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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Jan 28. 2022

15화) 임시 난민 새싹들의 서러움과 첫 가족 명단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0째 주 (4.11~17)



잡초와 쓰레기


잡초라는 말은 거절한다. 아직 인간 사전에 오르지 못한 (어떻게 먹거나, 활용하면 좋은지를 파악해내지 못한) 식물일 뿐이다. 오로지 인간 입장에서, 그 제한적인 앎으로 말이다.

요놈. 엄청나게 튼튼하고 강해 보이는 뿌리를 가진 요놈이 흙에서 따라 들어온 것이 있어서 다시 산으로 데려간다.

쉬식. 동료들 있는 곳에 다시 묻어주고. 


올해 이 식물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 이곳에 올 때마다 관찰해 볼 계획이다. 튼실한 놈들.

예전에 이곳에서 누가 농사를 지었는지, 비닐들이 땅에 묻혀있다. 잡아 빼어 쓰레기 수거. 이렇게 자연에 해를 끼치는 인위적인 비닐 남발 농사에서 제발 모두가 벗어났으면..


비닐을 씌우는 농사와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 살포가 아주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가르치고 배우고 행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자연으로부터 먹을 것을 얻었으면 해를 끼치는 것은 최소화해야지.. 이렇게 나 몰라라 방치된 비닐들과 농약, 비료는 땅을 오염시킨다. 그곳에 살아가는 생명들이 살 수 없게 만든다.


아직은 초보 중의 왕초보 식물 새내기이지만, 부지런히 하나씩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이상적인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잘 알리는 데 힘써야겠다. 


조용하고 완벽한 자연의 힘과 조화를 느껴봐.




임시 난민 새싹들의 서러움과 무한 밭 뻥튀기

전용 밭을 완성한 '양상추'. 이제 남은 공간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씨를 막 뿌려두었더니, 애기 새싹들이 피어나고 있다. 무척 귀엽다. 스티로폼 박스 하나에 양상추가 다 자라면 2개가 겨우 자랄 수 있을까 말까 한 좁아터진 방인데..


그래서 처음엔 딱 3알만 심어 기르고 있었지만, 땅이 아까운 마음에 그냥 어린싹들도 어린 채로 수확할 수 있는 게 낫겠다는 판단으로 씨를 마구 뿌려버린 것이다. 모르겠다. 이제. 커가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겠지.

오늘은 밭 뻥튀기 작업을 이어나간다. 바글바글 새싹채소용(비타민, 무) 새싹들이 뒤엉켜 자라고 있어 하루빨리 공간을 넓혀주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오와 열' 종대한 비타민 쪼매니들. 포화 상태인 밀집도에서 다시 재배치시켜준 현장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90%의 집 없는 서민 비타민들의 빈곤함을 해결하기엔 택도 없이 택지가 부족하여,

결국, 급한 대로 부유한 땅을 가진 다른 자식들 집에 잠시 얹혀살게 하기로 하였다. 깻잎 삼 형제가 넉넉히 여유 플렉스를 누리던 밭에 난데없이 비타민 세입자들 입주.

상추 밭에도 잠시 입주.

치커리, 청경채 밭에도 임시 거주 난민들 입주.

하아. 그렇게 '쉰들러 리스트'의 마음으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구제책을 펼쳤건만, 아직도 넘쳐나는 인민들에 비해 땅은 없도다. 겨우 1/4의 비타민의 임시 주거를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남은 아이들은 도저히 아직 옮겨 심어 줄 수 있는 땅이 없기에 아쉽지만 이대로 잠시 두기로 한다. 이만큼이라도 방 배정 (임시지만) 해준 것이 다행이다.


뭔가 그래도 결국 잠시 있다가 다시 방 빼주어야 하는 임시 세입자 신세라는 것이, 비타민이나 사람이나 처량하고 서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지금 어쩔 수가 없으니 남의 땅에서 잠시 발붙이고 있으렴.

똑같이 새싹채소용으로 처음에 모르고 씨앗을 엄청 많이 뿌려서 키웠던 '무'도 방 배치 작업에 들어갔다. 조심조심 엉켜있는 뿌리를 하나씩 골라내어 넓은 방에 배치해 준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임시다. 무를 키우려면 깊고 넓은 땅이 필요하다. 잎이라도 가능할 때까지 최대한 키워서 먹기 위해 애를 써본다. 아직 이 작은 잎들을 먹어버리고 싶지 않아. 무한 성장할 아이들인데..

