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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Jan 25. 2022

12화) 나무해오는 여자와 휴식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9째 주 (4.5~10)


오늘도 산으로 출근

산으로 가는 길, 절정으로 예쁘게 핀 라일락! 내 땅이 생기면, 꼭~ 제일 먼저 심고 싶은 나무. 향과 꽃의 색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오늘 나무(스티로폼 밭의 받침대용)를 하나 주워서 신나게 지팡이 삼아 룰루랄라 들고 오는데, 글쎄 벌이 웅웅 거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계속 가깝게 나는 것이다. 


어디서 벌이 쫓아오는가? 했더니 바로 손에 들고 있던 나무 구멍에서 왕벌들이 슉슉! 나오는 중! 왕벌들을 데리고 이제까지 같이 한참 이동한 것이다.

순간 너무 놀라서 나무를 바닥에 떨어뜨린 후 보니, 동그란 구멍 속에서 왕벌이 들이 끊이지 않고 탈출 중. 나무에 어떻게 저런 동그란 구멍이 생길 수 있지? 딱따구리 같은 새가 뚫은 것인가!??라는 놀라움과, 나무 안에서도 벌들이 살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


https://youtu.be/UJ03bGPo-hI

나무 구멍 속 왕벌들

왕벌들을 관찰하다가 놀라 뒤로 나자빠지는 쫄보의 모습. 중간에 왕벌들한테 나도 모르게 '쭈쭈쭈'하고 강아지 부르는 소리를 해보았다.

냅다 버리고 온 왕벌이네 집.


미안하다. 나 때문에 난데없는 공간이동을 하게 되어.

다행히 다른 나무를 발견하여, 오늘도 나무꾼은 나무를 해오고. 스티로폼 박스 2개와 흙, 돌.. 이것저것 또 열심히 마련해왔다.

또 의도치 않게 쑥을 발견하여, 2차 입양을 해보았다. 2개 줄기. 어맛! 그런데 막상 가져와서 보니, 1차 입양했던 쑥들과 모양이 다른 것이다!! 충격.

도대체 무엇이 쑥이란 말인가? 난 분명히 저것이 쑥이라 확신하고 국을 끓여 먹었는데, 1번과 2번 중 진짜 쑥이 무엇인가? 그럼 내가 쑥이 아닌 것을 먹었던 것인가? 대혼란에 휩싸였다. 


우선은, 잘 심어주고 둘 다 지켜본 후에 무엇이 쑥인지는 나중에 판가름해보아야겠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나의 야생 밭 코너가 만들어지고 있다.




연도 심어주고, 벚꽃 잎이 날아오다

이 튼실해 보이는 거대 씨앗들로 말할 것 같으면!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가는 길에 죽~ 거대한 연들이 심어져있는 야외 수경 화단들이 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산책하다가 그 연들에 까만 씨앗들이 어찌나 탐스럽게 알알이 박혀있는지! '언젠가 나도 연을 심어봐야겠다.' 싶어서 딱 2알을 챙겨왔던 그 녀석들이다.


예전에 양평 세미원에서 사 온 연 씨앗을 발아시켜 잠시 키운 적이 있었는데, 햇살이 너무 약했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 강했던 탓인지.. 얼마 못 가서 죽고 말았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요놈들은 어찌 더 튼실해 보이는데, 종합운동장 녀석들 만큼 거대해지기 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부디 싹을 틔워보길 바라며, 이번 기회에 한번같이 발아에 도전시켜본다.

그 놈들을 몇 일 후 그냥 바로 옥상으로 옮겨주기로 하였다. 옥상텃밭에서 유일하게 돈을 주고 산 예쁜 도기 화분으로 옮겨서!  


작년에 야심 차게 도전해보았던 '연' 키우기를 위해, 고급스러운 도자기 넓은 화분을 무려 17000원이나 주고 구입했었다. 그래도 뭔가 이 화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진흙 역할을 하라고 흙을 좀 넣어주고! 생명의 연 씨앗 두 알을 투하.

산의 정기를 흠뻑 받고, 태양빛 아래 신나게 솟아오르길 바라며.


