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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Jan 27. 2022

14화) 옥상에서 '마션'찍기, 콩나물도 기른다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0째 주 (4.11~17)



역사적인 첫 수확! 

비타민 밭을 옮겨주다가, 도저히 도저히 심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본의 아니게 첫 수확! 을 하게 되었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난생처음 씨앗이라는 것을 뿌려서 싹을 틔우고, 그것을 수확하여 즉석에서 먹어보는 기쁨!

너무도 어린 새싹이지만, 맛있게 먹을게!  힝. 이 작은 새싹. 더 커질 수 있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네! 고마워 잘 먹을게!


샤워한 귀여운 비타민 새싹들 뒤로 아련히 보이는 그것은... 비빔면. 

비빔면 위에 올리긴 했지만, 이 귀한 새싹을 인공적인 강한 맛에 묻혀 감흥 없이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 새싹 하나씩 고유의 맛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잘 느끼면서 먹은 후에, 비빔면을 따로 먹었다.



영화 '마션'을 찍다


첫 수확을 기념할 겸 쉬어가는 코너로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온통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쏠려있는 요즘인지라, 자연스레 며칠 전부터 '마션'과 '김씨표류기'의 식량 자가생산 장면들이 떠올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란 생각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중 <마션>을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보았다. 


화성에서 혼자 식량을 기르고, 기록해나가며 살아남는 그 내용이 무척이나 지금 내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무지 옥상에서 식량을 키워 보겠다고 흙부터 마련하면서 애쓰는 나의 모습이 완전히 오버랩되는. 심지어 얼마 전에 심은 감자까지 겹치면서.. 무척 눈물 나게 반가웠던 영화다.


동시에 깨달았다. 

"난 지금, 마션을 찍고 있구나!"

그는 식물학자였지만, 나는 식물 애송이다. 이제 막 공부를 해나가면서 길러내야 하는 내가 훨씬 급이 높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다.  

흙을 푼다.

완전한 나의 모습. 

흙 해온다. 흙을 푸고 또 퍼온다. 계속 푼다. 옮긴다. 

어찌나 똑같아서 눈물 나게 웃기던지.

흙을 붓는다. 무한한 반복으로 밭을 만든다. 이 짧은 장면을 나만큼 감격스럽게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지! 흙 퍼 온 사람만이 감히 상상할 수 있다.

바로 며칠 전! 내가 했던 그대로! 감자를 자르고, 심는다! 


그런데 너무 얕게 심었네. 학자 양반. 10cm는 깊이로 심어야 할 텐데~!

그리고 물을 만들고! (난 빗물받이 장치 - 페인트 빠레트통 - 를 마련해 놓았지!) 

모든 장면 중의 가장 중요한 이것. 


우리의 생존을 가르는 이 작은 녹색의 생명이 깨어나다. '식물이 있어야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감격적인 장면이다. 

감자가 클론들을 만들어 뻥튀기가 됨! 감자의 개수는 바로 생존 기한을 의미한다. 내가 '감자'를 심은 것이 천만다행으로 생각되는 순간이다. 


모든 작물 우선하여 긴급할 때는 감자를 꼭 챙겨야겠다. '주식(에너지원)'이 되면서 '비타민'을 동시에 공급해 주는 생존 식량이니까. 

오예! 이 기쁨이란! 


"난 '우리 집 옥상'에서 최고의 식물학자라고요!"

아주 기분이 좋았었는데, 그다음 나오는 대사에 기분이 꽤나 찜찜해졌다. 감자 재배 및 뻥튀기에 성공한 다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 있든, 농작물을 재배하면 그곳을 점령한 것이다." 


'점령'이라니? 딱 서양식(미안하지만 내가 볼 때 참으로 미개한) 사고방식이란 생각에 무척이나 씁쓸하다. 땅과 식물, 동물, 살고 있던 사람들.. 모든 것들을 폭력과 종교로 침략해 빼앗고 멋대로 파괴해온 그런 미개한 문명. 맷 데이먼은 그저 어쩔 수 없이 대본대로 말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대사는 이제까지의 감동에 찬물 끼얹는 한 마디였음이 분명하다. 


난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어디에 있든 농작물을 재배하면 그곳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덧붙여, "끊어졌던 순환 고리에 비로소 다시 들어서면서, 우주의 나지막한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전에 분명 한번 이 영화를 보긴 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도 안 난다. 그만큼 이번에는 내 경험과 오버랩이 되면서 완전한 동질감과 강한 몰입으로 빠져들었던 영화! 그 대사만 빼면, 무척이나 기쁘고 신나게 보았다.


