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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Jan 23. 2022

10화) 드디어 옥상으로! 그리고 입양오는 아이들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8째 주 (3.29~4.4)



드디어 옥상으로! 식물 연구소 이동

나의 옥상 낙원(=자연 냉장고)가 될 드넓은 대지. 땅(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어렸을 때부터 '거저 줘도 난 절대 가질 일 없을 것이다.'라며 싫어한 것 3가지가 있다. '아파트(주상복합), 대기업, 공무원', 바로 많은 이들이 원한다는 그것이다. 하지만 난 '결코 그것에 속하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다. 모든 사람들의 가치관은 다르고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저 3가지는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화국. 

 

'드넓은 땅. 여지가 있고 햇살을 쬐고, 무언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땅. 그곳에서의 삶'만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빼곡한 작은 창문과 다 똑같이 생긴 구조 안에서 사방 위아래의 눈치를 보면서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집. 햇살 하나 제대로 맞을 수 없는, 열린 수직 공간이 삭제된 아파트를 볼 때마다 참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신도시와 아파트에서 15년을 살아왔지만, 그곳을 떠나서 '여지'와 '틈'이 있는 주택가로 독립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옭아매던 그 답답함과 무력함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거꾸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환경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도 알게 되었다. 


바로, '아주 작은 틈과 여지가 없는 공간과 도시, 즉 자유의지의 절대 불가'란 통제에 그 이유가 있었다.


대기업과 공무원은 당연히 이 사회에 필수 불가결한(아니, 사회가 대부분 의지하고 있으며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하지만 대기업의 경우, 반드시 사회악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거대 집단의 이윤추구에 조금도 내 에너지와 시간을 보태고 싶지 않음의 마음이 있고, 공무원의 경우는 반복되는 업무와 모든 것에의 통제, 한계성이 있는 일 자체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나의 성향에서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함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허름하고 조만간 사라질 옛날 집이라는 경제적 지표로 평가절하하기엔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선사해 주고 있는 이 집. 햇살 찬란한 드넓은 옥상 땅을 내 멋대로 만끽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드디어 오늘 내 쪼매니 식물 실험실들을 모두 옥상으로 이동시키는 과업을 하기로 했다.


18리터 흙은 이미 예전에 다 끝나고, 이제 40리터 배양토가 기본이 되었다. 마침 가장의 생일인지라 몇몇 선물 쿠폰들이 날아왔는데,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흙' 뿐이라서 모두 취소시키고 다 흙으로 바꿔서 보내달라고 당당히 요청하였다. 하하하.

결론적으로 생일 선물을 빌미로 '흙 3포대 + 비료 1포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 친구가 글쎄 잘못 주문해서 웬 비료를 보낸 것이다. 흙 필요하다니까! 도시민 촌놈들은 다 이렇게 잘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감사하게 받는다.) 


가장의 초능력으로 옥상으로 어떻게든 이고 올라간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계단식 밭. 택배 아저씨께서 놀라실 것이다.

와! 드디어 이사 왔다. 


저 산의 커다란 나무 형님들을 보고 자라도록 해라. 이제 요놈들이 햇살을 하루 종일 신나게 만끽할 것을 생각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천천히 하나씩 옥상 텃밭을 만들어보자꾸나. 꼬맹이들.



하나둘씩 흙 방으로 입주 시작

쪼매씩 큰 아이들을 진짜 흙 밭에 옮겨주고, (당근은 3개 중, 2개만 발아함)

카모마일도 발아 성공한 2개를 흙에 옮겨심기. (1개는 안 나옴)


꽃의 씨라서 말로 표현할 수없이 씨앗이 작기 때문에 그냥 나머지들은 흙에 뿌려주었다. 하나씩 암면블럭에 넣어서 키우기가 귀찮아졌다. 알아서 랜덤하게 자라 보아라. 이제 모르겠다.

토종 씨앗들 중 다른 것들은 그나마 조금 시간이 걸려도 안심이다만, 글쎄 살아있는 '감자'가 있어서 비상이 걸렸다. 싹이 나오고 있고, 쭈글쭈글 수분을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라 이 생명을 죽이기 전에 빨리 흙 속에 묻어야 한다. 문제는 감자이기에 깊고 넓은 땅(스티로폼 박스와 흙)이 필요 하단 것!


난 도저히 그 넓은 땅을 마련할 수 없으니 최대 4개만 심고 (이것도 많다!), 남은 것은 또 반으로 잘라 4개로 만든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재빨리 분양시키기로 하였다.