후엔, 흙으로 그릇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 인류의 첫 도구인 도기 기술을 아직 모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흙으로 원하는 것들을 모두 만들 수 있다.


조금만 기다려. 하나씩 하나씩! 회귀로써 진화하는 인간이 될 테니까!

처음엔 지금보다 더 쫄보여서 깻잎 밭의 흙을 무척이나 얇게 깔아 두었던 탓에, 조금 더 크고 깊은 흙 밭을 마련해서 옮겨주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오늘 드디어 그 작업에 돌입! 이것도 10cm 정도밖에 안되어 얕은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는 최선이다. 충분히 흙을 더 투하하고 조금은 더 큰 밭으로 옮겼다!

처음엔 다 자라기 전에 뽑아먹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끝까지 키울 소수만 딱! 키워야지! 하고 단 3개만 심어두었는데, 조금 생각이 바뀌어버렸다. 작아도 중간중간에 먹을 수 있도록 개수가 더 많은 것이 낫겠다는 생각.


흙이 무척이나 귀하다 보니, 이제 땅의 여분이 조금만 보여도 그렇게 아까운 것이다!

그 다음 날, 어디서 날아왔는지 예쁜 벚꽃 잎들이 모든 밭들을 장식해 주었다. 새싹들의 태동을 축하해주러 온 것 같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내 눈에 꽃 핀 벚나무는 보이지 않는데, 과연 어디서부터 날아온 꽃잎들인가! 

꽃잎, 씨앗들은 이렇게 바람을 타고 굉장히 먼 거리를 이동하는구나! 새삼 더 크게 느낄 수 있게 된 관찰이었다.

옥상에 자리 잡은 나의 식물연구소 = 자연 냉장고. 파도 햇살 가득 맞으라고 옥상으로 이동시키고, 한쪽 섹션은 잎채소/허브, 한쪽 섹션은 뿌리/열매채소 이렇게 대략 나누어 배치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옥상 밭이 늘어나고 있다.



나의 휴식


식물들 심고 기른답시고 정신없이 보내는 나날들. 정작 나 자신은 챙기지 못하고 시들시들 과부하에 걸려 엉망이다.

그러다 오늘 겨우 힘을 내어 건강 밥을 지어먹고, 밭의 파에서 한 줄기 잘라 송송 썰어서 먹으며 (너는 내가 된다, 고마워!) 오래간만에 원기를 회복해본다. 

매일 같은 시각, 앞집 지붕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자는 하얀 고양이 선생님이 있는데, 그 가르침을 따라 '나도 저렇게 햇살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가져야지, 가져야지..' 며칠을 생각만 하다가, 오늘에서야 다짐을 하고 잠시 쉬어보기로 했다.


따뜻한 옥상! 에서 휴식을 해보자! 홍차와 빵까지 두둑이 챙겨 쉬어보겠다고 앉았다. 유기농 자연농법과 토종씨앗... 과 함께하는 '트레이더스 땅콩버터'라니!!! 어쨌든 이미 사둔 것이니 감사히 잘 먹겠다.


그런데..

쉬겠다고 앉은 채 5분이 되지 않아, 내 눈에 들어온 나무들! 


어느새 나무를 썰고 있다.


깨달았다. 

나에게 쉼이란, 일하는 것이로구나! 하하하하. 이것이 가장 즐거우니까! 그냥 난 일순이야.

나무 종류별로 잘라지는 것의 힒듬 정도가 어찌나 차이 나는지 모른다. 아직은 나무 차이 같은 것 따위는 모르는 뭣 모르고 주워오는 까막눈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마지막 자른 이 나무는 무척이나 단단하여 자르는데 힘들었는데, 단면에 고운 동글동글 나무 테가 너무나 아름다워 고생을 잊게 해 주었다.

짜잔! 드디어 화분의 받침대를 몇 개 완성!

그렇게 잎채소 화단 부분은 비로소 화분 받침대까지 완성!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휴~


이렇게 나의 옥상 낙원은, 어설프게 하나씩 만들어져 간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이 작가의 비법이 궁금하다면?

[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소개 & 참여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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