본의 아니게 혼자 옥상에서 마션을 찍고 있는 나지만, 이 자체가 너무도 즐겁다. 나의 식량 자급력은 (지금은 아직 초짜이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당당한 삶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영화 <마션> 중 장면 캡쳐



콩나물을 내가 길러보자!


"콩나물 500원어치 주세요~" 하고 뒤 구멍가게에 심부름을 가면, "어이구, 우리 미스코리아 또 왔네! (난 그 덕분에 진짜 커서 미스코리아가 되는 줄 알았다.)" 하면서 어떤 통 뚜껑을 열어 노~랗게 가득 차 있던 콩나물에서 한 움큼 잡아서 싸주셨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 빼곡하고 탐스럽던 콩나물이 그렇게 신기했는데..


이제까지 도대체 왜 인지? 다른 무언가에 바쁘느라, 이렇게 쉬운 '생산'에 도전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무언가 대단한 방법이 있는 것으로 느껴져서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난생 처음으로 '콩나물 만들기'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식물의 개념을 그나마 조금 알게 되니, 이제 '콩나물'이란 것이 어느 식물 생성 단계 중 '무엇을 취하여' 먹는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콩은 콩이다. 계속 모습이 변해갈 뿐이다. 콩 씨앗에서 수분이 닿으면서 따뜻한 온기가 있으면, 생명의 비밀 열쇠가 풀리면서 뿌리가 나오고, 빛이 없는 상황에서는 빛을 받기 위해 위로 위로! 그 뿌리를 열심히 하늘을 향해 길러 뻗어나간다. 해를 볼 수 있는 그 흙 바깥에 도달하기 위해.


그 점을 인위적으로 이용하여, (속이는 것이라 무척 미안하지만) 환경을 어둡게 만들어 두고 수분만 주어 뿌리가 계속 자라나게 만들어 길러 먹는 것이 '콩나물'이라 불리는 '콩의 뿌리가 길어진 상태'인 것이다. 


빛이 들어서는 순간, 머리 부분이 녹색으로 변하면서 열리고, 그 속의 싹이 자랄 준비를 하니까 그것은 막은 상태로. (그래서 머리가 노란색인 것이다. 광합성을 하지 못한 미숙의 상태)

누가 이것을 발견?이랄까 개발?이랄까 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뿌리만 길러 먹어도 또 콩을 새롭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렇게 이제 나는 전체 그림에서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조금은 성장했다. 


첫 콩나물은 한살림 쥐눈이콩으로 도전! 물을 붓고, 빛을 막아 몇 시간 두기. 하루 지나니 벌써 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대단한 생명력.

이제 급하게 마땅한 재배 용기를 마련해야 한다.


'콩나물 재배기' 니 '새싹 재배기'니.. 이런 것들마저 그 전용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를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무 생각해 볼 틈 없이 꼭 그것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덜컥 사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충 눈에 불을 켜고 그 필요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찾다 보면, 집에 있는 것들(보통은 쓰레기통에서)로 거의 모든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다! 우연하게 안 쓰는 반찬통과 플라스틱 케이스가 사이즈가 딱이다. 끼웠을 때 적당하게 아래 틈이 생기는 것마저 완벽하다!

이 전기인두를 산 것은 아주 잘한 일 중 하나! 획기적으로 모든 화분 구멍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 빵빵빵 뚫어준다.


뒤의 아련히 비추는 그의 모습......... 춤추는 지민.

면포를 깔고, 뿌리 나오려는 콩을 깔고, 물을 뿍뿍뿍.

다시 면포를 위에 덮고, BTS 태교. (저렇게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하여, 열 맞춰서 자라라) 뭘 덮지 두리번거리다가, 또 딱! 맞는 바구니 발견하여 뒤집어 씌워줌. 이렇게 완성! 


이제 심심할 때마다 괜히 들여다보며 물을 시도 때도 없이 뿌려주기만 하면 된다. 자연이 키워준다.


바로 몇 시간 후의 모습 변화. 


하루, 아니 매 순간 궁금해서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는데, 볼 때마다 놀랍게 쑥쑥 자라 있다. 뿌리가 꼬물꼬물 나온다. 잘 자라라~ 콩들아! 


그럼, 왕초보 옥상 지배자의 이야기는 컨티뉴~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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