이것도 너무 빼곡하지만, 가능한 만큼 최대한 분산시켜 4개의 무 (임시) 밭이 탄생하였다. 잠시만이라도 좀 더 넓게 자라거라.

그렇게 졸지에 표면적이 뻥튀기되어 늘어난 밭의 면적. 그나마 오늘 바글바글하던 비타민과 무에게 넓은 방들을 마련해 주어 마음이 조금 놓인다. 


부지런히 흙 해올게!

가장은 힘들다.



드디어 파악한 가족 수

정신없이 새싹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과부하가 걸렸던 요즘. 밭은 모자라고, 식구는 계속 불어나고. 심지어 '목화학교' 소식을 알게 되면서, '목화'까지 키우게 될 예정이 되어버렸다. 오늘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도대체 몇 가구가 입주해있는 것인지? 현황을 파악해보았다. 


과별로 나누어 분류한 후에, 각각 식물에게 필요한 땅 깊이와 넓이를 파악해서, 현재 필요한 스티로폼 박스의 개수를 파악했다.


하아. 27 가족이라니!!


박스를 부지런히 구해와야 한다.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가장은 쓰러지지 않는다.




식구가 또 늘다! (퇴비함에서 꼬물이 구출)

이제 버려지는 것이 없다. 커피 먹고 난 가루, 홍차 먹고 난 티백, 목욕할 때 넣었던 한방 티백, 주워온 쑥 한 줄기까지..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퇴비함으로! 

음식물 넣은 후에, 커피 넣고, 한방 가루 넣고, 홍차 가루 넣고, 

거기다 흙 넣고, 산에서 주워온 마른 나뭇잎, 나뭇가지들 잘게 부수어서 토핑! 아이 예쁘다~ 갖은 재료로 요리를 하듯이. 슉슉 섞어주면 끝.


모든 것이 다시 영양만점 흙으로 돌아간다.

이전 15일 동안 모았던 것을 숙성시키고 있는 기존의 퇴비함 (옆의 통)도 음식물을 투여하러 갈 때마다 항상 같이 슉슉 섞어준다. 하루에 1번씩은 이렇게 공기가 잘 통하도록 섞어주니 분해가 더욱 잘 될 거야.


그런데!

오늘 항아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뭐야!!!" 뜨아. 글쎄 그 퇴비 흙 안에서 꼬물꼬물 새싹들이 싹을 틔우려고 온통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분명 '파프리카' 아니면 '아삭이 고추' 둘 중의 하나의 씨앗들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 씨앗들이 발아한 것이다. 놀라운 생명력들.

하아. 지금 있는 자식들도 감당이 안 되어 난리가 아닌데, 이렇게 힘차게 살겠다고 세상에 나오고 있는 새싹들을 또 못 본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숫자가 많기도 많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심정으로 퇴비 흙을 뒤져가면서 최대한 모든 생존자를 다 구출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땅은 없지만 우선 구하고 보기로 하고, 작은 밭 하나에 임시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고추류는 열매 식물이라고! 깊은 땅(흙)이 필요하다고.. 하아. 어쩐댜.. 어쨌든 우선은 자라 보아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속에서 또 다른 종, 그러니까 '콩' 류임이 확실한 다른 새싹도 2개가 발견되어 버렸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추측건대 쌀 씻다가 떨어뜨린 '쥐눈이콩'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추리를 해보아도 그 외의 가능성이 전무하다.


하아. 콩도 열매식물이잖아~ (깊고 넓은 땅이 필요) 지금 콩 종류도 많은데 이렇게 종류가 또 늘다니.. 다음부터 씨앗 종류는 절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또 2가지를 더 입양을 하게 되어.. 가족 수 29로 등극.

늘어가는 가장의 무게.


흙 한 톨 없는 황량한 옥상에서 29 가족들의 방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야 한다. 연필로 칠해놓은 것이 '흙 밭'으로 옮겨진 행운의 아이들이다. 저 연필로 한 칸을 채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무척 많은 양의 흙, 돌, 시간, 에너지, 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씩 걸어 나가보면 결국엔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다가올 거야! 모든 아이들의 밭을 완성하는 그날을 꿈꿔보며. 우리 집 식물 보육원 명단을 꼭 끌어안고 지친 가장은 오늘의 하루를 마친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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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소개 & 참여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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