 시간도 없이 촉박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왕초보 가장. 드디어 잠시 짬을 내 손톱을 깎았는데, 이것도 퇴비로 만들면 되려나? 싶어 퇴비함에 넣어주었다. 하하. 분해되는데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넣어버린 후에 듣게 알게 되었다. 나는 죽어 흙이 된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죽음을 미리 조금이나마 체험해본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새싹이들. 새싹채소로만 키워 먹었으면 보지 못했을 광경이 지금부터 라이브로 펼쳐진다. 무순의 떡잎은 아주 크고 씩씩하다. 비타민의 떡잎은 나비처럼 동글동글 귀엽고. 스르륵 만져보는 느낌이 좋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뒤섞여 자라나는 아이들. 


땅은 부족하지만, 먹지도 않고.. 우선은 이대로 계속 지켜보고자 한다.

깻잎, 치커리, 청경채, 양상추. 낯선 '땅'에서 무사히 잘 적응하고 있는 쪼매니들. 나중에 커졌을 때를 생각해서 멀찌감치 배열을 해두었다. (그래도 좁디 좁아질 것이지만)


잘 자라나거라.

파는 꽃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 무척이나 신비롭다. 곧, 내 식물연구소의 첫 꽃을 보게 되겠다.



필요한 것을 얻는 방법과 센스

밭을 만들어야 한다. 온통 지금 필요한 것은 스티로폼 박스와 흙뿐이다.


이제 나름대로 박스도 보는 눈이 길러져서, 깊이가 얕거나 표면적이 작은 박스는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간다. 이곳엔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짜잔. 심지어 경비 아저씨께서 나를 위해 포장까지 해서 준비해두셨다. 아! 이렇게 간단한 일이라니. 쪼록 걸어가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에서 밭을 그냥 들고 오면 땡. 운이 왜 이리 좋은지, 깊이가 아주 깊고 넓은 박스들을 잘도 구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너무 많은 재활용품을 겟 하면 혼날 수 있다. 재활용 수거업체도 다 물량만큼 돈을 버는 것이라 입주민도 아닌 사람이 함부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잡음이 생길 수 있으니.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은 '잽싸게'! 아주 소량으로! 아주 가끔씩! 티 안 나게! 누구에게도 무리되지 않게! 입주민처럼 태연하게! 센스 있게 꼭 필요할 때만 조금만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스티로폼을 이렇게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재활용한다는 것은, 당연 '모범 국민 환경부 장관상'쯤은 받을 만한 일이건만, 경비 아저씨께 세세히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우선 멱살 잡히기 전에 도둑 취급은 면하는 것이 상책이다.

나의 옥탑방 = 현재까지 비어있는(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창고가 비로소 첫 입주민을 맞았다. 난데없는 스티로폼 박스 컬렉션. 누구는 명품 가방을 애지중지 모아 컬렉션 하지만, 나는 스티로폼 박스를 컬렉션 한다. 먹지도 못하는 가방 따위보다, 진짜 가치가 담긴 식물을 키우는 밭이 더 소중하다.


저렇게 많이 주워왔는데도 아직 공간이 남았다. 공간은 역시 크고 보아야 한다. 이곳은 앞으로 식물연구소의 재료 보관소가 될 듯하다. 겨울엔 실내 온실이 될 수도 있겠고!

스티로폼 박스 밭 만들기 기술이 점점 늘고 있는데, 문제는 구멍 위에 댈 '망'을 다 써버린 것이다. 양파를 계속 살 수도 없고, 꽃 포장 망사도 다 썼고.. 어쩌나 싶다가!

인간은 필요한 것을 찾으면 귀신같이 번쩍 생각해내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 글쎄, 재료로 보관 중이던 안 쓰던 '빨래망'이 딱인 것이다! 옳다 거니! 최고의 가성비였다. 촥~ 펴져서 잘 깔리기도 하고. 지퍼는 담에 쓸 수 있으니 오려서 남기고 바닥 망으로 깐다.



오늘도 흙 해오는 가장

산 입구에서 쬐매 씩 가져오는 흙이 무척이나 무거워 오늘부터 방식을 업그레이드하였다. 비싸게 사두고는 제대로 매어 볼 일이 전무했던 나의 브랜드 가방을 '흙'가방으로 쓰게 될 줄이야! 두 손 대신 조금이나마 힘을 덜기 위해 어깨를 쓰기로 한다.

열어보면 흙! 하하하. 지퍼백 하나만 가져와도 어깨가 빠진다.

산에서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주워오는 대신, 오늘부터 나의 의무로서 쓰레기들을 (누가 저지른 만행이냐! 피가 거꾸로 솟지만.. 도를 닦는 심정으로 수행하겠다) 조금씩 수거해서 집까지 같이 가져오기로 했다.


남이 먹고 버린 쓰레기를 집에 고이 모셔와서 분리수거하며 간직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귀중한 흙과 돌, 나뭇가지, 낙엽 등을 공짜로 빌려 쓰고 있으니 해야 할 도리라 생각하면서 조금이나마 책임으로서 만회해본다.



암면블록 재활용, 토종씨앗들 심기

발아에 실패한 아이들은 안타깝지만 모두 정리하고, (먹고 난 씨앗들은 결국 싹을 틔우지 않았다. 잣, 대추.. 이것은 나무인데도 심어본 빅 피쳐) 

암면블럭을 재활용하여 그 자리에 '토종씨앗'들로 교체하여 다시 심는다!


암면블럭이 아주 조금밖에 없는지라.. 주문한 흙과 추가 암면블럭이 도착하기 전에 몇 알이라도 더 빨리 심어 두어야 마음이 편할 듯하다. 봄날이 빠르게 지나고 있으니.

씨앗 들어갈 구멍을 미리 뚫어놓고, 그 위에 씨앗을 올려놓고 기념사진 찰칵! 그 후에 안으로 넣어 살짝 덮는다.

아! 이제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이는구나. 파, 상추, 시금치를 8알씩만 심었다. 8개도 나에겐 무지하게 많다. 발아 안될 것도 생각해서 최대치로 심어 본다. 뿔 시금치의 씨앗은 정말 뾰족 뾰족! 어찌나 귀엽고 신기하게 생겼는지.


어서 자라나는 모습과 그 각각의 형태들을 관찰하고 싶다.

한살림에서 사 온 천연 수세미에도 씨앗이!! 이제 온통 보이는 것이 씨앗들뿐이다. 수세미가 어떻게 생긴 식물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우선은 탈탈 털어내어 씨앗들을 모아 본다. 언젠가 여력이 되면 수세미도 키워봐야겠구나!


이렇게 1주일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득하게 흘러갔다. 왕초보의 식물 일지. 앞으로의 1주일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컨티뉴.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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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참여하기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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