급히 공부를 해보니, 칼을 끓는 물에 소독해야 한다고 하여 그렇게 한 후 절단. 오! 자주색 빛이 나는 신비로운 '자주감자'다. 절단면에 나무나 볏짚을 태운 재를 묻혀서 상처를 잘 아물게 만들어 주면 좋다고 하는데, 지금 그것까지는 힘들어 절단면을 살짝 말려서 이대로 탈이 없기를 기원해본다.


* 후에 배운 사실 : 감자를 햇볕에 2~3일 그냥 놔두면 녹색으로 변하면서 싹이 더 나오게 된다. 독소가 가득 생기게 되는 것인데 (감자는 싹에 독성 물질을 품고 있다), 그 상태에서 심으면 미생물, 곤충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서 썩지도 않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한다.

잘 모아두었던 일회용 커피 컵들을 '토종 자주감자 임시보호소'로 만들 차례! 감자가 말라버리면 안 되니까, 우선 급한 대로 흙에 심어서 전달하기로 한다. 

능숙하게 불에 지진 송곳으로 뽕뽕 구멍을 뚫어 화분을 만들고, 준비 완료!

돌을 깔고, 나의 소중하고 귀한 흙을 담아서 감자 씨앗들을 넣어준다. 커피 대신 흙을 담는다.

심어질 귀한 토종 자주감자 4조각. 거기다 물을 부으니.. 정말이지 커피 내리기와 비슷한 느낌이! 커피를 마시는 대신, 우리 모두 씨앗을 심자.

충분히 적신 흙 속에 감자를 쏙쏙. 분양 보낼 4알의 씨감자 심기 완료! 날짜, 이름도 써서 새로운 주인을 만날 준비까지 완료되었다!

내가 키울 4조각의 씨감자도 고이 심어서 임무를 완료하였다. 처음으로 토종씨앗을 심은 것이다!


감자는 깊이 있는 땅이 필요하기에 흙이 무척이나 많이 필요해서 밭 마련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임무를 완수했다는 마음에 기뻤다. 드디어 한숨 놓을 수 있게 되었다. 휴.

나무를 잘라 받침도 해주고, 감자심기를 마치고 나니 아름다운 석양이 축하를 해준다.


10cm는 더 깊게 심어야 한다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 언제 땅 밖으로 새싹이 얼굴을 내밀 수 있을지.. 그 싹의 힘을 응원해본다.



입양 오는 아이들과 점점 불어나는 가족 수

마트에 당근을 사러 갔는데, 글쎄 산처럼 쌓여있는 흙 당근 가장 깊숙한 곳에서 빼꼼하게 싹을 어떻게든 틔우고 살려고 하는 당근이 있었다! 그 생명력과 노력에 감동을 하여 그놈을 구출, 집에 데려와서 싹 난 부분은 그대로 심어주기로 했다.


이렇게 뿌리가 이미 있는 채로 싹이 계속 나면 어떻게 되는 건가? 뿌리는 자라지 않고, 꽃만 피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잎 자체도 맛있었던 기억이 있고, 이 생명력이 안쓰러워서 우선 자라는 대로 지원해 주기로 하였다.

나의 당근 밭. 애기 둘과 입양된 큰 언니.

아니, 이게 뭐야? 쑥 인가!?


아주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쑥을 뜯어서 엄마한테 가져다 드렸던 기억이 있는데 (오직 한번), 도시 촌놈은 그 이후로 무언가를 채취해볼 생각 자체를 못하고 살아왔다. 


쑥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확신도 없어서 찾아볼 생각도 못 했는데, 이놈의 향기가 무척이나 강렬하다. 그 덕에 바로 확신했다. "쑥의 냄새다!"

향이 말할 수 없이 좋다. 


'아니, 그럼 아예 쑥을 입양해서 키우면 되겠네!' 생각이 들어서 그 두 덩이를 뿌리째 조심히 캐내어 집으로 긴급 이송했다. 계획에 없던 쑥 입양으로 가족이 하나 더 늘어나고 있는 현장이다. 앞으로 쑥도 옥상에서도 가끔 뜯어먹을 수 있게 되길 기원하며!

아니, 얼마나 기뻤으면 쑥을 가져오는 대신, 보답으로 산에 지갑을 주고 왔다. 덕분에 산에 두 번이나 다녀온 날.

바로 뜯어온 쑥을 된장국에 넣어서 끓여 먹어보는데! 아! 이것은 '찜질방 맛'!... 엄청나다. 향이 10배는 진하다. 보약을 먹었다.


이렇게, 나의 가족들은 의도치 않게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옥상에서 자라나게 되는 새싹들. 아직은 황무지 같은 행성이지만 하나씩 방을 잘 만들어줄게! 기다려봐~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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